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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보그다노비치 (Peter Bogdanovich)

1939-07-30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6.1

/

네티즌7.4

기본정보

  • 다른 이름Derek Thomas; 데릭 토마스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39-07-30
  • 성별

소개

뉴욕의 웨스트 사이드에서 세르비아인 화가인 아버지와 유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대표작 <라스트 픽처 쇼>
비디오 출시작 <노이즈 오프> <마지막 쇼> <리버 피닉스의 콜 잇 러브> <뉴욕의 연인들>

지금은 별로 기억하는 사람이 없지만 피터 보그다노비치는 70년대 초 미국영화계의 ‘신동들’ 중에 가장 유명한 감독이었다. ‘피터 보그다노비치 신드롬’이란 말까지 돌았다. 보그다노비치는 20대 중반까지 6천편 이상 영화를 봤고 존 포드, 하워드 혹스, 오슨 웰스,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에 대한 전기를 냈으며 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든 감독이기 때문이다. 보그다노비치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스티븐 스필버그 등과 더불어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넓은 영화 지식을 밑천 삼아 영화를 만든 첫번째 세대다. <필름 컬처> <무비> <에스콰이어> 등의 잡지에 평을 썼던 보그다노비치는 71년 <라스트 픽처 쇼>란 장편영화를 발표하면서 삽시간에 스타가 됐다.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모범적인 감독, 태풍의 눈이었던 것이다.

대학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열다섯살 때 저명한 연기지도자였던 스탤라 아들러 밑에서 연기를 공부했고 당시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화제를 모으는 연극을 상연하던 뉴욕 극단의 단장 댄 탈보트와 영화평론가 앤드루 새리스 밑에서도 사사했다. 뉴욕현대미술관 부설 영화관에서 고전영화를 섭렵하고 평론가로 필명을 날리던 보그다노비치는 열렬하게 감독을 꿈꾸었고 저예산 상업영화 제작자로 유명한 로저 코먼의 밑에서 데뷔작을 냈다. 코먼이 보그다노비치에게 처음 연출을 맡긴 작품은 <표적 Target>(1968). 12만5천달러의 제작비 예산을 넘기면 안 되고 계약기간이 며칠 남아 있는 배우 보리스 카를로프를 주연시키고 카를로프를 주인공으로 썼던 <테러>에서 쓰고 남은 19분 분량의 필름을 써야 한다는 조건으로 연출한 이 영화에서 보그다노비치는 <테러>의 필름을 적당히 섞어서 과거의 명배우와 그를 암살하려는 젊은이의 얘기로 감쪽같이 만들어냈다.
그러나 보그다노비치의 진면목은 <라스트 픽처 쇼 The Last Picture Show>(1971)에서 나타났다. <라스트 픽처 쇼>에는 성장영화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50년대의 텍사스를 배경으로 외로움, 성에 대한 무지, 인생 목표에 대한 혼란 등 누구나 겪어봤음직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그러나 비평가들을 움직였던 건 보그다노비치가 마치 30, 40년대의 존 포드나 하워드 혹스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감동을 다시 화면에 옮겨놓았기 때문이다. 정확한 얘기 전개에 빈틈없이 묘사되는 인물성격, 고전적인 리듬으로 짜맞춘 편집술이 특히 뛰어났다. 그런 것들이 묘하게도 보는 사람에게 향수를 자아냈다. 시대 배경도 그렇지만 만듦새도 옛날의 좋은 영화를 다시 보는 것 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보그다노비치는 거기서 멈췄다. 그 이후에 보그다노비치가 만든 영화는 대체로 자신이 얼마나 고전영화를 잘 알고 있느냐를 과시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박사, 무슨 일이지? What’s Up, Doc?>(1972)는 라이언 오닐과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나오는 스크루볼 코미디영화였다. 하워드 혹스의 스크루볼 코미디의 고전 <아기 기르기>을 의식하고 만든 것인데 뭔가 독창성이 부족했다. 흥행성적은 좋았지만 수십년 전에 혹스가 이미 다 보여준 것을 뭐하러 또 보여주느냐는 평단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70년대 내내 보그다노비치는 그런 식이었다. 30년대 공황기를 배경으로 한 중년남자와 소녀의 우정을 그린 작품 <페이퍼 문 Paper Moon>(1973)이 그런 대로 보그다노비치의 명성을 이어주었다면 헨리 제임스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데이지 밀러 Daisy Miller> (1974)는 대실패였다. <길고 긴 사랑 At Long Last Love>(1975)은 30년대의 뮤지컬을 다시 만든 작품이지만 순진한 연애담을 설파했던 30년대 뮤지컬의 전통을 70년대 중반에 재해석 없이 그대로 옮기려는 보그다노비치의 영화광 취향은 다소 무모한 감을 줬다. 보그다노비치의 이후 영화 중 볼 만한 것은 76년에 만든 <5센트극장 Nickelodeon>(1976). 5센트 동전을 넣고 무성단편영화를 보던 초기 무성영화 시대를 배경으로 영화촬영장에 빚을 받으러 갔다가 졸지에 영화감독이 되는 한 남자의 얘기다. 데이비드 워크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이 나왔던 1914년을 정점으로 한창 뻗어나갔던 신생매체 영화에 대한 보그다노비치의 절절한 애정이 묻어 있다.
80년대 초반 파산한 보그다노비치는 셰어가 출연한 <마스크 Mask>(1985)를 계기로 재기했지만 그가 다시 새로운 뭔가를 보여주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미국영화는 지금 American Film Now>을 쓴 평론가 제임스 모나코에 따르면 보그다노비치는 영화만들기의 가나다에 통달한 감독이다. 그는 많은 대가급 감독들과 대화를 나눴고 그들이 어떻게 무엇을 했는지 잘 이해했다. 그러나 그는 그 대가들이 ‘왜’ 그렇게 연출했는지는 이해하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보그다노비치는 30, 40년대의 할리우드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는 과거 할리우드영화의 모방자로 남았다. 지금도 보그다노비치는 영화를 잘 만든다. 그러나 오슨 웰스는 되지 못할 것이다.

<b>[씨네21 영화감독사전]</b>

2001년 <캣츠>, 2007년 <톰 페티 앤 더 하트브레이커스>를 연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