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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구치 겐지 (Kenji Mizoguchi)

1898-05-16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

/

네티즌7.3

기본정보

  • 원어명みぞぐち けんじ
  • 다른 이름溝口健二
  • 직업감독
  • 생년월일1898-05-16
  • 사망1956-08-24
  • 성별

소개

오즈 야스지로, 구로사와 아키라와 함께 일본영화를 대표하는 거장. 유장하면서도 동적인 특유의 롱테이크는 이른바 미조구치 스타일로 불리며 영화교과서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고, 그가 일생을 통해 그려낸 여성상은 영화예술이 빚어낸 여성 캐릭터의 한 원형이 되었다.

미조구치는 1898년 도쿄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고 기생(게이샤)이 된 그의 누이가 생계를 꾸렸다. 서양화를 공부하기도 했던 그는 1922년 닛카쓰촬영소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았고, 조감독 1년 만에 <사랑이 되살아나는 날 愛に甦へる日>(1923)로 데뷔한다. 20년대와 30년대 초까지 그는 기술적 숙련도를 높여가며 신파멜로드라마에서부터 탐정물, 그리고 <도회교향악 都會交響樂>(1929)와 같은 좌파성향의 경향영화 등 다양한 영화를 만들어낸다.

<마리아의 오유키 マリアのお雪> (1935)에서부터 카메라가 인물로부터 거리를 두기 시작하고 롱테이크의 사용도 빈번해지면서 미조구치 스타일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초년병 시절엔 독일표현주의 스타일, 몽타주 등을 시도했지만, 이 시기부터는 몽타주가 눈속임이며 서투른 연출솜씨의 반영이란 소신을 굳히게 된다.

1936년에 나온 <오사카 엘레지>와 <기온의 자매들>은 작가로서의 성숙을 알린 작품. <오사카 엘레지 浪華悲歌>는 아버지를 위해 약혼자 몰래 기생이 된 여인, <기온의 자매들 祈園の姉妹>은 상반된 성격의 기생 자매가 주인공이다. 두 영화를 통해 남자에 의해 버림받으면서 더욱 강해지는 여성상이라는 미조구치적 캐릭터가 정립됐으며 카메라워크와 스타일도 안정되게 구사된다.

엄혹한 중일전쟁기 동안 예술가가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른바 예도영화로 도피하면서도 <늦가을 국화 이야기 殘菊物語>(1939) 같은 걸출한 영화를 선보였다. 마지막 연대인 50년대에 들어서자 미조구치는 국제적 명성을 얻는다.

1951년 후배 구로사와의 베니스영화제 대상에 자극받아 이듬해 출품한 <오하루의 일생 西鶴一代女>이 베니스에서 국제비평가상을 받았고 이후 <우게츠 이야기 雨月物語>(1953) <산쇼 다이유 山椒大夫>(1954)가 연속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립한다. 특히 프랑스에서의 그의 평가는 절대적이어서 앙드레 바쟁과 그의 제자들은 그를 로베르토 로셀리니에 견줄 대가라고 극찬했다.

미조구치의 여성상은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 30년대의 반항적이고 공격적이었던 여성이 만년의 영화들에선 헌신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는 순화나 보수화가 아니라 여성을 운명이나 자연과 같은 경지에 올려놓고 그를 통해 문명의 질서를 넘어서려는 거장의 야심처럼 보인다.

대표작인 <우게츠 이야기>에선 죽은 아내가 구름 속에 숨은 달처럼 보이지 않는 운명의 힘이 되어 남편을 고향에 돌아오게 한다. 고향의 산야를 롱테이크로 잡은 마지막 장면에는 여성성이 거의 자연화해, 형언키 힘든 위엄까지 풍긴다. 한 궁녀가 거리의 작부로 전락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오하루의 일생>은 인과적 설명을 생략하며,

이 여인의 전락에 종교적 수난기의 비장미를 부여한다. 미조구치 겐지는 세계영화사의 다른 거장들처럼 현실의 강퍅한 질서에서 출발해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자기만의 영화적 질서를 창안한 것이다.
[씨네21 영화감독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