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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마카베예프 (Dusan Makavejev)

1932-10-13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

/

네티즌5.2

기본정보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32-10-13
  • 성별

소개

60년대 말 이래 서구영화는 성과 정치의 상관성을 탐구하는 경향을 하나의 흐름으로 만들어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베르톨루치와 동세대였던 <육체의 악마>의 마르코 벨로치오, 그리고 80년대 이후 집요하게 성정치학을 내세우는 영국의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이 있다. 그러나 이들 감독도 파격적인 성묘사의 발상면에서는 동유럽의 거장 두산 마카베예프를 당하지는 못한다. 마카베예프의 영화는 여러 나라에서 상영허가를 받지 못할 만큼, 분방한 상상력으로 억압없는 성해방의 사회를 꿈꾸었다. 32년에 베오그라드에서 태어나 베오그라드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여러 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었고 자그레브 영화사에 취직한 61년부터 13편 이상의 기록영화를 연출했던 마카베예프는 장편 데뷔영화 <남자는 새가 아니다 Man Is Not a Bird>(1966)와 <연애 사건 Love Affair>(1967)을 발표하면서 <나는 행복한 집시를 만났네>의 알렉산드르 페트로비치, <내가 죽어 결백하게 될 때>의 지보진 파블로비치와 함께 옛 유고슬라비아 뉴웨이브영화를 이끄는 감독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보호받지 못한 무죄 Innocence Unpro-tected>(1968)는 몽타주 기법을 변증법적으로 이용하는 마카베예프의 관심을 잘 반영한 작품인데, 42년 나치 점령 당시 유명한 곡예사였던 알렉세치가 <보호받지 못한 무죄>란 영화와 마카베예프가 그 영화에 관해 만든 기록영화 필름을 병치시켜 허구와 현실의 관계를 파고들면서 신비화된 영웅 알렉세치의 진실을 밝혀낸다. 그러나 마카베예프의 진정한 걸작은 <WR: 유기체의 신비 WR: Mysteries of The Organism>(1972)였다. 이 영화의 전반부는 성관계시 느끼는 오르곤 에너지를 중요시했으며 이 성적 에너지를 억압하는 현대문명은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을 막론하고 다 병들었다고 생각했던 빌헬름 라이히의 미국 시절과 그의 후학들이 꾸려가는 연구소를 담은 기록필름이고(WR은 빌헬름 라이히의 머릿글자를 딴 것이자 세계 혁명의 약자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영화의 나머지 부분은 밀레나라는 유고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 미국의 성문화를 스케치한 기록필름, 스탈린 치하의 소련을 담은 기록필름을 오간다. ‘섹스폴 필름, 유고슬라비아, 1971’이란 자막이 깔린 뒤에 전개되는 드라마는 자유연애를 옹호하는 처녀 밀레나와 그의 남자친구에 관한 얘기이며, 뉴욕의 42번가를 취재한 기록필름에는 성 해방의 열렬한 투사임을 자임하고 사무실 안을 벗고 돌아다니는 도색잡지 <스크류>의 편집인들, 자위행위만을 그리는 여자화가, 남근을 조각하는 여자 조각가의 작업 과정을 담은 장면이 들어 있다. 이어 스탈린을 물신화 하는 데 열을 올렸던 옛 소련의 풍경이 비치면서 갈 데까지 간 부르주아 문화의 극단과 스탈린의 이미지를 병치시켜 두 물신의 유사성을 꼬집는다. 그런 사이에 자유연애를 주창하던 여성 밀레나는 러시아에서 온 블라디미르 일리치라는 피겨 선수를 유혹하지만 잔인하게 강간,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되고 검시관의 책상에 놓여 있던 밀레나의 머리는 느닷없이 입을 열어 “블라디미르는 진짜 빨갱이 파시스트”라고 외친다. 마카베예프는 기록영화와 픽션이 혼합된 독특한 형식으로 자본주의, 사회주의 진영 모두 성적 억압에 짓눌린 거대한 정신병원임을 보여줬는데, 당연히 많은 나라에서 상영허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캐나다와 프랑스 공동제작으로 만든 <달콤한 영화 Sweet Movie> (1974)는 미스 월드로 뽑힌 여성의 온갖 성적 일탈과 칼 마르크스의 동상을 달고 암스테르담 일대의 강을 돌아다니는 배의 여선장이 추구하는 도착적인 성애를 병치시킨, 제목과 달리 <유기체의 신비>에 비해 훨씬 과격한 영화였다. 마카베예프는 미스 월드의 모험을 통해 부르주아 사회가 파멸시킨 성의 가치를 확인시키고, 몰락한 혁명의 숙명을 안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배 안에서 여선장이 벌이는 섹스를 통해 도착과 변태로 뒤범벅이 된 죽음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여전히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모두 진정한 성 해방을 이루는 데 실패했다는 마카베예프의 비판이 이 영화에 녹아 있다. 그러나 마카베예프의 경력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만들었던 그의 80년대 이후 작품들, <몬테니그로 Monteniegro> (1981) <코카 콜라 키드 The Coca Cola Kid>(1985) <발트하임의 음모 Manifesto> (1988) 등은 전성기 때의 영화에 비해 수준이 떨어진다. “영화는 영원불변한 것처럼 보이는 모든 가치를 공격하고 치고 빠지는 게릴라 작전”이라고 여겼던 마카베예프의 영화적 테러리즘은 실질적으로 70년대에 수명을 다했지만 그는 성정치학을 충격적으로 묘사한 영화사상 가장 대담한 감독이었다. [씨네21 영화감독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