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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 8일간의 축제 3D

8 days: the two faces of feast

2013 한국 전체 관람가

다큐멘터리 상영시간 : 73분

개봉일 : 2014-04-17 누적관객 : 7,956명

감독 : 최필곤

출연 : 여진구(내레이션) more

  • 네티즌6.00
조선 22대 국왕 정조, 그 33년의 열망이 만들어낸 ‘8일간의 축제’!
200년 만에 부활한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8일이 지금 공개된다!

<의궤, 8일간의 축제3D>는 2년에 걸친 노력 끝에 『원행을묘정리의궤』에 담긴, 조선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8일간의 축제를 3D입체영상으로 복원해냈다. 국내 최고 전문가들의 엄격한 고증을 통해 금속활자인 ‘정리자(整理字)’에서부터 36척의 배로 만든 거대한 배다리, 무희들의 의상, 잔치에 쓰인 음식에 이르기까지 축제의 주요장면들이 상세하게 복원되었다. 특히『원행을묘정리의궤』에 등장하는 63쪽의 반차도를 통해 1km에 이르는 거대한 국왕 행렬이 의상과 깃발, 수많은 의장물까지 원형 그대로 재현되었다. 그렇게, 2백 년 전 ‘8일’이 <의궤, 8일간의 축제3D>를 통해 다시 부활한 것이다. 그러나 ‘행복한 8일’은 11살 때 아버지 사도세자를 잃고 아픈 삶을 살았던 정조가 33년을 기다린 ‘열망의 8일’이기도 했다. 자신들의 지배력을 키우는 것만이 목표였던 신하들로 인해 권력에서 소외된 백성을 위한 치밀한 계획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화성이라는 거대한 첨단요새에서 펼쳐지는 대규모 군사훈련은 더 이상의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원했던 정조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회심의 일격이었다. 8일간의 축제는 왕과 백성의 행복한 축제임을 선포함과 동시에, 쓰라린 아픔마저도 화합과 행복으로 바꾸는 전환점이기도 하다. 정조는 이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록하게 했고, 의궤 역사상 최초로 인쇄본으로 제작, 백성들에게 널리 배포하였다.

그것이 바로 『원행을묘정리의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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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노트
<의궤, 8일간의 축제 3D>에 대하여

꼭 있어야 했다! 국내 최초 역사 다큐멘터리, 일반 상영관에서 첫 개봉!
대한민국 역사다큐멘터리의 산실 KBS가 제작, 전국 CGV 3D관 통해 일반에게 첫 공개!

<의궤, 8일간의 축제 3D>는 조선의 22대 국왕 정조(正祖 1752~1800)가 역사상 가장 성대한 축제를 열고, 그 모든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해놓은 『원행을묘정리의궤』를 KBS다큐멘터리 제작진이 순수 우리 기술로 복원해 낸 3D 작품이다. 지난 2011년 프랑스로부터 외규장각 의궤가 반환되면서부터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의궤는 2년여의 노력 끝에 <의궤, 8일간의 축제 3D>가 완성되면서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의궤 중의 꽃’이라고 불리는『원행을묘정리의궤』를 3D입체영상으로 복원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조선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1795년 8일간의 축제가 200년의 시간을 넘어 생생하게 되살아난 것이다. 이를 위해 금속활자, 목판화, 의상, 음식 등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참여해 엄격한 고증 과정을 거쳤고,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다가설 수 있도록 드라마를 통한 재현 방식을 채택되었다. 특히 연기파 배우 여진구의 내레이션을 더해 대중의 호감도와 이해도를 높였다. 『원행을묘정리의궤』속에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정조의 33년간의 열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숨막힐 듯 화려했던 8일간의 축제와 그 속에 담긴 정조의 치밀한 계획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오늘날의 현실과 오버랩되며 현대인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대한민국 역사다큐멘터리의 산실인 KBS가 제작을 맡았고 전국 CGV 3D 상영관을 통해 일반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왜 ‘의궤’인가? 세계에서 하나뿐인 양식, 세계를 놀라게 한 치밀한 기록정신과 예술성!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우리문화유산! 꼭 알아야 한다!

왕이 읽던 책, ‘의궤(儀軌)’는 다소 낯선 이름이다. 그러나 조선왕조 500년 동안 왕실의 주요행사가 있을 때마다 빠짐없이 만들어졌던 것으로 현재 규장각, 장서각,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총 3,895권이 보관되어 있다. 현존 최고본인‘의인왕후산릉도감의궤’(1600)를 시작으로 왕실의 결혼을 기록한 ‘가례도감의궤’, 실록의 편찬과 보관을 설명한 ‘실록청의궤’, 왕실 회갑잔치를 기록한 ‘진찬의궤’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의궤는 조선의 왕실행사를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고 정교하게 기록하고 있다. 행사의 준비에서부터 동원된 사람들의 역할과 임무, 사용된 물품의 가격과 제작방식 등 모든 것을 그림을 곁들여 기록해둠으로써 후대에 그대로 복원이 가능하도록 제작되었다. 이는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기록양식으로,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의궤의 가치를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은 프랑스인들이었다. 지난 2011년 외규장각 의궤가 프랑스로부터 반환되는 과정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프랑스 학계의 거센 반발이 있었다. 이 의궤들은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점령했던 프랑스군이 퇴각하면서 약탈해 간 것이다. 당시 그들이 남긴 기행문과 보고서에는 외규장각에서 의궤를 처음 발견했을 당시의 감탄이 곳곳에 남아 있다. 금속장식이 달린 호화로운 표지와 아름다운 서체, 정교한 그림 등 외형적인 모습은 물론 그 속에 담겨진 놀라울 정도의 정보량 때문이었다. 2014년 의궤는 다시 우리들 곁으로 다가왔다. 우리에겐 오랜시간 잊혀진 이름이었지만 더 이상 그 소중한 가치를 외국인의 몫으로만 남겨두는 것은 부끄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의궤 8일간의 축제 3D>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우리의 대표문화인 것이다.


<의궤, 8일간의 축제 3D>에 대하여

조선 22대 국왕 정조, 즉위 19년에 펼친 33년의 열망!
8일간의 축제를 통해 죄인의 아들에서, 조선시대의 성군(聖君)으로 다시 태어났다!

정조는 11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실로 엄청난 일을 겪게 된다. 바로 임오화변(壬午禍變)이라 불리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이다. 생부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게 되자 할아버지인 영조에게 아버지를 살려달라 눈물로 간청해야 했던 어린 소년은 ‘죄인의 아들’이라는 굴레를 쓴 채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비극적인 삶을 살아야 했다. 천신만고 끝에 조선 22대 왕으로 즉위한 정조는 왜곡된 국가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조용한 개혁에 착수한다. 반대파들의 눈을 피해가며 새로운 인물을 등용해 개혁의 파트너로 삼았고, 중국과 서양의 새로운 사상과 문물을 습득해 나갔다. 그리고 신분차별 폐지, 임금노동제 도입, 빈민구제, 시장경제 도입 등 근대적 향기가 묻어나는 개혁안들을 속속 실행해 나갔다. 1795년,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61세가 되자 전국에 대대적인 축제를 선포한다. 수행원 6,000명, 말 1,400필을 동원한 대규모 부대를 이끌고 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수원으로 행차를 떠난 것이다. 이날의 축제는 8일동안 계속되었고 8권으로 이루어진 『원행을묘정리의궤』에 빠짐없이 기록되었다. 그 속에는 회갑을 맞이한 어머니뿐만 아니라 돌아가신 아버지(사도세자), 그리고 온 백성이 행복하기를 바랬던 정조의 33년간의 염원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뒤주 속에 갇혀 8일 만에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를 지켜보던 어린 목격자는 평생을 트라우마에 갇혀 살아야 했지만, 탁월한 정치 리더십과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사상으로 ‘행복한 8일’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바로 죄인의 아들로 숨죽이며 살아온 정조의 33년간의 열망이었다. 국내 최초 3D 조선역사 다큐멘터리 <의궤, 8일간의 축제 3D>에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던 2백년 전의 8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8일, 200년 만에 부활한 대국민 축제에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정조 19년(1795) 봄, 온 나라는 축제분위기로 떠들썩했다. 바로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 때문. 이 축제는 ‘행행(行幸)’, 즉 ‘행복한 행차’라 불렸는데, 왕이 직접 수천 명의 수행원들을 이끌고 창덕궁을 출발하여 수원 화성으로 오가는 8일 동안 성대하게 치뤄졌다. 당시엔 왕을 보는 것을 ‘관광(觀光 : 빛을 보다)’이라 했는데, 행차에 나선 왕을 관광하기 위해 전국각지에서 수 많은 백성들이 몰려들어 일시적으로 통행금지를 해제하고, 천막으로 된 임시숙소를 마련하기도 했다. 왕의 행차가 지나는 길목과 수원 화성에서는 연일 백성들과 어우러진 화려한 행사들이 펼쳐져 행복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8일간의 축제 기간 동안 과거시험을 통해 지방선비들에게 관직에 진출할 기회가 주어졌고, 노인들을 초대한 양로연이 열렸으며 가난한 자들에게는 쌀과 죽이 나눠졌다. 국왕이 직접 백성들의 고충을 듣고 이를 해결해 주기도 했던 이날의 축제는 왕과 백성 모두가 행복한, 이름 그대로 ‘행복한 축제’였다. 행차의 하이라이트였던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는 그동안 금기시 되던 것들이 허용된 파격적인 자리이기도 했다. 남녀가 한자리에 모인 최초의 궁중잔치였으며, 전통적인 궁중무용 외에 검무, 선유락 같은 민간 무용이 왕실에 첫 선을 보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정조는 끊임없이 자신을 반대하며 위협하던 세력들에게 칼 대신 술을 내렸고, 화합을 권유했다. 정조, 그리고 8일간의 축제는 자신이 겪었던 비극을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기를 바랬던 절실한 염원을 담아 나라의 주인은 백성임을 선포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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