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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키

Jackie

2016 프랑스,칠레,미국 15세 관람가

드라마 상영시간 : 100분

개봉일 : 2017-01-25

감독 : 파블로 래레인

출연 : 나탈리 포트만(재클린 케네디) 피터 사스가드(바비 케네디) more

  • 씨네216.40
  • 네티즌6.78

“모두가 기억하게 만들 거예요. 이 순간을…”

우아하고 기품 있는 스타일과 친근한 이미지로 국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 하지만 퍼레이드 도중 충격적인 암살 사건으로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그녀는 혼란에 빠진다. 남편의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슬픔을 달랠 새도 없이, 의연하게 장례식을 준비해야 하는 그녀. 더 이상 퍼스트 레이디가 아닌 재키는 백악관을 지휘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만 곧 자신이야말로 남편의 시대를 마무리할 수 있는 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모두가 사랑한 퍼스트 레이디, 전설을 새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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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14)


전문가 별점 (5명참여)

  • 5
    김소희이미지에 갇힌 재키
  • 6
    박평식표정이 불러낸 시대와 내면의 풍랑
  • 7
    송경원역사보다 정확한 감정의 클로즈업
  • 7
    허남웅너의 이름은, 재클린
  • 7
    김혜리재키 케네디라는 아이콘을 들여다보는 만화경
제작 노트
Who is Jackie?

키워드로 읽는 ‘재클린 케네디’

퍼스트 레이디
재클린 케네디는 미국의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부인으로, 1961년부터 63년까지 영부인의 자리에 머물렀다.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퍼스트 레이디’가 된 그녀는 지적인 면모와 우아한 기품을 바탕으로 국민들에게 ‘친근한 백악관’의 이미지를 퍼뜨렸고 나아가 탁월한 외교 감각으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행보에 큰 보탬이 되었다.

재키 룩
재클린 케네디는 ‘재키 룩’이라는 패션 용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패션사에 큰 획을 그었다. 클래식하고 아름다운 그녀의 스타일은 영부인이라는 위치에 걸맞게 절제된 아름다움 속에 그녀만의 독특한 개성을 살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재클린 케네디는 보여지는 것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지니는지 잘 알고 있었는데, 일례로 자신의 공식 석상용 의상을 ‘국가의상’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래서 노출이 심하거나 프린트가 화려한 옷은 지양했고 심플한 수트 원피스나 스윙 코트, 네크라인이 강조된 드레스를 주로 착용했다. 대신 밝고 선명한 색상을 선호하고 둥근 여성용 모자인 필박스 모자와 진주목걸이를 자주 활용했다. 여기에 볼륨감 넘치는 단발머리로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를 만들었다.

외교 전문가
결혼 전, 프랑스에서 유학 생활을 했던 재클린 케네디는 외교 관계에서도 탁월한 감각을 발휘했는데, 세계적인 작가 앙드레 말로를 비롯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들은 ‘그녀의 지적 수준은 프랑스를 뛰어넘는다’, ‘프랑스인보다 프랑스 역사와 문화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얘기했다. 덕분에 케네디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정치가 중 한 명이었던 샤를 드골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얻게 됐고, ‘타임’ 지는 “눈부신 퍼스트 레이디인 재클린 케네디가 미소를 지으며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그녀는 대통령보다 더 필요한 존재의 퍼스트 레이디였다”라고 칭송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서 “나는 재클린 케네디와 프랑스 여행을 다녀온 남자”라고 얘기했다는 후문까지 전해진다.

독서광
워싱턴의 한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던 재클린 케네디는 당시 하원의원이었던 존 F. 케네디를 만나 결혼했다. 1년에 200권 이상의 책을 읽을 정도로, 대단한 독서광이었던 재키는 독서로 쌓은 해박한 지식과 유창한 말솜씨로 케네디를 사로잡았고, 영부인의 자리에 오른 뒤에도 지성미로 남편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 말년에는 도서편집자로 일하며 몇 권의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TV 시대
케네디 대통령은 TV 시대의 첫 대통령이었다. 1960년 케네디와 닉슨 두 대통령 후보자 간의 텔레비전 토론은 미국 대통령 선거 운동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는데, 케네디는 잘생긴 외모와 자연스러운 미소, 제스처로 국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닉슨을 압도,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미지 메이킹의 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재클린 케네디는 영부인이 된 이후, TV를 통해 백악관의 내부를 국민들에게 소개해 큰 반응을 얻었다. 친근한 백악관의 이미지를 아주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국민들에게 인식시킨 것이다. 당시 영상에서 그녀가 입었던 빨간 색 투피스는 지금까지도 재클린 케네디의 대표 의상 중 하나로 남아있다.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
‘뉴 프런티어(New Frontier)’ 슬로건을 내세우며 국민들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안겨줬던 존 F. 케네디 대통령. 미국 역사상 최연소, 그리고 최초의 가톨릭 신자로서 대통령이 된 그는 소련과의 극적 타협으로 쿠바 미사일 위기를 해결하였지만 의회와의 원활하지 못한 관계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리하여 재선을 앞두고 1963년 11월 22일 유세지인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자동차 퍼레이드를 하던 중, 총격을 받고 사망한다.

1037일의 재클린
암살 사건 당시, 케네디 대통령 옆에 함께 있었던 재클린 케네디는 당혹감을 감출 새도 없이 백악관의 안주인으로서 의연하게 대처를 해야만 했다. 남편의 피로 범벅된 분홍색 투피스를 벗지 않은 채, 그의 유해를 실은 에어 포스 원 공군기가 워싱턴 D.C.로 향하는 가운데 존슨 부통령의 대통령 취임 선서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남편의 장례식 절차를 정리하는 데 앞장선다. 그녀는 장례식에서 차를 타고 운구차를 따라간다는 관례를 깨고, 검은색 베일을 드리운 채, 이례적으로 관을 따라 걸어서 이동하는 방식을 택한다. 이는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죽음을 기억하게 만들고 싶었던 전략으로, 전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킹메이커
퍼스트 레이디 시절, 이미지 메이킹의 중요성을 체감했던 재클린 케네디는 남편의 업적이 그대로 사라지는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직접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인터뷰를 통해 상세히 전하기로 결심한다. 영화 <재키>의 중심축이기도 한 이 인터뷰는 ‘라이프’ 지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재클린 케네디는 이 인터뷰에서 케네디 대통령이 즐겨 들었던 뮤지컬 ‘카멜롯’(아서왕의 이야기)을 언급, 케네디 대통령의 통치 기간을 이상적인 도시 ‘카멜롯’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선명하게 기억되고 있는 존 F. 케네디의 이미지는 바로 재클린 케네디를 통해 완성된 것이며 그녀는 퍼스트 레이디이자 전설을 남긴 킹메이커였다.

롤모델 또는 워너비
영원한 퍼스트 레이디로 남아 있어주길 바라는 미국인들의 바람과는 달리, 재클린 케네디는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와의 결혼으로 또 한 번 세간의 화제가 된다. 이후 여러 면에서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지만, 변하지 않는 진실은 있다. 그녀는 지적이면서도 영리하고 탁월한 정치 감각으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명성을 완성했던 시대의 여성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서 언제나 최선의 방향과 방법을 선택하여 자신의 길을 완성해간 진취적인 인물이라는 점이다.

나탈리 포트만 is 재클린 케네디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 집중 분석

철저한 조사와 집요한 해석, 끊임 없는 연습이 만들어낸 연기!
<재키>의 시작, 그리고 끝. 나탈리 포트만
<블랙 스완>에서 완벽한 공연에 대한 압박과 불안감에 시달리다 점차 광적으로 변해가는 발레리나를 연기, 충격과도 같은 인상을 남기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나탈리 포트만. 그녀가 또 한 번의 메소드 연기로 돌아왔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이자 역사상 가장 사랑 받은 퍼스트 레이디로 기억되는 재클린 케네디를 맡은 나탈리 포트만은 연기 인생의 정점에 올랐다는 평가와 함께 전례 없는 수상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나탈리 포트만의 필모그래피에서는 용감한 도전과 섬세한 감정의 연기 색을 발견할 수 있다. 프리마돈나를 노리는 발레리나 역할로 아카데미를 수상한 <블랙 스완>, 골든글로브 수상과 아카데미 노미네이트로 이어졌던 <클로저>, <스타워즈> 시리즈의 파드메 아미달라 왕비 역을 맡아 선보인 연기가 그렇다.
이번 <재키>에서 나탈리 포트만은 너무나 유명해서 역할을 맡는다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러운 시대의 아이콘을 자신만의 색깔로 소화, 관객들에게 지금껏 우리가 알지 못했던 재클린 케네디의 내면 세계를 들여다보도록 안내한다. 철저한 조사와 집요한 해석, 그리고 끊임 없는 연습이 만들어낸 그녀의 ‘재키’는 가장 불안정하고 연약했던 순간의 재클린 케네디를 보여주는 한편, 가장 위엄 있고 기품 있게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시대의 여성을 표현해냈다.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재키> 연출을 결정할 때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나탈리 포트만이 재키를 맡을 경우에만 연출하겠다는 조건이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역시 나탈리 포트만이 아니면 안 된다는 데에 동의했다. “재키 역할을 누가 소화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다. 너무도 상징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탈리 포트만은 다르다. 그녀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그녀를 보고 있다는 걸 잊게 된다. 마법을 부리는지 주술을 부리는지 그녀는 어떤 역할 속으로든 사라질 수 있다.”
나탈리 포트만은 <재키>가 어느 때보다 어려운 도전이 될 것임을 알았다. 케네디의 삶과 역사상 위치를 생각할 때 막중한 책임감이 들기도 했다. “이 역할은 어떤 배우라도 겁먹을 수밖에 없는 역할이다. 재클린 케네디는 역사상 가장 존경 받은 미국 여성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탈리 포트만은 각본을 보자마자 믿음이 생겼다. 재키의 내면에서 일어났던 일을 표현하는 게 중요한 작품이었고 그게 대중의 눈에 보였던 것보다 훨씬 복잡했으리란 생각에 마음이 끌렸다. “재키는 결국 영원히 남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완전히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순간에도 강인함을 드러낸 여인이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재키를 범접할 수 없는 아이콘으로 기억하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그녀의 겉모습으로만 인식해왔다. 그래서 재키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고 나탈리 포트만은 밝힌다.
나탈리 포트만은 재키가 되기 위해 철저히 준비했다. 재키가 세상을 떠난 후 발표된 여러 자료와 테이프를 포함해 수많은 기사와 전기, 뉴스 영상을 찾아봤다. 하지만 결국에는 과감하게 모험을 하면서 자신만의 역할을 만들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이렇게 잘 알려진 인물을 맡는 건 무척 두렵다. 사람들이 재키가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말했고, 어떻게 움직였는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라고 털어놨다. “다른 한편으로는 참고할 자료가 많아서 좋기도 했다. 그걸 소화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영상과 오디오 테이프, 인터뷰 녹취록과 전기를 보면서 지냈다.”
역할을 준비하며 부담이 됐던 과제는 재클린 케네디의 또렷한 억양과 흠잡을 데 없는 우아한 발음,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를 내는 일이었다. “재키는 근사한 목소리를 지녔다. 정말 다른 시대에서 온 목소리다.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 마치 교양을 갖춘 여학생처럼 느껴진다. 무척 얌전하고 때에 맞춰 눈을 깜박이며 숨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재키의 억양은 세련됐지만 뉴욕 토박이 억양이 섞여 있고 약간 영국식 발음도 느껴진다. 재키의 사투리는 본인에게만 해당되는 독특한 소리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다.”고 나탈리 포트만은 말했다. 촬영장에서 포트만이 처음 재키의 억양과 목소리로 발음했을 때,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이 재키를 완벽하게 흡수한 듯한 그녀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순간에 나탈리 포트만은 진정한 재클린 케네디였다. 얼마나 연구했고, 얼마나 많이 읽었고, 얼마나 준비했는지 확실히 보였고 그 완벽함은 한 순간도 빗나간 적이 없었다.”라고 프로듀서인 미키 리델은 회상한다.
나탈리 포트만이 다른 어떤 장면보다 폭발적이고 격정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극적인 장면 하나가 있다. 재키가 ‘카멜롯’의 레코드를 들으면서 백악관을 돌아다니며 가운과 드레스를 미친 듯이 입어 보는 장면이다.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지만 그 무엇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표현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 상황.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이 장면에 대해 “세상에서 가장 스타일리시한 여인이 갑자기 어떤 옷을 입을지 결정하지 못한다. 정확히 자신이 누구였는지 모르는 거다. 그래서 계속해서 드레스를 입어볼 거라고 생각했고, 내적인 정체성의 위기를 보여주는 아름답고 슬픈 메타포가 됐다.”고 설명했다.

영화의 상당 부분이 클로즈업으로 이루어진 만큼 나탈리 포트만은 자신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촬영감독 스테판 폰테인과 긴밀하게 의견을 주고 받았다. “폰테인의 카메라와 하나가 되어 움직이면서 모든 연기가 훨씬 나아졌다고 느꼈다. 그가 선택한 작업 방식은 강렬한 감정을 전달한다.”라고 나탈리 포트만은 밝혔다.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마치 복잡한 발레 동작을 하는 무용수들처럼 한 조가 돼서 움직이는 나탈리 포트만과 폰테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겁이 없었고, 가끔은 정말 두 사람이 춤을 추는 한 쌍의 파트너 같았다. 언제 어디서나 함께였다. 덕분에 매번 모든 에너지를 쏟아 여러 테이크를 찍을 필요도 없이 작업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영화의 3분의 1이 첫 테이크로 완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사람은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었고 모니터 속의 둘은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았다.”
겁먹지 않고 자신의 모든 걸 쏟아낸 나탈리 포트만은 오늘날에도 공감할 수 있는 재키의 면모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모든 사람이 재키와 같은 경험을 해봤다고 생각한다. 관객들에게 진심으로 바라는 한 가지가 있다면, <재키>를 통해서 단순하게 상징적인 아이콘이 아니라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길을 찾아야 했던 지극히 인간적이고 복합적인 여성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왜, 재키인가?”


Director’s Note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을 모르는 이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재키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남편의 죽음 이후 실의에 빠진 채, 전 세계가 지켜보는 앞에서
영원히 삶이 뒤바뀌어버린 그녀의 기분은 어땠을까?
왕관을 쓰지 않은 여왕이었던 재키는 왕좌와 남편, 모두를 잃었다.”
- 파블로 라라인 감독

평소 역사나 전기 영화에 크게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님에도, 제작을 맡은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으로부터 프로젝트에 대해 처음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 ‘재키’라는 인물에 큰 흥미를 느끼게 됐다. 나는 지금까지 주로 남자 캐릭터를 다뤄왔기 때문에, 여성 캐릭터가 단독 주연을 맡는 <재키>를 통해 여성의 시각을 다루는 영화를 작업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흥미로웠다. 그리고 재클린 케네디가 존 F. 케네디의 유산을 어떤 식으로 만들어왔는지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게 되면서 점점 더 그녀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재키는 아주 혼란스러운 사건들을 겪은 인물이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유례가 없는 그 일들을 대체 그녀는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던 걸까? 재키에 대한 정보는 아주 많았지만, 정확히 그녀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재키의 이야기에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들이 모두 있었다. 분노, 호기심, 그리고 사랑.

대런 아로노프스키에게 시나리오를 받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으로부터 프로젝트의 제안을 받은 것은 2015년 베를린에서였다. 다섯 번째 장편인 <더 클럽>이 감사하게도 심사위원대상에 해당하는 은곰상을 수상했다. 축하 파티에서 심사위원장이었던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이 무언가를 읽어봐 달라고 요청했다. <재키>의 시나리오였다. 사실 5년 전쯤 그 시나리오를 읽은 적이 있었다. 다시 시나리오를 읽고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사무실에 찾아가 물었다. “어째서 미국인이 아닌 제게 이 영화를 맡기시려는 거죠?” 그는 웃었고, 프로젝트에 착수한 이후부터 내게 모든 권한을 허락했다.

나탈리 포트만이어야만 했다
‘재키’ 역은 한 때 레이첼 와이즈에게 갔었다. 하지만 나는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에게 분명히 말했다. 꼭 나탈리 포트만과 이 영화를 작업하고 싶다고 말이다. 세상에는 좋은 연기를 펼칠 수 있는 많은 배우가 있지만 오직 나탈리 포트만이 재키가 가졌던 그 미스터리한 아우라를 펼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나탈리 포트만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재키에게 가진 것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당신은 지금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그리고 대상에게, 배우에게 그런 질문을 가지게 될 때를 나는 ‘영화적 순간’이라고 부른다. 모든 영화 작업에 있어 그런 순간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나는 그녀가 있어야만 이 영화가 완성되리란 것을, 그녀가 재키의 적임자라는 것을, 그녀 없이는 이 프로젝트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탈리 포트만을 처음 만났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 그녀의 눈은 배우로서의 두려움과 예술가로서의 도전 정신으로 빛나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각본을 쓴 노아 오펜하임에게, 재키가 등장하지 않는 모든 장면을 삭제할 것을 요청했다.

재클린 케네디는 누구인가?
정치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지만 단순히 재클린 케네디를 미국의 여왕쯤 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유투브에서 재클린 케네디의 백악관 투어 영상을 찾아봤다. 도무지 내가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재클린 케네디가 처음 백악관에 입성했을 때, 그녀는 백악관 보수에 많은 돈을 썼고 그 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재클린 케네디가 백악관을 자신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많은 돈을 쓴다고 비판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재클린 케네디는 한때 백악관에 있었던 가구들을 미국 전역에 수배하고, 이를 다시 백악관에 채워 넣음으로써 백악관의 역사를 재건했다. 그리고 그녀는 TV를 통해 자신이 해낸 것이 무엇인지 국민들에게 똑똑히 보여주었다. 재클린 케네디가 스스로를 표현한 이 영리한 방식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영화적 순간을 경험하다
영화란, 일련의 사건들을 이어 붙이는 것이고 그 사건들은 항상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그리고 통제하지 않는 방식으로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가 만들고 있는 영화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영화를 만들다 맞이하는 그런 순간들에 나는 환희를 느낀다. <재키>를 촬영하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런 순간을 느꼈다. <재키>를 작업하면서 맞이한 그 즐거운 순간들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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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 [제7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골든오셀라 각본상 수상
  • [제74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여우주연상-드라마 후보
  • [제70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후보
  • [제70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음악상 후보
  • [제70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의상상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