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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버드

Lady Bird

2017 미국 15세 관람가

코미디, 드라마 상영시간 : 94분

개봉일 : 2018-04-04

감독 : 그레타 거윅

출연 : 시얼샤 로넌(크리스틴 '레이디 버드' 맥퍼슨) 루카스 헤지스(대니 오닐) more

  • 씨네217.86
  • 네티즌8.50

I am LADY BIRD

안녕 내 이름은 “레이디 버드”라고 해
다른 이름이 있지만, 내가 나에게 이름을 지어줬지
모두가 나에게 잘 살아보라고 충고로 위장한 잔소리를 해
하지만 지금 이 모습이 내 최고의 모습이라면?
날 좀 그냥 내버려 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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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별점 (7명참여)

  • 7
    이용철아름다운 소품
  • 8
    김혜리인생의 주권자가 되고 싶은 열일곱의 조바심, 1년 동안의 '걸후드'
  • 7
    박평식더디게 아물던 상처도 그리울지니
  • 8
    장영엽여성의 언어로 다시 쓴 소녀 성장담
  • 8
    이주현내 부끄러운 10대의 일기장을 들춰보는 줄
  • 8
    허남웅때론 친구처럼, 때론 원수처럼, 모녀의 줄탁동시
  • 9
    임수연나도 떠나고 나서야 알았다. 그 지루한 공간을 꽤 좋아했다는 것을
제작 노트
/ Director’s Q&A

Q. 자신의 어린 시절을 토대로 만든 영화인가?
나는 새크라멘토에서 자랐고 그곳을 참 좋아한다. 떠난 후에야 사랑했던 내 고향에게 러브레터를 쓰고 싶다는 게, 영화의 동기가 된 것은 맞다. 사랑의 깊이를 깨닫고 내 삶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알기에는 내 나이가 아직 어렸다. 영화에 담긴 사건 중에 실제 경험담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 영화의 핵심인 고향, 유년 시절, 그리고 떠남의 정서는 내 것이 맞다.

Q. 새크라멘토라는 영화의 배경은 특별한 감정을 일으키는 곳 같은데, 그 이유는?
유년 시절, 존 디디온이라는 새크라멘토 출신 작가의 작품을 우연히 읽게 됐는데 충격이 컸다. 마치 제임스 조이스의 글을 처음 읽어 본 더블린 사람 머릿속이 가루가 돼 버리는 것 같았다. 예술가의 눈에 비친 내 고향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항상 예술이나 글은 중요한 것을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었고 그런 의미에서 내 인생은 전혀,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녀가 쓴 아름답고, 명료하고, 구체적인 그 글이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것이 아닌가. 나는 존이 서술하는 모든 여성이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옷을 입는 방식, 그들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 사람들은 캘리포니아라고 하면 흔히 샌프란시스코나 로스앤젤레스를 떠올리는데 캘리포니아주 한복판에는 광활한 농업 지대가 계곡처럼 가로지르고 있다. 새크라멘토는 이 농업 지대 북쪽 끝에 있고, 캘리포니아 주의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도시 중심에 농업 지대가 자리하고 있다. 화려함을 자랑하는 도시가 아니다. 새크라멘토라는 도시와 그곳에 사는 주민들에겐 겸손함과 끈끈한 정이 있다.

Q. 떠남이라는 소재가 무척 중요해 보이는데, 실제 새크라멘토를 떠나는 경험이 어땠나?
대학교에 간 “레이디 버드”에게 한 친구가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다. 그러자 그녀가 거짓말로 답한다. “샌프란시스코” 이 장면이 내가 이 영화의 각본을 쓸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장면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거부한 데서 오는 수치심의 장면에서부터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 사건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구성함으로써 “레이디 버드”가 고향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 때 관객들이 배반의 상처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 마치 그들도 같은 새크라멘토 출신으로 그곳에 누가 살고 무엇이 있는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레이디 버드”는 지금 막 만난 낯선 사람에게 거짓말을 보탠 고향 이야기를 한다.

Q. 그녀가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그녀에게 “레이디 버드”의 어떤 의미인가?
이름을 다시 정한다는 것은 창조적인 행위이자 종교적인 행위이다. 자기 주체적인 행위이자 새로 이름을 지음으로써 진실한 정체성을 찾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를 테면 진실을 찾게 해주는 거짓말같은 거다. 카톨릭에서는 본인이 따르고자 마음 먹은 성인의 이름을 따서 세례명을 받는다. 락앤롤에서는 그 거대한 신화적 세계에서 자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이곤 한다. 데이비드 보위나 마돈나처럼. 처음 <레이디 버드>의 각본을 쓸 때 뭔가 안 풀린다는 느낌이 들어 빈 종이에 이렇게 썼다. “왜 날 “레이디 버드”라고 부르지 않아?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잖아.” 모두에게 이 이상한 이름으로 자신을 부르게 하는 이 소녀를 난 꼭 이해하고 싶었다.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된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쓰기 전까지는 나도 단 한 번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이름이니까. 근데 그냥 “레이디 버드”라는 소리가 좋았다. 통통 튀는 느낌이지 않나. 조금 촌스럽기도 하고. 각본을 쓰는 건 이 소녀의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나중에, 마더 구스의 “레이디 버드, 레이디 버드, 어서 집으로 가요” 가사가 생각났다. 이 노래는 자녀들이 잘 있을지를 걱정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엄마에 대한 노래다. 이런 노래가 대체 내 머리 속 어디에 둥지를 트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왜 그런 식으로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이런 게 창작 과정에서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알지만 모르는, 모르지만 아는 내 무의식이 알려주는 것들.

Q. 영화는 “레이디 버드”의 고등학교 마지막 해를 그리고 있다.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이유는?
일단 나는 한 해의 시작부터 끝, 전부를 다루는 게 마땅하다고 느꼈다. 한 해의 공식 행사들, 그 순환. 우리가 시작했던 그 자리에 돌아와 끝내는 일. 꼭 빙글빙글 돌면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 같다.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은 정말 찬란하게 빛난다. 그리고 시작되는 순간 어느새 끝나버리고 만다. 끝을 향해 가는 세계에는 뚜렷한 선명함이 있다. 마지막이란 것엔 늘 상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으니까. 이건 학생에게뿐만 아니라 그들 부모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시에는 절대 감사하지 못했던 아름다움, 이제 막 이해할 듯싶은데 끝나버리는 아름다움. 이렇게 앞으로 내달리는 마지막 한 해가 우리 영화의 테마다. 장면이 넘어갈 때 항상 훅 지나가 버리게 편집했다. 절대 장면을 오랫동안 잡아 끌지 않았다.

Q. 연출 과정은 어땠나? 이번 영화를 연출하면서 배운 점이 있다면?
나는 여전히 연출을 배우고 있다. 멈추지 않고 계속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이번 영화를 연출하며 배운 것들을 쭉 나열하는 건 불가능한데다가 지루할 것 같다.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언제나 너보다 더 똑똑한 사람을 쓰라”이다. 이 말은 위대한 촬영 감독 해리스 사비데스의 말인데 우리 영화의 샘 레비 촬영 감독이 알려줬다. 배우들과 스탭들, 영화에 참여해 준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나는 진정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일하는 엄청난 행운을 누렸다. 그리고 감독이라는 타이틀은 별로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감독이라는 건, 내 앞에 있는 모든 것이 있고 그 모든 것이 오직 감독을 기다리고 있다는 건데 내 생각엔 프랑스 단어 중에 하나가 훨씬 더 이 포지션을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것 같다. 바로 ‘r?alisateur’. 감독은 영화를 ‘현실화’하는 사람이다. 제작을 시작하는 원동이 되고, 영화라는 모양새를 갖추게 하고, 결국 영화가 탄생하게끔 하니까. 만들지 않는 영화를 사람들이 알 수는 없다. 만들지 않았는데 존재할 턱이 어디에 있나. 내가 그 영화를 현실화하지 않는 이상!

Q. 연기자 출신 감독이다. 연기했던 경력이 연출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나?
연기자 출신 감독으로서 나는 오디션 과정에 매우 민감하다. 내가 정말 열심히 준비한 것을 다른 사람 앞에 내보이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그걸 사람들이 보지도 않을 때 어떤 느낌인지 내가 잘 안다. 오디션 본 모든 배우들을 다 뽑을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그들의 예술을 나에게 보여줄 때 진지하게 봤고, 또 존중했다. 나는 배우들끼리 감독이 모르는 자신들만의 비밀스런 세계가 있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그들만의 유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거기에 굳이 감독이 끼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나는 우리 영화 출연진들에게 그들만의 공간을 주고 싶었다. 그들만의 언어를 주고 받으면서 그들이 극중 캐릭터를 함께 만들어 간다는 느낌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아주 뒤로 물러선다는 건 아니다. 좋고, 싫은 것 정도는 미리 말해둔다. 하지만 될 수 있으면 간섭하지 않으려 하는 편이다. 배우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의 캐릭터를 완전히 가져야만 한다는 것인데 누군가가 늘 “안돼, 안돼, 안돼,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해야지” 한다면 아마 이 캐릭터가 내 캐릭터라고 절대 느낄 수 없을 거다. 내 일은 범주만 정해주는 거다. 그 안에서 연기를 끌어내는 것은 그들의 몫이다. 범주를 정해주고 나면, 그 캐릭터는 더이상 내 것이 아니니까.

Q. 시얼샤 로넌을 “레이디 버드”로 캐스팅한 이유가 있나?
2015년 토론토 영화제에서 <브루클린>으로 영화제에 방문한 시얼샤 로넌을 만났다. 그녀의 호텔 방에 앉아서 같이 각본을 큰 소리로 읽었는데, 시얼샤가 대사를 내뱉는 순간, 나는 그녀가 바로 “레이디 버드”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시얼샤 로넌의 연기는 심지가 굳고, 재미있었고, 슬펐다. 평범함 속에서 개성도 느껴졌다. 당시 시얼샤 로넌이 브로드웨이 연극 리허설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만일 그녀를 캐스팅한다면 6개월 안에 영화를 마쳐야 했지만, “레이디 버드” 역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는 시얼샤 로넌 단 한 명뿐이었다. 시나리오를 읽은 지 단 2분만에 알았다. 이 역할은 그녀의 것이었다.

Q. 시얼샤 로넌과 같이 “레이디 버드” 캐릭터 연구를 했을 텐데, 그 과정이 궁금하다.
촬영하는 동안 내가 쓴 시나리오를 고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대사 하나하나가 각본에 쓰여진 그대로 읽혔다. 물론 영화가 가장 중요하게 전달하는 것이 말인 건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 대사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것은 콜라주 작품을 만드는 것과 같다. 당시 시얼샤 로넌이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을 하고 있던 터라 천천히 캐릭터에 대해서 알려줬다. 소설이나 책을 읽어보라고 주기도 하고, 노래나 사진을 주기도 했다. 캐스팅 멤버가 꽤 모였을 때는 다같이 만나서 작은 리허설을 하기도 했다. 나는 배우들이 서로서로 함께 사실적인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마법을 이루길 바랐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나는 시얼샤 로넌과 긴 시간 이야기도 나누고 같이 노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말한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연기의 리듬과 감정, 그 모든 것이 완벽하게 “레이디 버드”라는 인물이 되어 있었다.

Q. 영화에서 여러가지 인간관계를 다뤘다. 그 중에서도 엄마와 딸의 관계에 집중한 이유는?
엄마와 딸의 관계는 우리 영화의 러브라인이다. 오랫동안 영화의 가제가 <엄마와 딸>이었다. 십대 소녀에 대한 영화라면 모름지기 이야기의 중심에 한 소년이 놓여야 마땅할 거다.학교 훈남, 인생에 산적한 모든 문제의 해답.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인생이란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여성은 청소년 시절 각자의 어머니와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헤아릴 수 없이 복잡한 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나는 그 모녀 관계를 영화에 중심에 두고 싶었다. 그 두 여성이 등장하는 모든 장면마다 사람들이 격한 공감을 느낄 거라 생각한다. 한 사람은 옳고, 다른 한 명은 틀린 그런 다이나믹은 내가 원한 것이 아니다. 안타까울 만큼 서로에게 닿지 못하는 두 여인을 그리다가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그 사랑을 이룰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다. 나에게는 이런 게 가장 감동적인 러브스토리이다. 어머니와 딸 사이의 로맨스가 가장 격정적인 로맨스 중 하나인 것 같다.

Q. “레이디 버드” 엄마 역에 로리 멧칼프를 캐스팅한 이유는?
내가 아는 로리 멧칼프는 현대 미국 연극계를 일군 최고의 연극 배우 로리 멧칼프이다. 내가 “레이디 버드”의 어머니 역할에 적합할 거라고 생각한 배우는 마치 상대 선수를 완벽하게 제압하면서도 여전히 가벼운 발놀림을 유지하는 복싱 선수처럼 굉장한 깊이와 내공, 그리고 파워를 가진 배우였는데 그게 바로 로리 멧칼프이다. 로리 멧칼프은 매리언을 인간적이고 풍부한 인물로 만들면서도 유머러스한 면을 잃지 않았다. 그녀의 미국 중서부스러움 또한 내가 눈 여겨 본 분위기이다. 억센 느낌이 있다. 멋져 보이는 건 관심 없고 남들 눈을 의식하지도 않는다. 그럴 만한 능력이 흘러 넘치는데도 말이다. 새크라멘토의 겸손함을 그대로 닮은 분들이다. 에단 호크와 함께 출연한 영화 프로모션 인터뷰를 하고 있던 때, 로리 멧칼프와 함께 연극에 오른 적이 있는 에단 호크에게 그녀에 대해 물어봤다. 그가 말했다. “당신의 작품에 로리 멧칼프가 참여하는 엄청난 행운이 주어진다면 말이야. 자네는 진정한 연기란 게 무엇인지 보게 될 거야. 그녀가 보여주는 게 진짜라고.” 위대한 운동 선수의 경기력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기가 불가능하다. 그저 그들이 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뿐. 리허설을 시작하자마자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광경을 봤다. 완벽했다.

Q. “레이디 버드”와 엄마 매리언이 어떤 면에서 서로 닮았다고 보나? 그리고 어떤 면에서 다른가? 그 닮음과 다름이 어떻게 그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을 유발한다고 보는지?
“레이디 버드”와 매리언은 동전의 양면이다. 그 두 사람의 비슷한 점이 그들을 가깝게도 멀게도 하는 거다. 시얼샤 로넌과 로리 멧칼프, 두 배우의 키가 거의 같다는 것이 나는 너무나 맘에 든다. 맨 첫 장면부터 나는 그들이 서로가 서로의 다른 한 면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두 사람의 갈등엔 세대차이가 한 몫을 한다. 두 사람 모두 미국에서 여성으로 성장했지만, 서로 완벽하게 다른 경험을 했을 거다. 1980년대 태어난 “레이디 버드”는 자신에 대한 원대하고 큰 꿈을 꿔도 되는 세대의 일원이다. 반면 매리언은 1950년대의 전후 문화를 배경으로 성장한 세대에 속해 있다. 매리언의 부모 세대는 대공황을 경험한 세대일 것이고. 우리 것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다툼도 사실 이 세대 차이에 근원이 있는 것이다. 세대 차이라는 게 모녀 관계에 얼마나 큰 갈등을 유발하는지 간과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Q. “레이디 버드”와 아버지 래리는 어떤 관계인가?
아버지 래리는 “레이디 버드”의 영웅이다. 그녀는 아버지를 너무나 사랑해서 자신이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이유로 아버지가 슬퍼하는 것을 못 견뎌 한다. 나는 트레이시 레츠를 정말 좋아하지만 단 한 번도 그가 이렇게 부드러운 역할에 어울린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선댄스 영화제에서 실제로 만난 트레이시 레츠는 내가 어느 연극이나 영화에서도 본 적이 없는 따스함과 다정함을 가지고 있는 분이었다. 그가 연기한 래리는 지혜롭고 선하며 감수성이 풍부한 인물이 됐다. 래리는 말없이 가족의 균형을 맞춰주고 있다. 그는 아내도 너무나 사랑하고 딸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그가 두 사람을 이해하듯 그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기를 바란다.

Q. 대니 역에 루카스 헤지스를 캐스팅한 이유는?
선댄스 영화제에서 루카스 헤지스가 나오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봤고 영화가 끝난 뒤로도 한참동안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나는 그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쓴 다음, 하고 싶은 역할을 고르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가 대니를 고르더라. 정확히 내가 루카스 헤지스에게 주고 싶었던 역할이었다.

Q. 대니와의 관계가 레이디 버드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쳤나?
“레이디 버드”는 대니의 이야기는 보지 않은 채, 자기 인생 스토리의 일부 쯤으로 인식한다. 그러다가 대니가 그녀가 일하는 카페로 찾아온 장면에서 “레이디 버드”는 변화하기 시작하고 그를 자기만의 서사를 가진 한 사람으로 보게 된다. 나는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변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한 사람의 인생의 무게가 그녀를 강타할 때, 그때가 바로 그녀의 이야기가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 순간이다.

Q. 카일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어떻게 티모시 샬라메를 캐스팅하게 됐는지?
티모시 샬라메가 직접 오디션을 보러 왔다. 그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배우이다. 젊고, 재능도 너무 뛰어나고, 게다가 지적이다. 컬럼비아 대학교 출신인데다가 피아니스트이기도 하고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구사한다. 하지만 티모시 샬라메의 그런 엄청난 지적 능력에는 카일 역에 딱 어울릴 만한 뭔가가 있었다. 카일은 다루기 어려운 캐릭터이지만, 생각이 깊은 캐릭터이기도 하다. 티모시 샬라메는 그런 걸 사실적으로 연기할 수 있는 배우였다. 나는 티모시 샬라메에게 사회학 책, 경제 이론서, 수학 이론서, 그리고 인터넷에 대해 쓴 논문들을 읽으라고 보내줬다. 양이 굉장히 많았다. 그 중에서도 ‘인터넷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에세이집은 내가 무척 좋아하는 것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을 그대로 줬다. 티모시 샬라메가 책을 읽으면서 내가 빈 칸에 남겨 놓은 메모도 같이 봤는지 내 생각이 카일의 세계관과 비슷한 데에 대해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었다. 그가 그랬다. “아마 다들 감독님이 “레이디 버드”라고 생각할 텐데, 사실은 카일이시군요.”

Q. “레이디 버드”는 왜 카일에게 매력을 느꼈을까?
“레이디 버드”는 카일을 보면서 생애 최초로 강렬한 성적 매력을 느끼게 된다. 그 장면의 대본 지문이 ““레이디 버드는 일 초 만에 모든 R&B 노래들을 이해하게 된다” 였다. “레이디 버드”는 그에 대한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꾸며 낸다. 그게 십대 소녀들이 하는 일이니까.나는 촬영장에서 존 휴즈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노래들을 자주 틀었다. <핑크빛 연인><아직은 사랑을 몰라요> 같은 영화들이었는데 내가 엄청 좋아한다. 여자들은 이런 로맨스를 보고 배우며 자란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이상적인 로맨스는 깨기가 참 어렵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영화에 나오는 완벽한 남자와는 다르다는 게 선명히 보일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우리 영화를 통해서 환상의 세계와 환상이 깨진 세계, 둘 다 보여주고 싶었다. 그 환상이 모래 위에 지은 성일 뿐이라는 걸 깨닫는 과정에서 겪는 격정적인 감정을 담고 싶었다.

Q. “레이디 버드”가 대학에 들어간 후 뉴욕이라는 공간에서 영화가 끝난다. 왜 뉴욕인가?
영화의 엔딩이 진짜 끝일 수 없고 영화의 시작이 진짜 시작점일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리는 언제나 뒤를 되돌아 보고 명백히 다 끝난 것 같은 일도 자꾸 정리하면서 산다. 비행기가 이륙한다. 이런 엔딩은 거짓말이며,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으로도 빵점이다. 비행기에 올랐다고 해서 간단하게 과거와 결별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내가 이 영화를 만들면서 생각한 퀘이커 교도들의 개념이 있는데 그들은 열린 길과 닫힌 길이 있다고 말한다. 열린 길은 다음 단계가 눈에 훤한 경우를 말한다. 내가 지금 걸어야 할 길이 내 앞에 평탄하게 펼쳐져 있는 거다. 닫힌 길은 반대다. 내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깨닫는 거다. ‘문이 닫혔구나.’ 우리 영화의 마지막에는 이 열린 길과 닫힌 길이 공존하고 있다. 앞으로 내딛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저 그동안의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앞에 펼쳐진 새로운 삶에 한발짝 내딛는 것뿐!

Q. 영화의 기술적인 측면도 궁금하다. 샘 레비 촬영 감독과의 협업은 어땠나?
샘 레비 촬영 감독님과는 지금까지 세 편의 영화를 같이 했다. 그 중의 두 편은 내가 공동 각본가로도 참여했던 작품이었다. 그래서 그가 <레이디 버드>에 참여하겠다고 했을 때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했다. 내가 원한 그림은 중세 시대의 트리프티카처럼 장면 하나하나가 구체적으로 액자화 된 것이었다. 나는 이야기는 하나의 비유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영화의 영상이 그 생각을 반영해 주길 바랐다. 또 한 가지는 당시를 그대로 보여주기 보다는 한 시기에 대한 추억같은 느낌의 색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예쁘장하게 만들었다는 느낌은 주고 싶지 않았고, 아름답기를 바랐다. 왜냐하면 그게 정직한 새크라멘토의 모습이니까. 동시에 나는 우리 영화의 등장 인물들이 아름답게 보이기를 바랐다. 우리는 특별히 노스 캘리포니아만의 아름다움과 색, 그리고 평평한 대지를 잘 포착한 웨인 시에버드와 그레고리 콘도스의 그림들을 관찰했다. 그들이 사용한 부드럽지만 밀도 높은 채색을 보고 있노라면 고향이 떠오르는 것 같다. 그 색감을 얻기 위해서 샘 레비 촬영 감독님과 나는 알렉스 비켈 컬러리스트와 협력하며 일했다. 제작 초기부터 우리와 함께 작업하면서 영화의 영상을 정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줬다. 또 한 가지는 영화가 ‘바로 저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Q. 편집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닉 후이 편집 감독과 함께 일했는데 어땠나?
사실은 닉 후이 편집 감독이 먼저 <프란시스 하>와 <미스트리스 아메리카>의 편집을 맡았던 제니퍼 레임 감독을 통해서 연락을 해왔다. 편집은 영화를 다시 쓰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그가 시나리오를 읽고 자신의 생각을 담은 코멘트를 전해 왔는데, 마치 작가 같았다. 우리 영화의 분위기가 어떤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팝송 중에 다른 가수가 느린 버전으로 리메이크를 한 걸 들으면 가사가 귀에 들리기 시작하면서 굉장히 슬픈 노래였음을 깨닫게 되는 곡들이 있지 않나. 우리 영화가 그런 느낌이라는 걸 닉 감독이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관객을 옴짝달싹 못하게 꽉 붙드는 영화를 좋아한다. 관객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야기가 엮어지고 있는 그런 영화. 닉 후이 편집 감독은 내가 바라는 가벼움을 잘 알고 있었다. 영화가 꼭 해변에 부서지는 파도처럼 재미있고 신나다가 어느 순간 그 심연에 있는 무언가가 느껴지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전에 이미 관객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바다 깊숙한 곳에 빠졌음을 발견하게 될 거다.

Q. 영화 속 의상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사실 평범한 옷들인데 등장 인물 캐릭터에 아주 딱 어울리는 것 같다. 에이프릴 네피어 의상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에이프릴 네피어 의상 감독도 마이크 밀스 감독의 추천으로 만나게 된 분이다. 미팅에 나갔는데 우리가 똑같은 스타일의 옷을 입은 게 보였다. 마치 계시처럼 느껴졌다. 내가 의상 작업 과정을 지켜 보면서 정말 마법 같다고 느꼈던 것은 그녀가 배우들과 함께 일하는 방식이었다. 배우와 일대일로 미팅을 한 후에 미팅 과정에서 발견한 것들을 나에게 보여주곤 했다. 한번은 줄리 역을 맡은 비니 펠드스타인과 함께 동영상 하나를 보여줬는데 거기에 줄리가 가발을 쓰고 발에는 스케쳐스 운동화를 신은 모습이 담겨 있었다. 바로 그런 디테일에 대한 세심한 태도가 내가 바라는 것이었다.

Q. 존 브라이언 음악 감독과의 작업도 어땠는지 궁금하다. 음악들을 통해 어떤 효과를 얻었나?
존 브라이언 음악 감독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가이자 작곡가이고 프로듀서이다. 이 영화의 음악은 멜로디가 강조된 조금은 촌스러운 스타일인데, 내가 바라던 바였다. 나는 영화 음악을 그저 잔잔한 배경쯤으로 여기지 않는다. 음악은 스토리텔링 요소 중의 하나로 현재성을 강하게 띠며 구조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존 브라이언 감독이 야행성이라 내가 로스앤젤레스로 날아가서 함께 꼬박 밤을 지새우곤 했다. 우리는 이야기도 나누고 같이 우리 영화의 몇 장면들을 보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존이 피아노 앞에 앉아 그 장면에 맞는 아름다운 멜로디를 지어내는 거다. 그러고 나면 잠시 멈추고 이야기를 좀 더 나누곤 했다. 영화와 삶, 그리고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 그렇게 조금씩, 그는 우리 영화의 음악을 완성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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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와 스탭

감독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