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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온다

一陽來復 Life goes on

2018 일본 전체 관람가

다큐멘터리 상영시간 : 81분

개봉일 : 2019-03-14 누적관객 : 530명

감독 : 윤미아

출연 : 후지와라 노리카(내레이션) 야마데라 코이치(내레이션) more

  • 씨네216.00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그 후,
무너진 땅 위에서 여전히 마음과 삶을 굳건히 일구는 사람들.
계절이 가고 풍경은 변했지만 그래도 삶은 소중하다고 말하는 이들의 뭉클한 희망에 대한 이야기.

동일본 대지진
2011년 3월 11일 14시 46분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은 진도 9.0의 강력한 지진으로 전 세계에 슬픔과 아픔을 가져온 사고였다.
재해 직후 피해자 수는 약 47만 명에 이르렀고 일본 역사상 최악의 지진으로 기록되었다.
일본 부흥청에 따르면 2017년 9월 1일 기준,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19,575명, 실종자는 2,577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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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
    이다혜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삶, 봄은 이제야 오는가
제작 노트
ABOUT MOVIE 1

2011년 동일본 대지진 그 후, 봄과 함께 싹트는 뭉클한 희망!
계절이 가고 풍경은 변해도 여전히 삶은 소중하다!
내일을 위한 사람들의 희망 찬가 <봄은 온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역사상 최악의 지진으로 불리는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다. 진도 9.0의 거대한 지진은 직후 약 47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피난민을 양산했고, 수치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아픔을 안겼다. <봄이 온다>는 2011년에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 이후, 모든 것을 잃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여전히 삶을 일구며 내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희망을 담은 영화이다. 재일 동포 3세인 윤미아 감독의 데뷔작으로,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가 가장 컸던 지역 곳곳을 다니며 마을 재건에 힘쓰는 주민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카메라에 담았다. 비록 대지진 생존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지만 지진의 참혹한 피해 모습이나 규모에 집중하거나 연민의 시선을 보내는 대신, 재해를 극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백하고 사려 깊은 시선으로 담아내 주목받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기 다른 아픔과 상실을 겪었지만 서로를 위로하고 연대하며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이러한 인물들의 모습은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보는 이에게 뭉클한 감동을 전한다. <봄은 온다>의 윤미아 감독은 사람들과 피해 지역의 재건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 나쁜 일이 일어난 후에는 좋은 일이 생긴다.’라는 의미의 ‘일양래복(一陽来復)’을 원제로 붙였으며 일본의 유명 배우 후지와라 노리카와 일본을 대표하는 최고의 성우 야마데라 코이치가 내레이션으로 참여해 여운을 더했다. 계절이 가고 풍경이 변해도 삶은 여전히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봄은 온다>는 3월 14일 개봉해 따뜻한 이야기로 희망과 행복의 기운을 싹 틔울 것이다.


ABOUT MOVIE 2

“살아간다는 게 그런 거 아닐까요?”
5개 마을, 10개월의 시간, 100여 명의 사람들!
각기 다른 방식으로 들려주는 삶에 대한 이야기!

<봄은 온다>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 6년 후인 2016년 여름부터 2017년 봄까지 약 10개월 동안 일본의 동북지역을 무대로 100여 명의 사람들을 만난 이야기를 담았다. 먼저 목공예 장인인 엔도 신이치 씨는 부인 료코 씨와 함께 쓰나미로 인해 집과 세 아이를 잃은 장소에 지진 당시 함께 지냈던 사람들을 위한 지역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아이를 잃은 후 사는 게 지옥 같았다고 말하는 부부는 일해야 할 의미조차 상실한 채 힘겨운 시간을 보냈지만, 쓰나미로 인해 일본에서 원어민 교사를 하고 있던 딸 테일러 앤더슨 씨를 잃은 부친 앤디 씨와 모친 진 씨의 의뢰로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살아온 흔적을 만드는 것이 사명이라고 생각한 앤디 씨는 미국 전역에서 성금을 모아 기금을 마련했고, 엔도 씨를 설득해 ‘테일러 문고’라는 이름의 책장을 완성해 학교에 기증하고 있다. 두 부부는 이후로도 두터운 우정을 나누고 있다. 한편, 매일 아침 ‘이야기 버스’를 운행하는 호텔에서는 직원인 이토 슌 씨가 “(지진을) 없었던 일처럼 잊어버리고 싶지 않다. 희생자들의 삶의 의지를 남겨진 우리가 소중히 간직해야 한다”고 말하며 방문객들에게 당시의 이야기를 전한다. 자영업자들 또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쓰나미에 휩쓸려간 가게 건물의 대출금을 지금도 조금씩 갚아 나가고 있는 사토 노리코 씨와 딸 토모코 씨는 “세상살이가 녹록지 않다”며 웃는다. 꽃집을 운영하는 사토 노리아키 씨도 가게 복구에 열심이다. 회사원인 오쿠다 에리카 씨는 결혼 5일 만에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뱃속의 아이와 단둘이 남았다. 이후 태어난 딸 리사토는 씩씩하게 자라 주산 공부에 빠져 있고, 사진 속 아빠를 찾아가 응석을 부리기도 한다. 에리카 씨는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진 않겠지만 언젠가는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한다. 이처럼 재해 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일상을 일궈온 인물들의 이야기는 쓰나미조차 휩쓸지 못한 사람들의 의지와 굳은 신념을 느끼게 한다. 재해가 지나간 후, 피해 지역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담아낸 <봄은 온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소중히 지켜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무엇보다도 소중한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를 선사할 것이다.


ABOUT MOVIE 3

“인생철학이 담긴 작품!”, “진솔한 희망을 느낄 수 있는 멋진 영화!”
일본, 미국, 독일, 호주, 영국, 프랑스 등
전 세계 순회 상영과 함께 하는 호평과 찬사!

<봄은 온다>는 2018년 2월 첫 상영 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본은 물론이고 해외에서 역시 영화제와 상영회를 통해 꾸준히 관객과 만나고 있다. 일본 하면 떠오르는 대표 감독인 이시이 유야 감독의 <행복한 사전>,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앙: 단팥 인생 이야기> 등에 이어 2018년 일본 후생성 아동복지문화상을 수상한 <봄은 온다>는 2018 런던국제필름메이커영화제를 시작으로 2018 니스국제필름메이커영화제에 초청되어 해외 관객에게 소개되었고 이후 미국, 호주, 오스트리아, 독일 등 전 세계 순회 상영으로 호평을 끌어냈다. <봄은 온다>를 관람한 관객들은 “인생철학이 담긴 작품!”, “세상에 넘쳐나는 거짓 냄새가 나는 희망이 아니라 진솔한 희망을 느낄 수 있는 멋진 영화!”, “슬픔을 극복해가는 생명의 강인함. 아주 아름다운 영화”, “감동적이었다. 등장인물들의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이 영화를 보고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한 걸음씩 나아가며 살아나가는 강인함과 재해를 뛰어넘는 사람으로서의 진의와 정을 깨닫게 하는 영화” 등 영화가 전한 뭉클한 감동과 공감의 메시지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또한 관람객들은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긍정적인 태도와 말이 일상을 지내며 잊기 쉬운 삶의 위대함과 숭고함을 일깨워주었다며 반드시 봐야 할 영화로 입을 모아 추천했다. 일상에 숨어있는 작은 희망과 행복을 발견하며 내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봄은 온다>는 올봄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당신에게 따뜻한 용기를 전할 것이다.



PRODUCTION NOTE

동일본 대지진

발생 일시: 2011년 3월 11일 14시 46분
지진 규모: 9.0
지진 형태: 해구형
진도 6이상 지역: 미야기현, 후쿠시마현, 이바라키현, 도치키현, 이와테현, 군마현, 사이타마현, 지바현(총 8개 현)
피해 특징: 거대 쓰나미로 인한 연안부의 극심한 피해 발생.
사망자: 19,575명(재해 관련 사망 3,647명 포함(2017년 9월 1일 기준))
실종자: 2,577명(2017년 9월 1일 기준)
주거지 피해(전손): 127,776세대(2017년 9월 1일 기준)
전국 피난민 수: 약 8만 명(컨테이너형 가설 주택 거주자 약 2만 명 포함(2017년 12월 기준))
재해 직후 피난민 수: 약 47만 명

*참조: 일본 부흥청 홈페이지


카메라가 만난 사람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고 6년이 흐른 후, <봄은 온다>의 제작진은 극심한 피해를 본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와 미나미산리쿠 마을, 이와테현 가마이시시, 후쿠시마현 가와우치 마을과 나미에 마을을 주 무대로 2016년 여름부터 2017년 봄까지 10개월 동안 백여 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이 지역의 많은 이들은 재해로 거의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실감을 딛고 일어나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고 있다.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는 사람, 재해로 떠나보낸 이들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땅과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 등 카메라는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함께 담아냈다.


엔도 신이치(목공업)

“각자 다양한 삶의 짐을 등에 업고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그게 얼굴에 쓰여 있지는 않죠.
하지만 살아간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요?

자신의 공방인 ‘모쿠유보쿠(木遊木)’에서 놀이기구부터 가구, 작은 도구 등 다양한 목제품을 만들고 있다. 지진 직후 당시에는 와타노하 보육원에서 여러 사람과 피난 생활을 했다. 당시 함께 생활했던 사람들을 지원하고 다른 시민들과 연대하기 위해 자원봉사 단체인 ‘UNITE TOGETHER’에서 지원을 받아 옛 집터에 컨테이너 사무소를 차렸다. 사무소를 시작으로 주변에 ‘무지개다리’라는 놀이기구를 만들고 ‘팀 와타호이’라는 자원봉사단체 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지진 발생 후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함께 해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리프 케어(큰 슬픔에 빠진 이들의 치유를 돕는 것)’에 대해서도 공부 중이다. ‘코코로 스마일(마음을 스마일)’이라는 어린이들의 슬픔 치유 지원 단체의 공동대표로 활동 중이며 지진 후 황반부종을 앓았기 때문에 시력보호를 위해 지금은 색깔이 들어간 안경을 착용하고 있다.

엔도 료코(주부)

“그날을 전환점이라고 얘기한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지는 건 없어요.
다 같이 그날을 곱씹으며 더디지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야겠죠”

지진 당일에는 직장인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자택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2일 후. 지진이 일어나고 2년 후 다니던 병원을 그만두고 남편 신이치 씨가 만든 자원봉사단체 ‘팀 와타호이’의 활동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본인이 중심이 된 여성 프로젝트는 ‘이시노마키 수공예’로 테일러 씨의 모친인 진 테일러 씨의 권유로 시작하게 되었다. 오래된 기모노를 재활용하여 원단의 느낌을 살린 수공예 축하카드를 만들고 있고, 2017년부터 테일러 앤더슨 기념 기금과 연이 닿아 미국 워싱턴의 내셔널 갤러리의 벚꽃 축제 기간에 축하카드를 판매하기도 했다.

앤디 앤더슨(Andy Anderson)

“비참한 상황에서도 모두가 친절했고 테일러와의 추억을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우정이 시작되었죠.”

지진 당시 일본에서 원어민 교사 생활을 하고 있던 테일러 앤더슨 씨의 부친으로 현재 미국 버지니아주에 거주 중이다. 재해 10일 후에 이시노마키를 방문, 딸이 살아있다면 무엇을 했을까 하고 생각한 끝에 이재민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엔도 신이치 씨와는 2011년 8월에 처음으로 만났다. 엔도 씨 부부가 아이들과 집을 모두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말은 통하지 않아도 신이치 씨를 ‘형제’와 다름없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진 앤더슨(Jean Anderson)

“학교와 학생들이 테일러 문고를 사용함으로써
딸의 이름이 살아 숨 쉰다고 느꼈어요.
딸의 이름이 잊히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쪽이 따뜻해졌어요”

테일러 앤더슨 씨의 모친. 지진 후 수년간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천천히 고통과 마주하며 조금씩 슬픔을 이겨냈다고 한다. 이시노마키에 수차례 방문하며 엔도 부부와 우정을 쌓았다.

오쿠다 에리카, 오쿠다 리사토(회사원/딸)

“떠올리면 괴로운 기억이지만 그렇다고 잊어버릴 수는 없잖아요.
항상 참 갈등이에요.
그래도 언젠가는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겠죠?”

에리카 씨는 재해 5일 전에 결혼식을 올리고, 3월 11일 혼인신고를 할 예정이었다. 남편인 사토시 씨는 조부모와 여동생과 함께 쓰나미에 희생되었다. 재해 4개월 후 딸 리사토를 출산했고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바로 그때의 갓난아기가 이렇게 잘 자랐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드리고 싶다며 출연을 승낙했다. 현재 리사토는 주산 준 2단, 암산 3단에 합격했고 2018년 4월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이토 슌(호텔 직원)

“그날의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돌아가신 분들의) 생의 의지를 생각하면,
남은 우리가 그 의지를 소중히 지켜야 합니다”

미나미산리쿠 마을에서 태어나 미나미산리쿠 칸요 호텔에서 일하는 젊은이. 재해 후에는 이야기 버스의 안내 가이드로서 재해 현장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재해 당시에는 손님들의 안전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생후 10개월인 딸과 아내는 무사히 피신했다고 한다. 그는 가족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이웃 주민들이 도와줬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그 감사한 마음을 평생 간직하고 싶다고 전한다. 고향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며 마을이 하루빨리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를 바란다.

아베 노리코(호텔 지배인)

“더 많은 사람과 연대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각자의 장점을 살려서 연대하는 것이 큰 힘이 됩니다”

1972년부터 문을 연 ‘미나미산리쿠 칸요 호텔’의 여주인. 창업자인 부친이 단단한 암반이 있는 곳에 호텔을 세운 덕에 지진 피해는 없었지만, 쓰나미는 2층의 노천탕까지 도달했다. 재해 직후에는 호텔을 숙박객과 인근 주민들의 피난소로 제공했고, 전기와 수도도 들어오지 않고 남편과 딸의 안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 상황을 진두지휘했다(남편, 딸과는 며칠 후 무사히 재회했다). 호텔은 그 후, 피난소로써 반년간 600명을 수용했으며 지배인은 ‘지역 사회의 재생’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녀는 고향의 재건을 위해서는 고용환경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로자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고용환경 창출에 힘쓰는 경영자들과 아이들의 교육지원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사토 노리아키(꽃집 운영)

“인구가 줄어든 만큼 수요에 맞게 꽃을 들여놓는 것도
이제부터 생각해야겠죠”

재해 전에는 시즈가와역 바로 앞에 있는 자택 겸 가게에서 부친과 부인과 함께 꽃집을 운영했다. 재해 얼마 후 ‘미나미산리쿠 호텔 칸요’에 가족 모두 피신했고 당시 부친이 호텔 내의 관엽식물 관리나 해바라기를 심는 등 자원봉사에 발 벗고 나선 것에 영향을 받아 꽃집 영업을 재개했다.

스즈키 켄이치(아르바이트)

“일단 지금은 하루빨리 집을 지어서 가족들을 위해 불단을 잘 만들어 주고 싶어요.
그렇게 하고 나면 내 기분도 조금은 나아지겠죠”

가마이시 시청에서 오랫동안 운전사로 근무한 후 정년퇴직했다. 소방서 본부장, 마을 신사의 대표 등 역할도 맡았지만 재해 후에는 자리를 내려놓고 자택 재건에 힘쓰고 있다. 재해 당시 소방 단원으로서 수문을 잠그러 간 사이 자택에 남아있던 가족 4명(부인, 장남, 며느리, 초등학교 5학년 손녀)은 쓰나미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켄이치 씨는 불단을 만들기 전까지는 약해지지 말고 열심히 일할 거라고 말하며 매일 아침 조깅을 한다. 운전사 일과 항구에서 아르바이트 일을 병행하고 있고 현재는 가설주택에서 혼자 살고 있다. 현관에는 손녀가 사용하던 노란색 가방을 걸어두고 있다.

사토 노리코, 사토 토모코(주류 판매점)

“세상살이 녹록지 않더군요”
“없어진 거니까 어떻게 방법이 없나 해도 별 수 없더라고요”

1882년 창업한 주류 판매점을 경영하는 모녀. 재해 직후에는 친척이 있는 홋카이도로 피신했지만 2011년 12월 고향으로 돌아와 가설점포를 열었다. 재해 당시 몇 개월 전에 술 재고를 잔뜩 받아두었던 터라 더 피해가 컸다. 쓰나미로 인해 가게와 창고가 모두 휩쓸려간 바람에 술의 상품값과 점포 대출금을 여전히 갚아 나가고 있다. 살고 있던 집도 휩쓸렸기 때문에 집과 가게의 재건을 위해 고군분투 중. 2018년 4월에 드디어 재건한 가게를 오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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