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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플레이브를 경유해 알아보는 버추얼 아이돌의 현재 성과와 미래 - 매력 탐구!, 버추얼 아이돌에 접속하다
조현나 2024-03-29

초동(음반 발매 후 1주일간의 판매량) 56만장 돌파. 지난 2월27일 발매된 《ASTERUM: 134-1》이 세운 기록으로, 이로써 버추얼 그룹 플레이브는 역대 보이 그룹 그룹별 최고 기록 17위에 올랐다(3월10일 기준). 중국 팬덤의 공동구매 없이 국내 팬의 성원만으로 이뤄낸 것이며, 다수 K팝 아이돌의 초동에 해외 팬 지분이 큰 걸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결과다. 《ASTERUM: 134-1》의 타이틀곡 <WAY 4 LUV>로 음악방송 <쇼! 챔피언>과 <쇼! 음악중심>에서 연이어 1위에 오른 이 1년차 신인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일각에서는 버추얼 아이돌을 단순히 게임 NPC,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비슷한 존재로 인식하거나 일부 팬층이 향유하는 서브컬처로 여긴다. 하지만 플레이브를 위시한 버추얼 아이돌의 존재와 성과가 이들에 무관심하던 대중에게까지 조금씩 인지되는 추세다. 자주 거론되듯 버추얼 아이돌은 실존 아이돌의 대안일 수 있으며 그렇기에 떠오르는 블루오션일까. 이러한 가능성을 점쳐보기 위해서는 버추얼 아이돌의 사례와 인기몰이하는 현 상황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사이버 가수의 역사

플레이브

사이버공간에서 활동하는 플레이브가 생소하게 여겨질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플레이브가 사이버 가수의 첫 사례는 아니다. 1998년, 아담이 최초의 국내 사이버 가수로서 모습을 드러냈고 아담의 인기에 힘입어 같은 해 사이버 가수 류시아가 데뷔했다. 이후 아이돌 그룹의 형태로도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중 나스타, 슈퍼카인드는 버추얼 멤버와 인간 멤버가 함께 활동한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멤버 전부가 버추얼 아이돌이며 근래 대중적으로 주목받은 그룹으로는 이세계아이돌, 메이브(MAVE:), 플레이브를 꼽을 수 있다.

이세계아이돌은 2021년 디지털 싱글앨범 《RE : WIND》를 발매하며 데뷔한 6인조 버추얼 걸 그룹으로, 아프리카TV에서 활동하는 우왁굳이 기획한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졌다. 음악 스트리밍서비스 멜론에서 K팝을 이끈 주역을 기념하기 위해 선정한 명예의 전당에 멜론 최초, 버추얼 아이돌 최초로 4회 이름을 올렸으며 2023년 발매한 디지털 싱글 《KIDDING》은 빌보드 코리아 3위에 기록된 바 있다. 2023년 데뷔한 메이브는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의 메타휴먼 제작기술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K팝 아이돌 기획 제작 역량을 결합해 제작됐으며 리얼타임 엔진을 활용한 풀 3D로 제작된 4인조 버추얼 걸 그룹이다. 데뷔 1개월 만에 뮤직비디오 1800만뷰, 데뷔 생방송 무대 영상 300만뷰를 기록했으며 2023년 11월 발매한 <What’s My Name>의 뮤직비디오도 1129만 조회수를 기록했다(3월21일 기준). 2023년 데뷔한 플레이브는 블래스트 소속의 5인조 버추얼 보이 그룹이다. 앞서 언급된 성과 외에도 4월13~14일 양일간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개최되는 첫 팬 콘서트가 지난 3월21일 예매가 시작된 지 10분 만에 전석 매진됐다. 이 세 그룹은 기본적으로 유튜브 등의 온라인 플랫폼을 기본으로 팬들과 소통하거나 콘텐츠를 공유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아이돌의 기획 단계를 철저히 따랐다

메이브

이세계아이돌, 메이브, 플레이브는 버추얼 아이돌이란 카테고리로 묶이지만 들여다보면 그룹마다 특징, 방향성이 전부 다르다. 먼저 이세계아이돌은 멤버들이 아이돌이자 스트리머이기 때문에 팬들과의 쌍방형 소통이 활발히 이루어진다. 커버곡을 제작하는 등 방송을 통해 1차 콘텐츠를 끊임없이 제공하는데, 주목할 것은 그만큼 팬덤이 형성하는 2차 콘텐츠의 양 또한 상당하다는 점이다. 팬들은 영상, 일러스트레이션 등을 제작해 팬카페를 통해 공유하고 이는 이미 이들만의 팬덤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이세계아이돌의 IP는 멤버들 본인과 팬들의 손에 의해 다양하게 변주되며 활용된다. 지난 1월 마감된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웹툰 <마법소녀 이세계아이돌>의 텀블벅 단행본 펀딩에는 한달간 총 3만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해 누적 금액 41억원을 돌파했다. 이는 국내 크라우드펀딩 역사상 최대 후원 기록이다. 해외까지 아우르는 K팝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최근 많은 신인 아이돌이 춤과 노래, 스타일까지 완벽히 세팅된 완성형 아이돌 형태로 데뷔한다. 외형과 실력 면에서 메이브는 이러한 완성형 아이돌에 가깝다.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기획 단계부터 단순히 기술 과시가 아닌, 글로벌 K팝 팬들이 환호할 수 있는 ‘아이돌’로서 다가가고자” 했기 때문에 “A&R(Artist & repertory) 및 매니지먼트가 긴밀하게 협력하는 등 실제 아이돌을 데뷔시키는 모든 과정을 비슷하게 거쳤다”고 말한다. “걸 그룹이기 때문에 4인의 조화, 개인의 개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캐릭터 성격부터 설정해놓고 시작”했으며 “다양한 인물의 레퍼런스들을 참고했고, AI로 조합해보는 시도 등”도 진행했다. 또한 실제 K팝 아이돌에게 노래, 안무 실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해 “곡 선정, 스타일링과 함께 버추얼 아이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안무와 퍼포먼스에 비중”을 뒀다는 것이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 관계자의 설명이다. 실제로 데뷔 이후 메이브는 완성도 높은 춤과 노래로 호평받았으며,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에서도 이를 메이브의 인기 요인으로 분석한다. 또한 네명의 멤버가 각각 한국어, 프랑스어, 영어, 인도네시아어를 구사해 해외 팬이 느낄 언어적 장벽을 완전히 낮췄다.

스토리텔링도 기술도 성장형 아이돌

이세계아이돌 IP를 활용한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웹툰.

한편 플레이브는 성장형 아이돌의 서사를 따른다. 플레이브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는 멤버들의 연습생 시절부터 데뷔 1주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기록돼 있다. 플레이브 팬 A씨는 “늦게 덕질을 시작했는데, 멤버들의 데뷔 전 모습부터 전부 확인할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한다. 플레이브의 ‘성장’에는 춤과 노래가 갈수록 늘고 더 여유 있는 모습으로 방송에 임하는 멤버들의 변화와 기술적 발전이 맞물린다. 데뷔 초반 플레이브가 주목받은 요인 중 하나는 몸이 통과되거나 작동이 멈추는 등 라이브 방송에서 기술적 오류가 발생하고, 이를 고치려는 멤버들의 모습을 모은 유튜브 영상이 흥했다는 점이다. 다수 팬이 이 영상을 통해 플레이브에 관심을 기울이고 팬심까지 갖게 됐다고 말한다. 이제 멤버들의 기술적 오류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쇼! 음악중심>의 노시용 PD도 “첫 촬영 때는 멤버들이 약간 긴장하는 모습이 느껴졌는데, 이제는 멤버들의 표정이나 동작, 안무가 훨씬 자신감 있고 자연스러워졌고 무엇보다 즐기면서 한다는 게 눈에 보인다”고 전한다. 직접 곡과 안무를 창작하는 자급자족형 아이돌로서 지속적으로 실력을 증명해온 점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룹별 특성과 방향성이 다르기에 팬에게 소구되는 포인트도 각기 다를 것이다. 현재로선 버추얼 아이돌이 가상 세계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고 열애설이 발생할 일이 없다는 것이 인기 이유로 거론된다. 실제로 그럴까. 플레이브 팬 B씨는 “리스크가 없는 아이돌을 좋아하고 싶단 이유로 덕질을 시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좋아하는 이유를 인지하기 전에 “교통사고처럼 마주하는 것이 아이돌 입덕”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리스크가 적다는 사실은 좋아하는 대상을 덕질하는 데 플러스 요인이 될 순 있지만, 특정 대상에게 애정을 느끼고 장기간 몰입할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애초 리스크가 적다는 분석 자체가 ‘가상 세계에서 활동한다’는 사실에 기반한 단편적 접근이고, 버추얼 인플루언서를 포함한 버추얼 휴먼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특성이다. 따라서 버추얼 아이돌의 인기 요인으로 좁혀 설명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편견까지 뛰어넘는 성취

메이브

그렇다면 버추얼 아이돌의 ‘버추얼’적 특성이 아닌, 이들이 ‘아이돌’이라는 사실에 집중해 현재의 인기를 살펴보자. 앞서 안정된 노래와 안무 실력, 성장 서사, 꾸준한 소통 등이 이세계아이돌, 메이브, 플레이브의 특성이자 추구하는 방향성으로 확인됐다. 실상 이는 K팝 아이돌에게도 중요하게 고려되는 요소인데 다만 버추얼 아이돌은 팬들을 만날 창구가 다양하지 않아 소통에 더 공을 들이는 모양새다. 플레이브의 경우 “주 2회씩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하기 때문에 실상 공백기가 없고 즐길 거리가 풍부하다.”(플레이브 팬 C씨) 멤버들은 방송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팬과 소통하는데, 이때 공개된 멤버들의 과거 및 관계성(이미 친분이 있었고 서로의 소개로 플레이브에 합류했다)이 팬들의 또 다른 입덕 요소가 된다. 멤버 하민은 연습생 시절 “대중을 설득하는 게 (버추얼 아이돌인) 우리의 숙제”라고 말한 바 있다. 팬들 역시 “버추얼 아이돌에 대한 사회문화적 편견과 시선을 알고 있기에” 함께 좋은 결과를 이루고 싶어 하고, 음악방송 1위 등의 성과를 얻었을 때 “몇배의 성취감을 느낀다”(플레이브 팬 C씨)고 전한다.

여기서 입덕 요인으로 멤버들의 과거와 관계성이 거론되는 부분은 무척 흥미롭다. 팬 B씨에 따르면 플레이브 팬들은 “버추얼 아이돌과 본체를 별개로 보고 본체의 존재를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 그럼에도 궁금해하는 사람으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본체의 존재에 대한 인정 문제와 별개로, 팬들은 아이돌로 데뷔하지 못했거나 데뷔했음에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멤버들의 과거에 주목한다. 버추얼 아이돌로 데뷔하면서 멤버들이 느낀 두려움에도 깊이 공감한다. 멤버별 개성, 가령 “밤비는 분홍색 머리에 미소년의 외형을 지녔지만 성격은 가장 상남자”(팬 C씨)인 점 등에 매력을 느낀다. 요컨대 본체는 소비하지 않더라도 “버추얼 아이돌에 녹아든 본체의 퍼스널리티는 자연스레 소비하고 있는 것”(팬 B씨)이다.

버추얼 아이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력이다. 멤버들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고 디테일하게 구현하는 기술이 기반이 돼야 사이버공간에서 활동한다는 버추얼 아이돌의 기본 전제가 성립된다. 이미 기술력이 갖춰진 상태라면? 그다음은 기존 K팝 아이돌과 다를 바 없다. 멤버 개인의 매력과 역량, 제작사의 전략이 성패를 가른다. 결국 팬들은 버추얼 아이돌이라는 존재의 등장에 매료된 것이라기보다는, 버추얼이라는 레이어를 투과하는 개별 존재로서의 매력에 반응한 것이라고 봐야 옳다. 현재의 인기에 힘입어 버추얼 아이돌 산업이 국내에서 다시금 각광받는 시장인 것은 맞지만 진입장벽이 낮은 영역이라 판단하긴 어렵다. 멤버들의 움직임을 제대로 구현할 기술력을 갖추는 동시에 하나의 K팝 아이돌 그룹이 데뷔하기까지 필요한 모든 요소를 두루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경쟁력이 생기고, 팬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버추얼 아이돌의 돌풍은 이제 시작

플레이브

버추얼 아이돌의 확장 가능성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들이 사이버공간을 기반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제약이면서도 더 멀리 뻗어나갈 기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도 있다. 가령 버추얼 아이돌은 아이돌들이 자주 마주하는 명예훼손, 성희롱 등의 문제에 아직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법률사무소 파운더스 이동훈 변호사는 “명예훼손죄, 모욕죄가 성립하려면 실제 피해자가 누군지 파악되는 특정성이라는 요건이 성립돼야 한다. 그러나 버추얼 아이돌과 같이 뒤의 사람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현실적으로 처벌이 어렵다. AI도 법체제에서 보호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AI 아이돌을 영위하는 주체인 제작사가 민사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있지만 관련 문제를 형사사건으로 처리할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

성희롱의 경우 “통신매체이용음란죄는 모욕죄와 명예훼손죄처럼 특정성 요건이 필요하지 않다. 때문에 버추얼 아이돌이라 할지라도 그 멤버에게 성적 메시지나 음성 등이 전달된다면 받은 아이돌이 고소할 수 있고, 이 경우 처벌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통신매체이용음란죄는 도달이라는 요건이 필요하기 때문에 단순히 인터넷 기사에 댓글을 다는 정도로는 100% 처벌을 받는다고 보긴 어렵다”고 전했다. 버추얼 아이돌의 시대는 오는가. 이들의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그러나 버추얼 아이돌 산업이 K팝 시장에 또 다른 활기를 불어넣고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팬들의 덕질이 활발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법적 문제를 포함한 여러 방면에서의 고민이 동반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