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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마릴린 먼로의 일대기, <노마진 앤 마릴린>
이유란 2000-04-04

“벌거벗고도 여왕이 될 수 있었던 스타, 섹스와 혼, 에로티시즘과 정신이었던 스타, 모든 것을 소유한 듯 보였던 스타(에드가 모렝).” 입술 위에 찍힌 점마저 시대의 기호였던 스타였지만 <노마진 앤 마릴린>의 마릴린 먼로는 처참하기만 하다. 그녀는 배우였지만 연기를 고통스러워했고 무진장한 대중의 사랑을 받았지만 한순간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다. 무명 시절 그녀는 성공을 꿈꿨지만, “배우가 되려면 잘나가는 놈하고 배를 맞춰야 해”라며 천연덕스럽게 자기의 욕망을 밀고 갔지만, 막상 성공이 다가오자 감당을 못한다. 술과 진정제에 의지해 파멸의 순간을 미뤄온 그녀는 끝내 이렇게 고백한다. “사람이 되려면 뭐가 필요하죠?”

<노마진 앤 마릴린>은 스타의 아우라가 거둬진 ‘인간’ 마릴린 먼로의 일대기를 냉정한 시선으로 되돌아본다. 그녀의 육체를 팔아먹으면서도 어떤 감독도 그녀의 연기를 인정하지 않았고 결혼은 늘 실패였고 어머니의 자리는 박탈당한다. 얼굴이 눈물로 범벅된 채 변기를 부여잡고 주정하는 마릴린의 모습은 대중의 시선에서 빗겨난 그녀의 삶을 간결하게 요약한다. 성공과 함께 그녀의 내면은 텅 비워지고, 그녀의 자아는 둘로 갈라진다. 노마진은 마릴린을 따라다니며 그녀를 힐책하고 괴롭힌다. 노마진의 속삭임은 마릴린에겐 형벌이었다. 하지만 모든 건 그녀 탓이다. 마릴린 먼로에 대해 3년에 걸쳐 사전조사를 했다는 팀 파이웰 감독은 그녀의 불행을 모든 ‘맥락’에서부터 떼어놓는다. 대개 개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들은 외부의 여건을 빌려 그의 불행에 동정을 보내곤 하지만, <노마진 앤 마릴린>은 그런 연민의 시선이 없다. 그런 만큼 마릴린의 삶은 더욱 참혹하게 여겨진다.

영화는 먼로의 자아분열을 강조하기 위해 애슐리 저드와 미라 소비노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배우를 노마진과 마릴린으로 등장시킨다. 캐스팅에서 이미 감독의 의도를 선명하게 드러낸 셈이다. 두 배우 또한 이에 화답하듯 빼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미라 소비노의 연기는 탄성을 자아낼 정도인데,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에서 먼로가 불렀던 노래들과 그녀의 특이한 걸음걸이와 발성을 거의 완벽하게 되살려낸다. 또한 영화에는 당시의 할리우드 제작시스템과 영화 촬영현장, 스크린의 이면을 엿보게 하는 에피소드들이 두루 배치되어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국내에 개봉되는 <노마진 앤 마릴린>은 거의 반신불구가 되어 있다. 원래 상영시간 133분 가운데 무려 ?분이 잘려나간 것이다. 상영시간을 줄이기로 위해 영화를 마구잡이로 자르는 수입업자의 무감각과 무성의가 마릴린의 삶만큼 끔찍하다. 미국 케이블TV 채널인 HBO가 제작한 TV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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