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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을 제물로 삼는 영화에 이제는 피로하다 <23 아이덴티티>
이예지 2017-02-22

23개의 다중인격을 가진 케빈(제임스 맥어보이). 어릴 때 엄마에게 학대를 당한 그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인격들의 리더인 배리, 미성숙한 9살 소년 헤드윅, 여성 패트리샤, 강박증이 있는 데니스 등 23개의 인격을 만들어냈다.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하는 플레처 박사(베티 버클리)와 상담을 나누며 인격들을 컨트롤하던 그에게 어느 날 ‘비스트’라는 24번째 인격에 대한 믿음이 생겨난다. 비스트를 불러내고자 하는 인격들은 세명의 10대 소녀 케이시(안야 테일러 조이), 클레어, 마샤를 납치해 감금한다. 케이시는 과거 아버지와 사냥했던 경험과 삼촌에게 학대당했던 기억을 상기하며 탈출 방법을 찾아나간다.

‘상처받은 자들이 더 우월하다’는 플레처 박사의 지론이 슬로건인 영화다. 학대받은 케빈은 인간을 초월하는 인격 비스트의 존재를 선망하고, 상처받은 자들만이 순결하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그들의 제물이 되어야 한다는 자격지심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케빈과 마찬가지로 상처받은 케이시는 다른 소녀들과는 차별화되고, 케빈의 힘에 대한 선망과 범죄는 그의 트라우마로 인해 합리화된다. 기성 다중인격 범죄자 영화들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스릴러다. 다만, 이제는 관객도, 유약했던 남성 범죄자의 자격지심이 곧 물리적 힘이 되고, 그 힘이 아무런 악의도 잘못도 없는(심지어 더 약자인) 여성들을 제물 삼는 영화들에 피로감을 느낄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것이 오로지 장르의 쾌감만을 위해 복무한다면 더욱 그렇다. 다중인격 범죄자를 연기한 제임스 맥어보이와 떠오르는 신예 안야 테일러 조이의 연기는 뛰어나지만, 샤말란의 부활로 보기에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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