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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의 오늘은 SF] 과학적인 런던의 늑대인간

요즘 좀비 이야기가 많이 나오다 보니, 가끔 “좀비가 실제로 나타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좋은 질문인데 답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좀비가 무엇인지 따지는 데서부터 이야기가 꼬여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중반까지 좀비영화는 대체로 중남미 해양 지역에서 유행했던 전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지역 전설에 따르면, 어떤 주술사들은 사악한 마법으로 시체를 되살려서 자신의 노예로 부릴 수 있다. 조금 더 발전해서 멀쩡한 사람을 잡아다가 좀비로 만들어 노예로 부린다는 식의 이야기도 있다. 주술사는 노예 좀비에게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을 공격하라고 시키거나, 다른 나쁜 일을 시킨다. 혹은 그냥 자신의 농장에서 일을 시키며 종처럼 부리기도 한다. 성실히 농사를 짓는 일꾼 좀비라니, 영 요즘 좀비영화와는 들어맞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지역의 나라들은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데려온 사람들이 개척하여 건설한 곳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사실 원조 좀비 이야기는 역사성이 진하게 묻어 있는 공포물이라는 생각도 든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그런데 1960년대 후반에 상황이 바뀌었다. 공포영화의 걸작이자, 현대 좀비영화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이 1968년에 나왔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는 주술사가 시체들을 살려 노예로 삼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재난에 의해 좀비들이 떼로 등장하고 좀비 수가 저절로 점점 더 늘어난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온 세상이 좀비로 득실거리며 파국과 멸망을 향해 나아간다는 종말론적인 상황이 펼쳐진다. 끝없이 몰려드는 좀비를 소수의 사람이 물리쳐야 하는 싸움도 이 영화에서부터 표현되어 있다. 정작 이 영화에서는 등장하는 괴물을 등장인물들이 딱히 “좀비”라고 부르지도 않는데, 이후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과 비슷한 영화들이 나오는 동안, 사람들은 비슷한 영화 속 괴물들을 좀비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러면서 요즘 우리에게 친숙한 좀비 이야기가 튼튼히 자리 잡게 되었다.

나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에 살짝 서려 있는 SF적인 감상이 이야기를 훨씬 생동감 있고 다채롭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명확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에서는 방사능과 관련된 사고가 좀비 창궐 현상을 일으켰다는 듯이 암시되고 있다. 빠르게 발전하는 첨단 기술이 예상외의 부작용을 온 지구에 끼칠 수 있다는 생각이 반영되어 있는 분위기다.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 온갖 끔찍한 세균 무기, 바이러스 무기, 핵무기를 개발하며 상대방을 공격할 준비에 골몰하던 냉전 시기 군사 기술에 대한 두려움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런던의 늑대인간>

정형화되었다 싶은 전설, 잊혀져가는 옛이야기에 SF 분위기가 적절히 섞이면서 내용이 풍부해지는 사례는 꽤 많다. 과학과는 관계없이 그저 신비해야만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은 공포영화 중에서도 그런 예시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나는 할리우드 주류 공포영화 중에서는 거의 최초의 늑대인간 영화에 가까운 1935년작 <런던의 늑대인간>도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머나먼 오지를 탐험하다가 이상한 식물에 중독된다. 그 후 그는 갑작스럽게 호르몬 분비, 신체 기능 조절에 발작처럼 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증상에 시달린다. 사춘기 소년처럼 감정이 통제되지 않고, 신체의 움직임이 격렬해지며, 몸에 갑자기 털이 수북하게 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어째 늑대인간과 비슷한 모습이 되어 급작스러운 충동에 휩싸여 무서운 짓을 저지르기도 한다. 마치 마약중독이나 신경 질환에서 종종 나타나는 급격한 감정 기복과도 비슷하다. 이런 배경 상황 덕택에,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설 속의 늑대인간 이야기가 슬며시 SF 느낌을 갖고 새롭게 펼쳐질 수 있었다. 늑대인간 전설이 알 수 없는 숲속의 괴물 이야기에서 일종의 호르몬 불순 질환 이야기로 바뀌었다.

그 때문에 이 영화는 늑대인간 이야기를 좀더 그럴듯하고 진짜 같이 보이도록 영화 속에서 풀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 늑대인간이 어디 있어”에서, “뇌와 신경에 피해를 입는 바람에 판단력과 감정을 망가뜨리는 독약, 마약이 잘못 퍼지면 사람이 저렇게 될 수도 있겠구나”로 보는 시선이 바뀔 수 있다.

게다가 이렇게 이야기를 꾸며내다 보면 옛 전설이 새로운 갈등 상황과 부드럽게 연결되어 이야기를 발전시킬 수 있는 소재를 가져다놓기 쉽다. 그저 늑대인간을 마귀 같은 괴물이라고 보는 옛 전설에 매달려 있다면 늑대인간은 단순한 악당 역할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약물 부작용처럼 생각한다면 사건을 풀어가는 방법은 훨씬 다양해진다. 중독이나 병으로 생긴 격한 감정 기복으로 인해 범죄를 저질렀다면 거기에 대해 그 사람에게 어느 정도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어떤 사고의 결과로 뇌와 신경에 변화가 일어나 나의 성격과 태도가 바뀐다면 그 바뀐 모습을 어느 정도까지 진짜 내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지, 늑대인간 상태의 사람을 다시 되돌릴 수 있는 약은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무엇을 이용해서 개발할 수 있는지, 만약 그런 약이 개발되어도 그것을 먹지 않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강요할 수 있을지, 이야깃거리는 계속해서 늘어난다.

나는 이렇게 소재를 더 입체감 있게 활용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 SF의 큰 장점 중 하나라고 여긴다. SF는 현실의 모습, 자연의 상황을 탐구하는 과학과 연결되어 있다. 환상의 세계에서 혼자 상상하는 것보다, 현장의 여러 지식, 기술, 연구와 엮여 있는 과학의 틀 안에서 소재를 볼 때 이야기로 꾸미는 방법은 더 쉽게 상상 바깥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 선악, 흑백, 시비로 단순하게 설명될 수 없는 세상 여러 가지 이야깃거리의 연결 관계 또한, 현실을 그대로 쳐다보아야 하는 과학 속에서 쉽게 그 모습이 보이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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