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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편집장] 유희하는 영화
이주현 2022-07-22

<헤어질 결심>의 각본집이 8월5일 출간된다. 나처럼 각본집을 손꼽아 기다린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랐고, 예약 판매를 시작한 지 하루 만에 온라인 서점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에 괜히 흐뭇했다. 영화 관련 책이, 그것도 개봉영화의 각본집이 이만큼 화제를 모으는 일은 흔치 않다. 그것은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n차 관람을 부르는 영화라는 것과도 연결되는 지점일 텐데, 좋아하는 영화를 티내며 좋아하길 즐기는 팬들은 이미 예약 사이트에서 즐거운 놀이를 벌이고 있었다. “소장하고 싶은 단일한 각본집입니다.” “한국에서는 영화를 봤다는 이유로 각본집 보기를 중단합니까?” “통장 잔고가 각본집 사는 일을 방해할 순 없습니다.” “<헤어질 결심>을 보고 나서 내 인생은 완전히 붕괴되었어요.” 영화의 대사를 활용한 댓글들이 줄을 잇는다. 절대적 팬심을 확인하는 재미가 이렇게 극장 밖에서도 이어진다.

최근 영국에선 <미니언즈2>의 개봉과 관련해 극성스러운 10대 팬들, 극장에서 조용히 영화를 관람하고 싶은 일반 관객 그리고 극장주들이 서로 대립하는 일이 있었다. 10대 관객들이 <슈퍼배드>의 인기 악당 캐릭터인 펠로니우스 그루처럼 정장을 입고 상영 중 큰소리를 내거나 물건을 던지며 영화를 본 뒤 그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SNS에 올리는 게 유행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스스로를 ‘젠틀미니언즈’라 칭한 이들의 전혀 신사적이지 않은 행동에 피해를 입은 일반 관객은 극장에 환불을 요청했고, 일부 극장에선 슈트를 입은 10대들의 극장 입장을 금지했다. 이것은 극장 관람 행위의 진화일까, 일반 관객이 피해를 보는 선 넘은 놀이일까? 쓰고 보니 어느덧 기성세대의 잣대로 10대들의 기발한 놀이 문화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나의 무의식이 느껴져 씁쓸하다. 하지만 미니언들의 민폐를 동반하는 한도 초과 엉뚱함은 영화에서나 귀여운 법 아닐까.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타인의 영화 관람을 방해하는 행위는 결코 ‘품위’ 있는 관객의 행동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소동을 접하는 게 반가운 이유는 이것이 영화와 극장으로부터 파생한 유희이기 때문이다. 7월 말과 8월 초는 전통적으로 블록버스터영화들이 격돌하는 최고의 성수기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올여름 극장가에서 한국 블록버스터들의 대격돌을 보게 됐다.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1부, 김한민 감독의 <한산: 용의 출현>, 한재림 감독의 <비상선언>, 이정재 감독의 <헌트>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야심을 드러내는 영화들이라, 기왕 보기로 결심했으면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말하고 보니 너무 자신 있게 말한 것 아닌가 싶지만… 이렇게 말하는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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