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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편집장] 영화가 있는 자리
이주현 2022-08-26

“이제야 얼굴 뵙고 인사드리네요.” “저희 구면이에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인사드렸었는데… 괜찮습니다. 많이들 절 못 알아보더라고요.” A평론가에게 실례를 했다. 그는 이번주 <>의 크리틱에서 “인간의 눈은 기계의 눈보다 신뢰성이 낮다”고 썼는데, 나의 눈도 그리고 기억도 멋대로의 생략에 신뢰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A평론가 옆에 앉은 B평론가와는 연락만 주고받았지 정말로 초면이었다. 타 지역에서 일하다 올해 서울로 근무지를 옮긴 B평론가는 직장인임에도 불구하고 의욕적으로 영화관과 OTT를 누비고 있었다. <헤어질 결심>을 5~6번쯤 보았고 각본집까지 반복해 읽었다는 그는 정작 <헤어질 결심>으로는 비평을 쓰지 않았다. B평론가의 노트북에는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미완의 글들이 상당수 저장되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올해 군대를 가게 되면 평론 활동을 잠정 은퇴해야 할 것 같다는 C평론가, 요즘 글이 잘 안 써진다는 D평론가, 20자평 쓰는 게 참 어렵다는 E평론가 등 며칠 전 <씨네21> 영화평론가들과 화기애애한 식사 자리를 가졌다.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대면 만남이 여의치 않아 오로지 글로써 서로의 존재를 확인해왔던 평론가들은 영화로 글 쓰는 사람들 아니랄까봐 이날도 영화 얘기만으로 거뜬히 밤을 지샐 수 있을 것 같았다. 꼭 거창하고 유의미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영화에 대해 시답잖은 농담이라도 쉽게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 밤이었다.

<씨네21> 지면에서도 넉넉히 비평의 자리를 마련했다. <외계+인> 1부, <한산: 용의 출현> <비상선언> <헌트>까지 4편의 한국 여름영화 대작들의 흥행 성적을 확인한 뒤 진행한 한국영화 상반기 결산 기획은 다음주까지 2주에 걸쳐 이어진다. 이번주엔 영화에 관한 비평적 목소리를 담았고 다음주엔 산업적 측면에서 올해의 영화시장을 돌아볼 계획이다. 4명의 프런트 라인 필자들인 김병규, 김소희, 송형국 평론가와 송경원 기자가 참여한 이번 대담은 다들 꼭 한번 찬찬히 읽어보길 권한다. 송형국 평론가는 올해 가장 흥행한 두편의 한국영화가 경찰과 군인을 ‘시대의 영웅’으로 내세운 <범죄도시2>와 <한산: 용의 출현>이라는 것에서 “우리 사회의 불안”을 읽었고, 김병규 평론가는 <범죄도시2> <탑건: 매버릭> 등의 흥행을 두고 “클래식한 서사가 갖는 보수성이나 남성 중심적인 측면이 있고 그것은 영화에 은폐되어 있다”며 “성찰 없는 비평의 문제”를 언급했다. 김소희 평론가는 신진감독의 부재와 관련해 “차세대 감독의 부재라기보다는 주목받는 감독의 부재”를 이야기하며 “영화잡지, 기자, 평론가들이 스스로의 관성을 깨”고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 대목에선 반사적으로 자세를 바르게 고쳐 잡았다. <씨네21>이 새로운 영화의 발견과 비평적 성찰에 게을러지지 않도록 응원해주시길 바라며, 영화에 대해 말하고 싶어질 때 <씨네21>의 문을 언제든 편하게 두드려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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