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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의 오늘은 SF] 해결사들
이경희(SF 작가) 2022-12-29

대체 탐정이란 뭐 하는 사람들인가? 현실 속 실제 직업에 대한 궁금증은 물론 아니다. 장르 세상 속에서 탐정이라 불리는 사람들, 혹은 그런 역할을 수행한다고 일컬어지는 캐릭터들에 대한 고민이다.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뭘 알려드리고자 함이 아니라, 몰라서 늘어놓는 궁금증의 나열에 가깝다. 혹은 푸념이거나.

좁게 보면 탐정은 미스터리 소설의 주인공을 가리키는 호칭처럼 느껴진다. 그의 공식적인 직업명이 탐정일 수도 있다. 혹은 아닐 수도 있는데, 이야기 소비자들은 편의상 그들을 대충 뭉뚱그려 탐정이라 부르곤 한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구겨진 담배를 물고 회계사 남편의 지저분한 불륜 증거를 수집하는 사람과 폭풍우 치는 섬에 갇혀 몇 남지도 않은 생존자들 앞에서 인디언 인형의 비밀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는 사람이 어떻게 같은 직업일 수가 있느냔 말이다.

지난주 곽재식 작가님께서 <매닉스>를 소개해주셨는데, 그 작품을 직접 보진 못했으나 요약된 줄거리를 읽다보니 주인공 매닉스가 하는 일이 탐정이라기보다는 꼭 무슨 시민단체가 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한국 드라마였다면 아마 변호사일 가능성이 높겠다. ‘무슨무슨 이상한 변호사’라거나, ‘돈 별로 안 받는 변호사 누구누구’ 같은 제목이 붙을 테고. 조금 괴짜면서 적당히 정의롭고 탈권위적인 언행을 하는 법조인 이야기는 꾸준히 인기가 있다. 종합병원 의사와 법조인을 향한 한국 사람들의 애정은 기이할 정도로 각별하다.

아무튼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매닉스처럼 스스로를 탐정이라 주장하며 뒤로는 사회 공익을 위해 힘쓰는 협객들을 아우르는 더 큰 범주의 장르 용어가 있다. 해결사. 이 용어 아래에는 의뢰를 받아 문제를 해결해주는 거의 모든 직업들이 포함될 수 있다. 탐정, 배달부, 흥신소, 금고털이, 밀수꾼, 용병, 조사관, 모험가, 현상금 사냥꾼, 살인 청부업자, 심지어 몬스터 헌터도.

해결사들은 정말 뭐든 해결하는 모양이다. 작게는 떼인 돈을 받아내는 일부터 크게는 은하계의 평화까지. 대체로 돈 되는 일이라면 합법, 불법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것이 업계의 관행인 듯하다. 일본 드라마에서 ‘뭐든지 씨’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를 종종 보았는데, 현지에서 널리 통용되는 용어인지는 잘 모르겠다.

지겹지만 또 <스타워즈>를 예로 들면 ‘한 솔로’ 같은 인물이 전형적인 우주 해결사 캐릭터에 해당할 것이다. 처음엔 주인공들을 이곳저곳으로 태워주는 배달부였다가, 총을 들고 구출 작전에 참여했다가, 뭘 훔치기도 했다가, 전쟁도 했다가, 나중엔 열심히 저항군의 심부름을 하다 봉변이나 당하고 있으니, 도대체 이 사람 직업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SF에서는 이런 건달 같은 사람들을 주로 ‘카우보이’에 비유하곤 하는데, 내가 서부영화 세대가 아니어서 그런지 느낌이 확 와닿지는 않는다. 잘은 모르지만 보통 서부영화 주인공들은 보안관이나 뭐 그런 쪽 아닌가? 아니면 소 떼를 모는 건달에 관한 클리셰가 있는 걸까? 궁금하긴 한데 이것 때문에 굳이 서부영화를 찾아볼 만큼 궁금하진 않아서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SF 해결사 이야기로 요시토미 아키히토의 만화 <이트맨>을 소개하고 싶다. 뭐든 먹어치운 뒤 손끝에서 재생할 수 있는 남자가 매번 새로운 의뢰를 해결하는 이야기다. 이 작품의 재미있는 특징은 일단 주인공 볼트 크랭크가 뭘 먹고 있는지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항상 나사나 기계 부품 같은 것을 먹고 있긴 한데, 그게 나중에 무엇으로 완성되어 사건을 해결하게 될지 궁금해하게 된다. 다음으로 재미있는 점은 주인공이 의뢰 내용을 자기 멋대로 해석해버린다는 점이다. 악당의 의뢰를 정확히 완수하지만 결국 악당이 망하는 결과를 이끌어낸다거나, A를 위한 의뢰인 줄 알았더니 실은 B를 위해 의뢰를 수행하고 있었다거나. 일종의 원숭이 손 저주 같은 패턴인데, 그 결과 정의가 실현되니 이 능청스러운 주인공을 사랑할 수밖에.

어… 처음에 무슨 이야길 하려던 거였더라? 신나게 떠들다 완전 이상한 길로 빠져버리고 말았다. 어떻게 결론을 지으면 좋을까. 기억을 다시 되짚어보면 내가 뜬금없이 탐정 얘길 하고 싶었던 이유는 어젯밤 <그 겨울, 손탁 호텔에서>를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해결사가 주인공인 연작 시리즈 작업이 벽에 부딪혀 막혀 있다보니 생각의 방향이 더욱 그쪽으로 기울어버렸을 테고. 어떻게 하면 해결사 주인공을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 매일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하고 있지만 여전히 뾰족한 성과 없이 같은 자리만 맴돌고 있다. 하기야 그 비결을 알면 내가 코난 도일이지.

셜록 홈스 같은 멋진 해결사 주인공을 창조하는 일은 아마도 많은 이야기 창작자의 꿈일 것이다. 주인공의 매력만 확실히 보여주고 나면 무한정 새로운 사건을 이어나갈 수 있기 때문에, 작가는 생계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 있다. 이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집 안에 들여놓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란 말이다. 일단 작품이 히트해야 한다는 사소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