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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하나 더 살걸 그랬나
윤덕원(가수) 2022-12-29

연말 공연을 준비하느라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신곡도 준비하고 있고 여러 가지 볼거리들도 준비하고 있지만, 역시나 가장 기대가 되는 것은 기념품이다. 이런 말을 하면 좀 이상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나는 공연 기념품에 정말로 진심이다. 우리 디자이너들도 진심이다. 멤버들 역시 진심인 것 같고 팬분들도 진심으로 기다리시는 것 같다.

어느 정도로 진지하게 기념품을 대하는지는 우리 멤버들의 생활을 돌아보면 알 수 있는데, 단순히 밴드의 이름만 새겨 가격에 비해 퀄리티가 아쉬운 제품들을 다종 생산하기보다는 검증된 물건들을 참신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아름다운 미적 감각으로 제작해 직접 사용하는 데 있어서는 그 어떤 밴드보다 진심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멤버들은 1년 내내 적어도 1/3의 시간을 밴드 티셔츠를 착용하고 보내며(나는 거의 연간 1/2 정도 밴드 티셔츠를 착용한다). 집에는 밴드 로고가 새겨진 수건이 있다. 물을 마실 때는 밴드 유리컵을 사용하며, 공연 현수막을 재활용해서 팔찌나 가방을 제작한 적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제품들은 비슷한 컨셉의 다른 밴드 기념품들에 비해 저렴하며 오랜 시간 함께해온 디자이너팀이 제작을 담당해 그 아름다움과 검수의 수준이 남다르다.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우리 팀의 작업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모든 밴드의 기념품을 좋아한다. 물론 조금 아쉬울 때도 있지만 그것조차도 사랑스럽다. 함께 공연한 팀들의 기념품을 선물받는 건 공연의 가장 즐거운 순간 중 하나다. 물론 선물을 할 때도 마찬가지. 공연은 시간과 함께 지나가버리기 때문에 항상 끝나고 나면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기 때문일까,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을 통해서 채워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학생 때는 쉽게 기념품을 구입하기 어려웠다. 공연 티켓 가격도 상당한 부담이었기 때문에 추가로 무언가를 산다는 게 쉽지 않았다. CD나 티셔츠를 사고 싶었지만 사지 못했던 공연이 정말 많았다. 내한 공연하는 해외 인디 밴드의 티셔츠를 몇번이나 만지작거리다가 포기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조악한 품질에 비해 비싼 편이었는데도 말이다.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 내한 공연에서 큰맘 먹고 처음으로 밴드 티셔츠를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너무 좋아서 1년 내내 그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 나중에 지산록페스티벌에 출연하게 되었을 때도 3일 내내 그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 무대에서는 브로콜리너마저 티셔츠의 첫 번째 버전을 입었다. 직접 티셔츠를 염색하고 스텐실로 무늬를 그려넣었던 이 티셔츠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 더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 티셔츠도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 티셔츠도 목이 늘어난 상태로 서랍에 들어 있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 여유가 생기게 되어 최근에는 어느 공연을 가든지 티셔츠나 기념품을 구입하는 편이다. 만족스러운 것도 있고 때로 아쉬운 점도 있지만 그 자체가 너무 큰 즐거움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가 없다. 다만 최근에는 사용하지도 않을 물건을 너무 많이 구입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다. 몇 가지 생필품을 제외하고는 많은 밴드 기념품들이 실용적인 사용과는 거리가 먼 경우도 있고, 중복되는 물품이 많아지기도 한다. 게다가 한정판이라고 하면 왠지 더 사고 싶어지는 마음도 들어서 무리한 구매를 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 기념 커피잔을 구입하는데, 한정판이라는 말을 듣고 두개를 구입하는 나 자신을 보고서 놀라기도 했다. 그렇지만 자제하기란 쉽지 않다. 기념품들은 항상 그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리 지면을 통해 스포일러를 하자면, 이번 공연에는 머그컵을 제작한다. 이번에 제작되는 머그컵은 기존에 극찬을 받았지만 한정 수량밖에 제작할 수 없었던 구름컵 이후에 처음 만들어지는 컵으로, 당시에 찬사가 이어졌던 도안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꼼꼼한 검수를 통해서 완벽한 만듦새를 자랑하고 있다. 역시 브로콜리너마저의 기념품이다라는 말을 들을 만한 작품이 나온 것 같다. 기념품을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 좋은 물건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그리고 만들어진 물건은 잘 쓰는 것으로.

사자 티셔츠 _ 백현진

네가 빌려간 사자 티셔츠

왜 돌려주지 않는 건지

그 티셔츠가 요즘 가끔 생각이 나

아니 종종 그래

네 마음대로 가져간 거잖아

내가 좋아하는 사자 티셔츠

부디 어서 돌려주길

나의 사자 티셔츠

네 마음대로 가져간 거잖아

내가 좋아하는 사자 티셔츠

부디 어서 돌려주길 바랄게

사자 티셔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