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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타이트한 몽타주 사이, 음악처럼 흐르는 대사들 '파리, 13구'

파리의 콜센터에서 영업 일을 하는 에밀리(루시 장)는 룸메이트를 찾고 있다. 노령의 할머니가 요양원으로 들어간 뒤, 넓은 아파트를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어진 탓이다. 근처 고등학교에서 일하는 카미유(조나단 아모스)가 공고를 보고 그녀를 찾아오고, 이내 두 사람은 선을 넘는 동거를 시작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카미유에게 에밀리가 반기를 들면서, 둘 사이에는 금이 간다. 한편 보르도 출신의 늦깎이 대학생 노라(노에미 메를랑)는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로 상경한다.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이질감을 극복하려고 그녀는 파티에 과감한 복장으로 참석하는데, 우연히 선택한 가발 때문에 소동에 휘말린다. 언뜻 캠걸 앰버 스위트(카미유 베토미에)와 비슷해 보인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수모를 당한 것이다. 이후 노라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나선다. 그렇게 카미유와의 교류가 시작된다. 카미유를 중심으로 세 인물들은 서로 연결된다. 과도하게 직설적인 이들의 상황은, 실상 우리 삶과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다.

<파리, 13구>는 ‘현대 프랑스영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자크 오디아르의 아홉 번째 장편영화다. 제목이 알리듯 이 작품에서 로케이션이 지닌 비중은 크다. 대부분 프랑스에서 촬영된 영화들이 ‘몽마르트르’나 ‘라틴지구’ 등 주요 명소를 선호하는 것과 달리 이 영화는 소위 ‘프랑스다운 풍경’과 거리가 먼 올림피아드역 주변부에 집중한다. 감독에 따르면 “진정으로 눈에 띄는 아키텍처의 동질성을 유지하는 (…) 매우 이국적이고 활기차며 사회적, 문화적 혼합 지역이라서” 이곳을 택했다고 한다. 캠걸이 소개되는, 단 하나의 장면을 제외하고 전체 화면이 흑백으로 구성된 것도 이 영화의 특징이다. 흑백의 모노톤 화면을 통해 감독은 도심의 고층 건물이 드러내는 직선의 정서와 평면의 황량함을 강조하며 독특한 화면 질감을 연출한다.

지금껏 자크 오디아르의 영화가 남성적 주제에 상응하는 ‘폭력적 저주’의 이슈를 다뤄왔던 것과 달리 이번 영화가 다소 여성적인 ‘로맨틱 코미디’에 가깝다는 점도 변화일 것이다. 차가운 도시의 한가운데에서, 주인공들이 겪는 외로움과 불안, 공허함의 감성은 이전에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쩌면 감독과 함께 작업한 작가들의 공로일 수도 있다. 원작은 미국의 그래픽노블 작가 에이드리언 토미네의 단편 3편으로, 각색에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의 셀린 시아마와 함께 신진작가 레아 미지위가 차례로 투입되었다. 그 결과 오디아르 특유의 ‘감상을 배제한 리얼리즘’의 연장선과 맞닿은, 생생한 정서의 드라마가 완성된다. 2021년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으로, 영화음악은 본상 외 부문의 ‘사운드트랙상’을 수상했다.

"네 말이 맞아. 널 사랑했어. 지금도 사랑하고. 너무 힘들어. 만일 네가 장례식에 오면 우린 사귀는 거야. 아니면 끝이고. 난 괜찮아. 아무 말 하지 마. 이만 갈게." (<파리, 13구> 중 에밀리의 대사)

CHECK POINT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1969)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이 자크 오디아르에게 준 영향은 크다. <그들이 어떻게 추락하는지 보라>에서 그는 장루이 트랭티냥을 캐스팅했고, 이번 영화에서는 상황을 역으로 이용한다. 에릭 로메르의 인물들은 밤새 ‘대화’를 나누지만, <파리, 13구>는 말없이 오직 ‘에로티시즘’으로만 소통한다. ‘모럴’(도덕)을 다룬다는 면에서도 그는 누벨바그의 후예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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