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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의 오늘은 SF] '모여라 꿈동산'을 아는 사람은 곧 아무도 없게 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공중파 방송에서도 사람을 놀릴 때 종종 ‘모여라 꿈동산’이라고 불렀다. 2020년대에 이 농담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모여라 꿈동산>은 MBC의 어린이 프로그램 제목으로, 배우들이 귀엽고 재미있게 생긴 탈을 쓰고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연기해 보여주는 시리즈였다. 즉, ‘모여라 꿈동산’이라는 놀림은 상대방의 얼굴이 커서 마치 인형 탈을 쓴 모양을 연상케 한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이런 식으로 사람의 외모를 놀리는 것이 정말 웃기다고 느끼며 즐기던 사람들이 요즘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다.

오늘 하려는 이야기가 옛 농담에 관한 것은 아니다. <모여라 꿈동산>이라는 TV프로그램에 관한 이야기다. 지금도 그렇지만 신기하고 놀라운 이야기는 어린이들의 주목을 끌 수 있기에, SF는 어린이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그 역효과로 한국 SF 팬들 사이에 유치한 어린이용 SF를 SF의 대표라고 생각하는 시선을 학을 떼듯 싫어하는 분위기도 있었다고 기억한다. 지금은 SF 팬도, SF 작가도 훨씬 많아지면서 한국 SF도 자리를 잡았고, 덕택에 SF에 대한 시선은 훨씬 관대해진 것 같다. 그래서 <모여라 꿈동산>에서 다루던 SF를 지금에 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많지 않은 제작비로 뚝딱 쉽게 즐길 만한 이야기를 만들던 이 시리즈에는 유행에 빠르게 맞추어보자는 태도도 분명히 있었다고 본다. 그래서인지 SF와 관련된 소재 중에서도 어린이들의 눈길을 끌 만한 것이 있으면 금세 <모여라 꿈동산>의 에피소드로 제작되곤 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초에 <한국에 온 ET>라는 제목으로 외계인이 어린이들을 찾아온다는 이야기를 꾸며 방영한 적이 있다. 그 시기에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을 맡았던 영화 <E.T.>가 세계적으로 큰 유행을 했기 때문에 그 모방작을 만들어낸 것이다. 외계인이 오는데, 지구에 왔다는 게 문제이지, 꼭 한국에 왔다는 사실이 문제인가? 그런데도 제목이 <한국에 온 ET>가 된 것은, 그만큼 미국영화인 <E.T.>의 한국판을 만들겠다는 자의식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1980년대 당시, 외계인이 찾아오는 곳은 미국이나 소련 같은 강대국들이지, 굳이 한국에 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모여라 꿈동산> 정식 시리즈가 끝나고 1990년에는 그 후계작 시리즈처럼 비슷한 형식의 어린이 프로그램이 시도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온 것이 <지구를 지켜라 태극아이 505>였다. 여기에는 1990년 5월 실제로 지구 근처로 온 오스틴 혜성을 소재로 해서, 그 혜성 뒤에 외계인 악당이 우주선을 숨겨 레이더에 잡히지 않도록 하면서 지구로 침입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보다 보면 장난치며 웃는 이야기가 많아지기는 하지만, 적어도 시작이 이 정도면 당시 한국에서 나온 어느 SF극 못지않게 진지한 출발이었다.

<모여라 꿈동산>에 본받을 만한 훌륭한 내용이 있어서 그것을 배워야 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그 정도로 놀라운 점이 많았던 시리즈는 아니라고 기억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어린이들이 자라면서 보고 영향을 받았고, 국민 다수에게 제목이 알려져 농담거리가 될 정도로 퍼져 있던 이야기다. 나는 그에 대한 자료가 지금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 너무 답답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조선 시대, 고려 시대 유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20세기 말 대형 방송사에서 열심히 제작한 영상인데도 자료를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 나름대로 이곳저곳을 살펴보았지만 <모여라 꿈동산>의 전체 에피소드 목록이나 작가진 명단조차 알아낼 방법이 없다. 모르긴 해도, MBC 방송국 내부에도 <모여라 꿈동산>의 전체 영상이 보관되어 있을 가능성은 낮을 거라고 짐작된다.(MBC 아카이브에 일부 보관돼 있다.-편집자) 영국에서 만든 <블랙 미러>나 1950년대 말 미국에서 만든 <환상특급>은 누구나 쉽게 볼 수 있지만, 정작 한국에서 만든 <모여라 꿈동산>은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나마 영화나 소설은 한국영상자료원이 영화 자료를 수집하고, 국립도서관이 책을 모으면서 최소한의 자료는 쌓이는 것 같다. 그러나 공공 영역의 손을 벗어난 나머지 분야의 자료는 허망할 정도로 소홀히 관리되는 가운데 잊혀간다. 한국 TV 역사상 최고 수준의 인기 연속극으로 꼽히며 방영 당시 전 국민을 TV 앞에 모여들게 했던 1972년작 <여로>는 총 211부작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영상은 단 1부뿐이며 그나마 손상이 많이 됐다고 한다. 비슷한 방식으로 한 시대에 걸쳐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SF 게임, SF 만화, SF 소재의 장난감 등등이 사라지고 잊히고 있다.

세계의 명작 SF, 해외의 인기 SF를 벤치마킹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과거 한국에서 어떤 시도가 있었고, 무슨 한계가 있었는지, 그걸 보면서 한국 문화가 어떻게 흘러왔고 그 문화 속에서 한국인들이 어떤 사람들로 자라났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그런 일을 하려면 자료가 잘 보존되어 있어야 하고, 공개되어야 하며, 가능하면 활발히 공유되어야 한다. 또한 그런 옛 시도를 돌아보면서 그때는 어떤 단점이 있어서 기대만큼 잘되지 않았는지, 이야기를 만들다 보면 어떤 실수를 하게 되는지 등을 따져보고 평가해보아야지 소위 한국판 <블랙 미러>를 만드는 일도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