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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환경영화제 이명세 집행위원장, 서도은 프로그래머 "감상하고 감각하길, 그리고 행동하길"
이자연 사진 백종헌 2022-06-09

코로나19 팬데믹이 바꾼 풍경 중 하나는 실내 생활이 길어지며 늘어난 배달 서비스의 성황이다. 그 결과 플라스틱 소비가 급증하고 감염 예방을 위한 일회용품 사용이 보편화됐다. 동시에 제로 웨이스트와 비건의 필요성을 알리는 목소리 또한 급격히 퍼져나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올해로 19회를 맞이한 서울국제환경영화제(이하 환경영화제)에도 영향을 미쳤다. 역대 가장 많은 출품작(총 3578편)을 기록한 가운데 극영화 공모작만 200편 이상 증가했다. 환경이 K컬처의 한 장르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곳, 포스트 코로나 시대 환경영화제가 짊어질 역할과 변화에 대해 이명세 집행위원장과 서도은 프로그래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명세, 서도은(왼쪽부터).

-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되고 나서 열리는 첫 행사다. 코로나19를 겪은 지난 2년 동안의 환경영화제와는 무엇이 달라질 것이라 예상하나.

이명세 팬데믹 이전부터 환경영화제 내부에선 탄소 저감을 위해 영화를 온라인으로 상영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이 모이는 데 어려움이 있고 마침 환경영화제 취지에도 맞아 온라인 상영을 실시하게 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됐지만 우리의 기조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온오프라인 상영을 동시 진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영화는 광장의 예술이다. 관객이 같은 공간에서 공감하고 교류하는 경험을 놓지 않을 것이다.

서도은 환경영화제에 꾸준한 팬층이 있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환경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전세계적으로 커지면서 팬층이 더 두터워졌다. 무엇보다 영화를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영화가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하는 목소리가 강해졌다.

- 올해의 슬로건은 ‘에코버스’다. 미래지향적 에코 세계관을 구축하자는 의미다. 환경문제를 다루는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들린다.

서도은 요즘의 화두는 메타버스와 세계관이다. 사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환경적 관점으로 바라봤을 때 완전히 위태로운 세계처럼 느껴지잖나. 이런 상황에서 생태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세계를 가상으로나마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제시하고 싶었다. 메타버스는 현실의 한계를 기술적으로 극복하려는 시도인데, 그 기술의 힘을 빌려 우리의 에코 세계관을 만들었다. 메타버스 상영관에서 환경영화를 보는 것으로 더 조화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이번 영화제 이벤트 중 반려동물 동반 야외 상영회가 예정돼 있다. 많은 반려인들이 관심을 보일 것 같은데.

이명세 이미 매진되었다. (웃음) 에코라는 단어에는 인간의 삶이나 환경뿐만 아니라 모든 종(種)의 생명이 포함돼 있다. 한 공간에서 나와 다른 종과 더불어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시간을 경험할 수 있길 바라며 기획한 것이다.

서도은 ‘우리 가족’이라는 표현 안에 반려동물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많아졌지만, 동물과의 스킨십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들도 반려동물과 사람이 함께 모여 있는 모습을 보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길 바란다.

- 역대 최다 출품작을 기록했다. 심사 과정에서 요즘 창작자들이 환경문제를 바라보는 사회적, 문화적 관점을 느낄 수 있었나.

서도은 환경을 독립적인 개체로만 보기보다는 사회문제로, 동시에 인권·동물권·여성·공동체 문제로 보는 시각을 담은 작품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개인의 삶과 주변의 모든 것이 연결돼 있다는 점을 사람들이 더욱 잘 인지하게 된 것 같다. 주제적으로는 올해 영화제의 주요 키워드로 대멸종과 새로운 젊은 세대를 꼽을 수 있는데, 두 가지를 합쳐서 ‘멸종 세대’라고 이름 붙여봤다. 그레타 툰베리의 연설 이후 스웨덴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젊은 세대가 적극적으로 환경문제에 참여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게 됐다. 예선 심사작에서도 이러한 멸종 세대의 문제의식과 목소리를 담은 작품이 많았다.

- 기후 위기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청소년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을 바탕으로 청소년 감독들이 함께 참여하는 자리도 마련했다고.

서도은 ‘에코 크리에이터’는 환경영화제를 주최하는 환경재단에서 청소년과 환경 관련 창작자를 대상으로 에코 콘텐츠 제작을 지원하고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에코 크리에이터 3기에 청소년 감독을 배출하게 되었다. 총 70여명이 참여해 제작한 작품 중 우수작을 선정해 극장에서 상영하고 관객과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명세 2012년부터 영화를 통한 아동 청소년 대상 환경 교육 프로그램 ‘시네마 그린틴’(Cinema greenteen)을 이어왔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환경 교육을 위해서다. 어린 시절부터 인식을 바꾸는 게 가장 중요한데 우리나라 정규 교육과정에는 환경 과목 커리큘럼이 거의 없다.

- ‘에코 공동체’, ‘세계의 종말’, ‘멸종 저항’, ‘동물권, 동물격’, ‘플라스틱 바다’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기후 위기 시대의 희망’은 현대인의 바람을 대변한 섹션 같다. 여전히 배달 음식으로 플라스틱을 소비하면서도, 모든 걸 되돌리기에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라는 모순적인 마음 같달까.

서도은 개인적으로 ‘우리가 희망을 가질 자격이 있나?’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확해진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행동하지 않아서 괴롭다. 실제로 이런 현상을 ‘기후 우울증’이라 일컫는다. 그럼에도 시시포스는 산에서 굴러떨어진 돌을 계속 올려야 하고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사과 한 그루는 심어야 하는 것처럼 무언가를 해야 한다. ‘기후 위기 시대의 희망’은 불안에 지지 않고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나 해결책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담긴 작품들을 모은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

- 사실 환경문제라 하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직면하기 어려운 심각한 이야기가 대부분일 거라 생각한다. 상영작의 난이도나 소재의 다양성은 어떤가.

서도은 문턱을 낮추기 위해 우리도 굉장히 노력하고 있다. 특히 친숙한 소재의 작품을 선정하려 했다. 보통 아포칼립스나 디스토피아 영화를 사이파이(sci-fi)라고 분류하는데, 그중 기후 위기를 주요 쟁점으로 삼은 작품을 하위 장르 클라이파이(cli-fi)라 칭한다. 올해 준비된 클라이파이 영화로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설국열차> 등이 있다. 환경영화가 어렵게만 느껴지는 분들은 기후 공상과학영화를 보시길 바란다.

- 장마가 길어지고, 산불의 빈도와 규모가 확대되고, 예년보다 개화 시기가 앞당겨졌다.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실감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일각에서는 비관론도 적지 않게 제기되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환경영화제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명세 환경영화제의 궁극적 목적은 결국 환경 인식 보편화에 있다. 언론과 기업, 대중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부분들을 수면 위로 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환경문제는 영화제라는 축제 한번으로 해결하고 개선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영화 감상 이후의 스텝을 생각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각자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점검하도록 영화제는 관객에게 중요한 가치를 생각할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해야 한다.

- 혹시 이명세 집행위원장은 작가이자 감독으로서 특별한 활동을 계획 중인가.

이명세 거장 감독 5인의 미완의 작품을 VR 형태로 구현하는 다큐멘터리 시리즈 <미싱픽처스>가 올해 트라이베카페스티벌 경쟁부문에 초청받아 뉴욕에 갈 예정이다. 또 서울예술대학교 개교 60주년을 맞이해 구교환, 이옥섭, 장항준, 한재림 등 8인의 서울예술대학교 출신 감독이 어떻게 하면 지속 가능한 영화 작업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나누는 영화 작업을 추진 중이다.

- 마지막으로 올해 환경영화제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 관객이 어떤 점을 눈여겨보면 좋을까.

이명세 환경영화제는 단순히 소비하는 영화제가 아니다. 직접 몸으로 느끼며 자각할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들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선 작품과 작품 속 메시지를 연결시켜 세상을 전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감상 이후의 감각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런 변화가 개인에게 고여 있던 지식을 더 업그레이드해주기 때문에 지적 욕구를 채우는 데도 좋을 것이다.

서도은 영화를 보고 환경문제는 ‘아, 이렇구나’ 하고 반짝 심각해하다가 잊어버릴 이슈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비 올 때 우산이 없는 것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라면 비를 맞는 것으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겠지만, 환경문제는 내가 잘 모른다는 이유로 다른 생명이 고통받고 죽어갈 수 있다. 너무 진지한가. (웃음) 무엇보다 다양한 작품을 보면서 지금 당장 내가 따를 만한 실천법도 자유롭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명세 집행위원장과 서도은 프로그래머의 추천작

이명세 집행위원장

<애니멀> 개막작. 청소년의 시각으로 바라본 인류 멸종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 인천시 중구의 도시 재생 운동을 담았다. 무모한 재건축의 필요성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대재앙 직전의 자장가> 5분 분량의 애니메이션. 비둘기 두 마리와 달팽이를 통해 인간이 세상에 남기고 떠난 것을 묵직하게 그려냈다.

서도은 프로그래머

<아마존의 수호자> 파괴된 아마존을 바라보는 원주민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쉽게 생각지 못한 능동적인 해결 방식이 담겼다.

<시인들의 창> 강원도 횡성군 작가 레지던시에 구성된 공동체와 그들의 생활 방식을 평화롭게 보여주는 힐링물이다.

<하울아웃> 시베리아에 사는 감독이 바다코끼리의 대이동을 기록한 작품. 이 경이로운 리추얼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 무척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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