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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겨울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인간이라는 몸
김겨울(유튜버) 2022-06-16

나는 여전히 메타버스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그 몇년간의 열광과 소란과 흥분 속에서도, 코로나19를 거치며 화두로 떠오른 ‘비대면’이라는 이슈 속에서도. 말하자면 인간의 감각이 완전히 구현되지 않은 메타버스는 현실과 제한적인 영향을 주고받을 수는 있더라도 현실의 대체품이 될 수는 없다고 믿는다. 이건 전자책이 종이책을 보조할 수는 있더라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고 믿는 구닥다리 애서가의 고집과 비슷하며, 나는 실제로도 구닥다리 애서가를 겸하고 있다.

이건 방구석에 앉아 기술 발전과 문화 변화에 삿대질하는 뒤떨어진 인간의 불만 섞인 호통이라기보다는 심리학을 전공하고 종이책의 곁에서 평생 살아온 사람의 믿음이다. 인간은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이 몸이다. 우리는 겨우 아주 잠깐 동안 디지털 문화를 가졌을 뿐이다. 우리는 몸과 몸이 만나는 일, 물질과 물질을 주고받는 일을 현실로 인지하게끔 진화해왔다. 실제로 접촉은 상호작용에 있어 매우 큰 영향을 주는 요소다. 사람들은 직접 만남으로써 편견을 접고, 우호적인 감정을 느끼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느낀다.

6월 초에는 200여명이 앉은 홀에서 북콘서트를 하고, 서울시청 앞 풀밭에서 피크닉 분위기의 북토크를 진행하고, 3년 만에 코엑스로 돌아온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사인회와 강연 진행을 했다. 사람이 바글바글한 곳에서 독자 한명 한명과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이건 안돼. 이건 줌이나 가상현실 같은 것으로 대체할 수가 없어. <블랙 미러>에서 그리는 수준의 완전한 가상현실, 그러니까 감각을 그대로 뇌에 재현하는 수준의 가상현실을 가져올 게 아니라면 몸과 몸이 만나는 경험은 대체하기가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종종 말을 안 듣고, 어딘가 불편하고, 매번 어디론가 끌고 가야 하는, 하지만 눈을 맞출 때 빛을 내뿜는, 얼굴빛이 도는, 악수의 감촉이 있는, 이 지긋지긋한 몸을 이끌고 만나야만 한다는 사실은 때로 잔인하게 느껴진다. 메타버스는 모두를 ‘건강하게’ 구현하는 세계가 될까? 그렇다면 그곳에서 인간의 몸은 무엇이 될까? 나는 전원이 꺼진 채 망연히 누워 있는 <애프터 양>의 양을 생각하면서, 그의 몸으로서의 존재감, 몸이기 때문에 겪었던 기억들을 떠올려본다. 그의 의식과 목소리를 백업할 수 있더라도 그러지 않기를 선택하는 것, 그를 보내주기로 결정하는 것은 그가 하나의 몸이었기 때문임을 생각해본다. 사랑하는 사람이 질병으로 인해 더이상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없게 되면, 나는 그때도 이런 믿음을 고수하게 될까. 현실을 대체하지 못해도 좋으니 불완전한 조각이라도 잡고 싶어 하는 우리의 마음은 어떤 메타버스를 만들도록 유도하게 될까. 나는 조금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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