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INTERVIEW
제75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공동 수상한 '클로즈' 루카스 돈트 감독 인터뷰
임수연 2022-06-16

남성성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들

<클로즈>의 루카스 돈트 감독은 올해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가 낳은 스타다. 첫 장편영화 <>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받아 황금카메라상을 받았던 그의 두 번째 영화가 단숨에 칸영화제 경쟁부문의 선택을 받았고, 개막 전부터 “영화가 더없이 잘 나왔다”라는 소문이 각국 기자들 사이에 돌기도 했다. 이는 근거 없는 뜬소문이 아니었다. 월드 프리미어 상영 직후부터 <클로즈>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과 함께 가장 유력한 황금종려상 후보로 떠오르며 페스티벌의 막판까지 화제를 몰고 다녔다. 31살의 젊은 감독이 심사위원대상을 공동 수상한 결과를 두고 더 큰 상이 돌아갔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질 만큼, <클로즈>가 포착한 10대들의 취약한 감정과 감각적인 이미지는 올해 칸을 찾은 사람들에게 깊은 잔상을 남겼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친밀하게 여름을 보낸 13살의 두 소년은 새 학기가 시작된 후 그들의 관계를 정의하려는 시선을 맞닥뜨린다. 특히 아이스하키를 시작한 레오는 또래 집단에게 자신의 남성성과 헤테로 정체성을 증명하기 위해 점점 레미와 거리를 둔다. 발레리나를 꿈꾸는 MTF(Male to Female) 트랜스젠더의 잔혹한 성장영화 <>에 이어 루카스 돈트는 또 한번 청소년의 정체성 혼란을 내밀히 들여다본다.

<클로즈>

- 이번 영화 <클로즈>는 당신의 실제 10대 시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들었다.

= 어릴 때 나는 남자들의 그룹에도, 여자들의 그룹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였다. 당시의 나는 꽤 고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곁에 다가와서 나와 연결되고자 했던 사람들, 특히 어린 소년들을 멀리하거나 밀어내려고 발버둥쳤다. 그들이 너무 가까이 다가오게 내버려두면 내게 어떤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던 탓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우정을, 나와 가까워지고 싶어 한 사람들을 잃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우리는 관계의 단절을 마주했고, 삶에서 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그전까진 우정의 가치를 과소평가하며 이를 면밀하고 적극적으로 검증하지 않았다. 친구는 삶에서 가장 보편적 관계 중 하나이며, 우리가 누구인지 드러내는 정체성의 문제와 직결된다. 인생에서 이러한 친구를 잃는 것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다. 나는 이런 비통함을 연인 관계에서만 봤지 우정을 통해 묘사한 영화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어린 시절 나와 비슷한 소년들 그리고 남자들이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보다 싸우는 광경을 보는 데 익숙한 소년들 모두를 위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남자답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사회로부터 남성성에 부응하고 부드럽고 연약한 면은 떨쳐내기를 요구받으면서 내 모습의 일부를 잃어버린 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남성성은 내가 오랫동안 고민한 문제다. <클로즈>는 매우 사적인 기억에서 출발했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영화는 보편성을 가질 수 있도록 의식하며 만들었다.

- 전작 <>에 이어 이번에도 성정체성과 청소년기의 신체 변화,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분을 다룬다. 왜 이런 테마를 계속 선택하는지.

= 사실 <>과 <클로즈>는 매우 다른 영화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심장에 거짓말을 하지 않는 영화를 만들고 싶고, 동시에 같은 이야기를 답습하기보다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다. <>이 신체와 관련한 성정체성과 여성성을 다루었다면, <클로즈>는 육체보다는 남성성과 청소년의 행동에 집중한다. 다만 남성, 여성, 이성애자, 동성애자를 구분짓는 사회가 만든 틀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의 관점에서 출발했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 틀을 경험하고 끊임없이 갈등했으며, 이는 내가 성정체성과 성지향성의 구분이 의미 있게 작동하지 않는 이들을 위한 이야기를 만들게 된 이유다. 사실 이 틀은 많은 사람들에게 무의미하다. 그렇기 때문에 <>과 <클로즈>가 다루는 주제는 매우 보편적이라고 생각한다.

- 당신이 10대일 때와 지금은 사회 분위기가 다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학교뿐 아니라 SNS에서 아이들이 맞닥뜨리는 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고, 그들은 누군가에게 공격받는 타깃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더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 영화에서 일어난 사건이 현실에서 벌어진다면, 지금의 10대들은 비디오로 찍어서 SNS에 공유할지도 모른다.

= 현재 10대들은 훨씬 더 어린 나이부터 보다 많은 문제에 직면한다. SNS에서 다양한 영상을 접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궁금해하는 대상에 이전 세대보다 더 쉽게 접근하고 세상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또 아이들은 다른 섹슈얼리티와 정체성에 직면하게 된다. SNS를 통해 연결되고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전보다 외로움을 덜 느낄 수 있다는 건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변화다. 그 반면에 좀더 어렵고 위험한 움직임도 있다. 어릴 때부터 더 많은 것을 접하는 아이들은 더 연약한 존재가 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변화를 모두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다. 학교에서 동성애자라는 표현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되는 것은 지금 우리가 만들어가는 개방성을 억제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백래시에 맞서기 위해서는 아름다움, 부드러움,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의 이미지를 계속 간직하고 세상에 내보여야 한다.

<클로즈>

- <클로즈>에는 매직 아워의 순간을 포착한 촬영과 아름다운 음악이 만들어낸 근사한 장면들이 있다. 프로덕션 과정에서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 나는 작가이자 작곡가, 안무가처럼 시나리오를 쓴다. 반드시 대사에 의존하지 않고 시각과 청각적 요소까지 글에 담는다. 촬영감독과 논의할 때 도전적인 이미지를 표현할 방법을 함께 찾아갔다. 내가 좋아하는 핸드헬드 촬영 기법을 많이 쓴 <>이 다큐멘터리 스타일을 추구했다면, <클로즈>는 더 많은 카메라 움직임, 더 다양한 색감을 담아낸다. 가령 초반의 꽃밭 장면이 보여주는 풍부한 색채는 어린 시절을 표현하기에 이상적인 이미지다. 두 소년이 마치 컬러북을 훑어보듯 꽃 사이를 뛰어다니는 장면이 담기다가 영화의 톤이 점차 브라운 계통으로 바뀐다. 사운드 면에서는 플루트와 휘파람, 산들바람 같은 섬세한 소리가 차가운 기계, 강한 파도의 그것과 마주할 때 충돌한다. 때문에 <클로즈>는 연약함과 잔혹성이 만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 어머니와의 관계가 돈독한 것으로 안다. 어머니에게 창조적 영감을 받는다고 들었다.

= 어머니는 벨기에의 한 고등학교에서 패션 디자인을 가르치신다. 내가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영화가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하셨고, 영화가 탈출구이자 배움의 계기가 된다는 점을 알려줬다. 그 덕분에 어머니가 첫 카메라를 사준 12살 때부터 작은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한 것 역시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 어떤 면에서 어머니는 나의 첫 배우이기도 하다. 내가 작은 장면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을 때 어머니는 기꺼이 카메라 앞에서 연기해줬고, 성인이 된 지금도 영화를 만들며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어머니에게 조언을 구한다. 무엇보다 어머니는 내가 두 번째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열쇠 같은 역할을 했다. 첫 작품 <>을 만든 후 나는 크나큰 불안감에 휩싸였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두 번째 영화로 무엇을 다뤄야 이상적일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중요한 힌트를 줬다. 31살이 된 지금도 내가 진정한 의미의 어른이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전히 개인적으로도 직업적으로도 어머니에게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 데뷔작 <>은 평단과 관객의 뜨거운 호평을 받았다. 이와 동시에 일부 평론가들에게 트랜스젠더 캐릭터에 시스젠더(자신의 생물학적 성과 젠더 정체성이 일치한다고 느끼는 사람) 배우를 캐스팅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당시 경험에서 배운 부분이 있나. 이번 작업에 영향을 준 부분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 <>은 나의 첫 영화다. 영화학교를 졸업한 후 만든 <>은 내 몸에서 비롯된, 굉장히 직감적인 방식으로 만든 작품이다. <>을 만든 후 1년 반 동안 영화제를 돌았는데, 좋은 반응도 나쁜 반응도 내겐 모두 처음이었다. 영화는 세상에 내놓는 순간 나만의 것이 아니라 관객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나는 창작자로서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영화를 보여주면서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풍부한 경험을 선사했다. 사람들이 보여준 다양한 반응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다른 관점을 이해할 수 있는 배움의 토대가 됐다. 그리고 이를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나는 창작자로서 더 풍요로워질 수 있었다.

관련영화

관련인물

사진제공 MAYLI STERKEND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