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Report > 트위터 스페이스
[트위터 스페이스] 영화 산문집 <묘사하는 마음>을 펴낸 김혜리 작가와의 대화
김혜리 이다혜 남선우 정리 배동미 2022-08-27

마음을 건드리는 영화들에게

※ 스페이스는 트위터의 실시간 음성 대화 기능입니다. ‘다혜리의 작업실’은 다양한 분야에서 글을 쓰는 작가들을 초대해 그들의 작품 세계와 글쓰기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듣는 코너입니다. 스페이스는 실시간 방송이 끝난 뒤에도 다시 듣기가 가능합니다.(https://twitter.com/i/spaces/1PlJQabbzONJE)

이다혜 @d_alicante 13번째 게스트는 <씨네21>에 연재한 '김혜리의 영화 일기'(이하 ‘영화의 일기’)를 묶어 에세이 <묘사하는 마음>을 펴낸 김혜리 작가님입니다. 김혜리 작가님은 <씨네21> 편집위원이기도 하죠. 작가님, 안녕하세요.

김혜리 @imagolog 안녕하세요. 김혜리입니다.

이다혜 @d_alicante '영화의 일기'를 2010년부터 2020년까지 10년 넘게 연재하셨더라고요. 그때 연재한 글을 두 권의 책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묘사하는 마음>으로 엮으며 다시 읽으셨을 텐데, 어떤 기준으로 이번 책에 실릴 글을 엮었을지 궁금했습니다.

김혜리 @imagolog 처음엔 외부 매체에 영화 말고 미술이라든지, 세상살이에 대해 종종 기고한 글까지 모아 실을까 했거든요. 모아보니 너무 많더라고요. 그래서 영화에 관한 글로만 좁혔어요. 그 많은 ‘영화의 일기’ 중 상대적으로 조금 덜 부끄러운 글, 제가 생각한 그 영화의 상을 의도한 대로 어느 정도 전했다고 생각하는 글을 뽑았어요.

2017년 출판한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는 1월부터 12월까지 목차로 해서 ‘영화의 일기’를 재편집한 책이에요. 그 책이 나온 다음 ‘영화의 일기’를 4년 더 썼어요. 이번엔 계절이 아니라 영화 단위로 묶었죠. 제가 한 영화를 갖고 3주간 글을 쓸 때도 있거든요. 어떨 땐 한 주에 두 영화에 대해 쓸 때도 있고요. 한 영화 한 영화에 대해 쓴 글을 모으고 이음새를 다듬어서 재편한 게 이번 책입니다. 또 기획 기사로 쓴 배우론, 영화 비평 섹션에 썼던 글 중에 역시 조금 덜 부끄러운 걸 골라 묶었어요. 그러다보니 생각보다 꽤나 두꺼운 책이 나오고 말았어요.

이다혜 @d_alicante 본 영화를 전부 ‘영화의 일기’에 쓰는 건 아닐 테고, 영화를 정하는 기준이 있었을 것 같거든요.

김혜리 @imagolog 저를 건드리는 영화죠. 쓸 말이 생각나게 하는. (웃음) 영화가 훌륭하다는 느낌일 때도 있지만 불평을 하고 싶을 때도 있잖아요. 어느 쪽으로든 글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에 대해 닥치는 대로 썼죠. 주간 내지 격주로 마감할 때 그런 영화를 만나는 건 상당히 행운에 가까운 일이에요.

이다혜 @d_alicante 매주 영화에 대해 두 페이지 분량의 글을 쓴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닌데요. 글을 쓰면서 제일 어려울 때는 어떤 때인지 궁금했습니다.

김혜리 @imagolog 내가 할 얘기가 있는 것 같지 않은데 지면은 기다리고 있으니까 무언가를 찾아내야 할 때 힘들었어요. 마감 전날 이번호에는 반드시 펑크가 나겠구나 생각할 때도 있었어요. 아무 생각도 안 날 때도 있으니까요. 책으로 내면서 빠졌지만 '영화의 일기'에는 이미지 두 개가 들어갔어요. 영화 속에 인상적인 한 컷을 골라서 캡션을 단 것 하나와 영화 전체적으로는 얘기할 게 좀 부족한데 이 장면, 이 소품, 이런 연기만큼은 언급 안 하고 넘어가기 아깝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좋아요’라고 이름 붙이고 박스 기사로 담았었거든요. 그걸 매주 생각하고 고르는 게 재미있었는데 문제는 그 이미지를 구하는 거였어요. 영화사에 연락해 “1시간 23분 55초 지점을 캡쳐해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받았어요. 그 과정이 고생스러우면서도 좋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립기도 해요.

이다혜 @d_alicante 작가님의 글을 읽었을 때 영화가 훨씬 더 재밌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풀 버호벤 감독의 <엘르>에 대한 글입니다. 영화를 보고 혼란스러웠던 게 글을 읽으며 정리되는 느낌이었어요. 이렇게 논쟁적인 주제를 다룬 영화의 경우, 글을 쓸 때 특별히 더 준비하시나요?

김혜리 @imagolog 아무래도 신중해야죠, 논쟁이 있으니까. 그냥 머리에 떠오른 생각만으로 쓰면 당연히 비판받거나, 이 글은 시야가 좁다는 아쉬움을 드릴 테니까. 기존에 나와 있는 얘기들을 구할 수 있는 것들은 읽어보되 거기에 반대되는 입장과 생각을 포함시키려고 하죠. 사실 한편의 영화에 대한 찬반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 때도 많아요. 폴 버호벤 감독 논쟁은 <엘르>만의 문제가 아니었죠. <엘르>를 계기로 그동안 미뤄왔던 '이 감독은 뭔가 이상하다',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쇼걸>이나 <스타십 트루퍼스>를 볼 때 느꼈던 걸 <엘르>가 나옴으로 해서 그 전작들에 대한 이해를 또 도와주는 면도 있었고요. 논쟁적인 영화에 대해선 가로세로로 더 살피고 글을 써야합니다.

이다혜 @d_alicante 요즘 글보다 말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김혜리 작가에게 글과 말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준비 과정도 다를 것 같고요.

김혜리 @imagolog 말로 할 때도 일단 글이 필요하죠. 근데 저만 보는 글이고, 결과물은 아니에요. 바쁠 때는 단어 메모에 가까워요. 글로 일할 때나 말로 일할 때나 영화를 보면서 내가 메모한 것과 참고 자료들을 타이핑하면서 정리하고 토픽별로 분류하는 준비 과정을 거쳐요. 여기까지는 똑같아요. 말의 경우, 글로 반쯤 해놓고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지 보죠. 상대방이 있는 자리는 제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잖아요. 하지만 글은 그 안에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장을 봐야 되니까 훨씬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괴로워요. 더 각오를 해야 되죠.

이다혜 @d_alicante 이 책의 첫 번째 챕터가 붙이지 못한 헌사라는 제목으로 이자벨 위페르, 베네딕트 컴버배치, 톰 크루즈, 폴 러드, 틸다 스윈튼에 대한 글을 묶은 건데요. 제가 김혜리 작가의 글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배우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배우 이야기로 책을 시작해 반갑기도 했습니다.

김혜리 @imagolog 예전에 ‘스타덤’이란 <씨네21>의 국내외 배우 코너를 많이 썼던 기억이 나요. 잡지에 실리는 배우 기사를 쓰면 그 시점까지의 얘기만 쓰게 되잖아요. 예를 들면, 2022년 시점에서 페넬로페 크루즈에 대한 배우론을 <바닐라 스카이> 때 쓴 글로는 좀 그런 거죠. 이후 필모그래피를 보고 다시 써야 하는 거죠. 그래서 인물에 대한 글은 '지금 이 순간 내 생각'이라고 한정하긴 해야 해요. 왜냐면 그 사람의 인생길을 나도 모르지 않겠어요? 그래서 앞으로 무슨 일이 있든 변하지 않을 배우의 에센스에 대해 썼고, 어느 정도 작품이 쌓여 제가 여러 번 썼던 배우들에 관한 글 중에 골라서 묶은 거예요. 하다 보니 다 백인 배우들이어서 마음이 걸리긴 해요. 배우에 대한 이야기로 책을 시작한 건, 사실 출판사 편집팀의 의견을 제가 따른 거예요. 아무래도 진입하는 부분이니까 웰컴 드링크 드리듯 잘 알려진 배우에 대해 이야기한 거죠.

이다혜 @d_alicante 그동안 발표하신 책들을 보면, 주로 <씨네21>에 연재한 글을 묶어 책으로 낸 경우가 많았어요. 기회가 닿는다면 특별히 테마를 잡아 쓰고 싶은 영화책이 있을까요?

김혜리 @imagolog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낸 <영화를 멈추다>란 책이 있어요. 한국영화 속 어떤 쇼트나 어떤 신을 선택해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쭉 풀어내는 포맷의 책이었어요. 전 그 포맷이 재밌었어요. 써야 한다면, 해외영화까지 포함해 신이나 시퀀스를 하나 선택해 책을 쓰고 싶어요. 부분에 대해서 말하지만 전체에 대해서 힌트를 줄 수 있는 에세이를 쓰면 재밌지 않을까요. 또 꾸준히 좋아하는 감독들의 필모그래피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경향이나 영화를 통해서 받는 감독에 대한 인상과 제 느낌을 정리하는, 교과서적이지 않은 감독론을 써서 모아보면 어떨까 생각해본 적도 있어요.

이다혜 @d_alicante 일과 무관하게 좋아하는 영화라서 반복해서 보는 작품이 있을지 궁금했어요.

김혜리 @imagolog 마이클 윈터바텀 초기작 중 시대극 <쥬드>는 왠지 모르게 너무 심금을 울려요. 원작의 힘도 있겠고, 윈터바텀의 힘, 그리고 크리스토퍼 에클스턴과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 등이 복합적으로 엮여 제가 편애할 수밖에 없는 영화입니다.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작품 중에 정식 개봉을 안 한 <감정의 운명>이란 긴 시대극이 있어요. 이 영화도 굉장히 멋져요. 이자벨 위페르가 아주 젊었을 때 나온 <레이스 짜는 여인>이란 영화도 있는데요. 예전에 우연히 TV에서 봤어요. 끌로드 고레타란 잘 알려지지 않은 감독의 작품인데, 영화사적으로 기려지는 영화는 아니고 상을 받은 것도 아니지만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아녜스 바르다의 많은 영화 중에 <베가본드>는 언제나 봐도 너무 젊은 것 같아요. 이 영화를 보면 차가운 바닷바람 맞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또 예술적으로는 그다지 기념되지 않는 시대의 프랑스 영화 마르셀 카르네 감독의 <천국의 아이들>이 있는데, 대사가 정말 아름다워요. 이 영화도 상당히 깁니다. 프랑스 영화 중에서도 마이너한 작품들인데 이상하게 오래 기억하고 있네요. 대체로 아련하게 낡은 우표처럼 저한테 기억돼 있는 영화들인 것 같아요.

'A.I.'도 좋아해서 반복해서 많이 봤고, <허공의 질주>도 빼놓을 수가 없겠네요.

이다혜 @d_alicante 영화에 대해서 말하고 쓰는 사람들이 듣는 가장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영화를 보고 나서 어떻게 그 많은 것을 기억하느냐’입니다. 정성일 평론가의 경우, 그 분야에서 놀랄 정도의 기억력을 자랑하는 분이잖아요. 김혜리 작가님은 영화를 기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요?

김혜리 @imagolog 정성일 선배의 경우, 예전에 우스갯소리로 목에는 목걸이 볼펜을 걸고 왼손에는 초시계, 오른손에는 수첩이 있다는 말이 있죠. (웃음) 뾰족한 수가 있나요. OTT에 있는 작품인 경우, 돌려봅니다. 극장 영화는 그럴 수가 없잖아요. 긴 글을 스거나 팟캐스트 혹은 행사에서 제대로 다뤄야 되는 영화의 경우, 가능하면 두 번 이상 보고요. 보는 동안 메모합니다. 시나리오를 얻을 수 있는 경우에는 요청드려서 보고요. 물론 최근에는 안 주시는 경우가 많지만, 시나리오를 읽으면 기억이 되살아나잖아요. 그러면서 디테일을 틀리지 않도록 하죠.

이다혜 @d_alicante 최근 10년 정도 동안 개봉한 영화 중 최초의 평가와 달라진 영화가 있을까요?

김혜리 @imagolog <파이트 클럽>은 개봉 당시 좀 석연치 않다고 할까? 영화가 주장하는 건 아니고 캐릭터 타일러 더든의 주장이지만, 현대사회의 노동 규율, 정치적 올바름 문화, 여성 때문에 진짜 남자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주장하잖아요. 그런 주장 자체가 너무 섣부르달까. 영화를 전체적으로 납득하지 못한 면이 있었고, 경계심이 일었어요. 20년 넘은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보면, 감독이 예언자다 싶습니다. (웃음) 당시에는 남자들의 이런 생각이 암묵적으로 바닥에 흐르고 있었고 표면화되지 않았을 뿐인 것 같아요. 그래서 ‘파이트 클럽’이라는 특수한 무대에서 이를 보여줬던 거죠. 지금처럼 전세계가 이렇게 될 줄 알았나요? 고령화, 양극화, 보수화 그리고 공공연하게 표면화되는 파시즘, 남성 인권 운동, 백인들의 역차별 주장…. <조커> 같은 영화가 나와서 논란도 있었고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이 파시즘의 도래를 무의식중에 예고했듯이 <파이트 클럽>이 어떤 냄새를 맡았던 거 아닌가 해요. 지금은 <파이트 클럽>을 훨씬 더 높게 평가할 것 같아요.

이다혜 @d_alicante 많은 분들이 김혜리 기자가 감성적인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같이 일을 하면서 느낀 김혜리 작가의 진면목은 다름 아닌 해외영화 산업 기사였습니다. 책에서도 블록버스터와 슈퍼 히어로물을 읽어낸 챕터가 특히 좋았어요.

김혜리 @imagolog 저도 사실 그 챕터를 좋아해요. (웃음) ‘영화의 읽기’는 신작을 따라가는 연재였잖아요. 박스오피스 관점에서 보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주축이고 중요한 이벤트에요. 그래서 ‘영화의 일기’를 쓰면서, 전보다 훨씬 더 이런 영화들에 관심을 가졌고 또 그 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재미를 느끼게 됐어요. 비단 영화 안에만 머물지 않고 다른 문화와 상호 다거나 자본과의 관계, 그리고 스튜디오가 갖고 있는 IP들과의 관계로까지 가지를 쳐서 나가기 때문에 해외영화 산업 기사를 쓰면서 글을 쓰는 또 다른 재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이다혜 @d_alicante 오늘 방송에 대한 소감을 말씀해주시고 마무리할까 합니다.

김혜리 @imagolog 방송 전에 “우리끼리 이게 무슨 일이냐”라고 말했었지만 늘 제 글을 랜선 건너편에서 받아주고 다듬어줬던 이다혜 편집기자랑 그 글들을 모은 책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옳은 매듭을 맺은 것 같아요. 편안하고 흐뭇했어요. 또 이렇게 한 시기가 지나구나, 하는 마음이 드는 밤이었네요.

남선우의 책갈피

한 편의 글을 쓰기 전 마음 상태는? 설렘 혹은 긴장.

긴장.

영화를 볼 때 더 선호하는 좌석은? 극장 정중앙 측면 vs 통로 쪽.

측면 통로 쪽.

집에서 영화를 관람할 때는 어떤 환경을 갖춰 놓고 보나요?

리클라이너에 앉아서 강아지가 어디 있나 가끔 체크해요. 마실 걸 떨어지지 않게 합니다.

책에 한국배우 한 사람에 대한 글을 넣을 수 있다면, 누구를 조명해보고 싶나요?

한 사람은 안 되는데… 일단 배두나씨가 생각나네요.

김혜리 작가의 최애 영화 시리즈는 무엇인가요?

글쎄요, ‘매드맥스’ 시리즈라고 해야 되나... ‘해리포터’?!

재개봉을 강력히 원하는 작품이 있다면?

'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