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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4호 [인터뷰] ‘너와 나’ 조현철감독, “외면할 수 없는 죽음들이 있었다”
임수연 사진 최성열 2022-10-09

<너와 나> 조현철 감독

<D.P.> <차이나타운>에서 내향적인 공격성을 섬뜩하게 연기했던 조현철은 원래 감독으로 먼저 주목받은 유망주였다. 그가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서 연출을 전공했고 단편영화 <척추측만> <뎀프시롤: 참회록> 등이 당시 영화제 화제작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그의 첫 장편영화 연출작이 어떤 작품이 될지 궁금했을 것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비전’ 섹션에 초청받은 조현철 감독의 <너와 나>는 그가 무려 6년 간 천착했던 고민을 응축한 결과물이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 세미(박혜수)는 다리 부상 때문에 평생 한 번 있는 추억을 함께 하지 못하는 하은(김시은)이 수학여행을 갈 수 있도록 온갖 방법을 강구한다.

-올해 백상예술대상에서 <D.P.>로 TV부문 남자 조연상을 받았을 때 수상소감 중 <너와 나>를 언급했다. (“작년 한해 동안 내 장편 영화 <너와 나>를 찍으면서 나는 분명히 세월호 아이들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 그리고 그 영화를 준비하는 6년의 시간 동안 내게 아주 중요했던 이름들, 박길래 선생님, 김용균 군, 변희수 하사 그리고 이경택 군, 외할아버지, 할머니, 외삼촌, 아랑쓰 그리고 세월호의 아이들 특히나 예진이, 영은이, 슬라바, 정무... 나는 이들이 분명히 죽은 뒤에도 여기에 있다고 믿어.”) 그때 언급했던 이름들이 영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2016년, 개인적인 일을 겪은 후 죽음을 체감했던 순간이 있다. 최초의 감정은 공포였다. 그러다 사회적인 죽음이든 자연스러운 죽음이든 사고로 인한 죽음이든 그 안에 정확히 똑같은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서로 무관해 보이거나 시공간적으로 거리감 있는 사건들이 모두 연결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어떤 기억이나 사건들이 마치 유령처럼 나를 잡아끌면서 자꾸 자기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는 느낌을 받았다. 프리 프로덕션을 시작했을 때 변희수 하사의 소식을 접했는데, 이런 죽음들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자꾸 마음이 쓰이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게 내가 할 일 같았다.

-그 방식이 왜 영화 만들기가 됐나.

=2016년 광화문에서 세월호 추모식을 할 때 아이들의 영정을 보면서 무력함을 느꼈다. 그러다 줄을 좀 정리해달라며 우연히 스태프 명찰을 받았는데 기분이 이상해졌다. 문득 죽음을 하루 앞둔 여자 고등학생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남성이고 레즈비언이 아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시간이 꽤 흘러서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막막하기도 했지만, 왠지 모르게 영화가 나를 어디선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너와 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우연들이 이상한 타이밍에 벌어졌다. 다사다난했지만 결국 영화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동인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면, 이 영화를 만들어야만 하는 운명이라고 밖에 표현되지 않는다. <너와 나>를 준비하는 과정, 얽혀 있는 사람과 사건 그리고 내 개인적인 사연까지 모든 게 이야기의 일부였다. 그 끝을 보고 싶었다.

-그 끝을 보니 어떠하던가.

=지난 1년간은 굉장히 충만했다. 연출부, 배우, 프로듀서 등 영화에 얽혀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결핍과 고통을 안고 있었다. 우리가 모여 작업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아름다운 감정을 공통적으로 느꼈다. 그 이상 영화 찍으면서 뭐가 더 필요할까. 그만큼 촬영이 끝나가는 시점에 마음이 공허해졌다. 엄청나게 큰 에너지를 <너와 나>에 쏟았는데 그 대상이 사라져 버리니까 당혹스러웠다.

-수상소감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공해병 피해자이자 환경운동가 고 박길래 선생님의 재판을 도왔던 조영래 변호사가 큰 아버지였고, 얼마 전 작고한 아버지 역시 환경운동에 앞장섰던 장본인이었다는 특별한 인연이 기사화되기도 했다. 이러한 연결고리가 <너와 나>를 준비하는 동안 박길래의 이름을 떠올리는 데 영향을 미쳤나.

=그보다는 여성 문화예술가이자 1세대 페미니스트였던 엄마(안일순)와 이모(안혜경)로부터 직간접적으로 받은 영향이 더 크다. 어렸을 때 엄마가 만났던 미군 성범죄 피해자나 비전향 장기수 할아버지들을 나도 만난 적이 있다. 어렸을 때 이모가 작곡하고 엄마가 가사를 붙인 노래를 들으며 자랐는데, 그중에 ‘검은 민들레’(고 박길래씨의 이야기를 담은 곡)도 있었다. 한동안 잊고 살다가 2016년에 다시 떠올리게 됐다.

-시나리오는 어떻게 썼나.

=2016년에 일기를 광적으로 자세히 썼다. 매 끼니 무엇을 먹었는지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을 세세하게 쓰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무언가 톡 튀어나오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이 내게는 시처럼 느껴졌다. 일상의 작은 부분들을 시와 같은 방식으로 배치하며 어떤 장면을 계속 채집해나갔다. 취재도 많이 했다. 한예종 입시 학원 강의를 나갔고, 세월호 생존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로 특강도 몰래 나갔다. 앵무새에게 ‘사랑해’ 라는 말을 가르치는 신은 영상원 입시 강의를 나갔을 때 어떤 학생이 숙제로 써온 일기 내용이었다. 영화 속 배경이기도 한 안산에서 실제 유년을 보냈는데 그 기억이 반영된 부분도 있다.

- 티빙 <전체관람가+: 숏버스터>에서 찍은 <부스럭> 메이킹 과정을 보면 시나리오를 철저히 지키기보다 현장에서 나온 즉흥적인 아이디어를 작품에 녹여내는 스타일이더라. <너와 나>는 어땠나.

= 해가 진 뒤 장면은 시나리오대로 찍었다. 낮 동안 벌어지는 일은 특히 하은의 대사가 시나리오와 다소 달라졌다. 원래 있던 대사를 배우들이 소화하기 어려워해서 적임자를 찾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김)시은 씨가 캐스팅된 다음 두 배우를 불러 3일 정도 상황만 주고 즉흥 연기를 하도록 시켰다. 그때 나온 대사를 받아 적어 정리한 대로 현장에서 찍었다.

- 세미와 하은을 연기한 두 배우, 박혜수와 김시은은 어떻게 캐스팅했나.

= 일단 혜수 씨가 먼저 과거의 인연으로 캐스팅이 됐다. 혜수 씨가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 세미가 너무 자기 같다고 했는데, 메소드 아닌 메소드 연기를 한 것 같다. (웃음) 그가 갖고 있는 영혼이 그렇다는 것을 영화에서 보여준 연기가 증명하고 있다고, 그런 사람이 아니면 그런 연기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시은 씨는 오디션을 봤다. 기존 독립 영화나 장르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던 에너지와 결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였다. 동물적인 연기로 현장에서 놀라운 모습을 보여줬다.

- 불안한 꿈에서 깨는 세미의 모습으로 시작해 꿈의 이미지가 영화 전반을 지배한다. 영제도 ‘The Dream Song’이다. 6년 동안 고민했던 ‘죽음’이라는 테마와 ‘꿈’을 연결한 이유가 무엇인가.

= 영화 제목은 존 베리먼의 <꿈의 노래>(The Dream Song)에서 따왔다. 광화문에서 세월호 생존 학생이 먼저 떠난 친구들에게 쓴 편지를 읽는 장면이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친구가 꿈에서라도 나타나 만났으면 좋겠다”며 우는 모습이 나를 많이 신경 쓰이게 했다. 그래서 세미가 하은의 꿈에 나타나서 한번만 안아주기를 바랐다. 영화 마지막에 이르면 이 모든 게 누군가의 꿈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연출했다. 더 나아가 현실과 꿈, 영화와 현실, 허구와 리얼리티, 너와 나, 나와 세상,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체험을 하기를 바랐다.

- 퀴어 영화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 레즈비언 소녀들이 만나는 아이디어는 언제부터 떠올랐나. 다른 한국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조합인데.

= 퀴어 소재를 가져온 건 아무 이유가 없었다. 보통의 멜로나 로맨틱코미디 영화를 볼 때 왜 성별을 남자와 여자로 설정했냐고 묻지 않는 것처럼 내겐 그냥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이모의 작업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하다. 육아와 작품 활동을 병행한 엄마가 소설을 쓸 때 나를 데리고 동두천 미군 부대로 취재를 가기도 했다. 오키나와 출신 여성운동가와 영국 출신의 어떤 할머니가 어렸을 때 집에 자주 놀라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두 분이 레즈비언이었다.

- <너와 나>가 그리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는 강아지 제리와 앵무새 조이 등 다양한 동물까지 포괄한다.

= <너와 나>는 내가 아닌 것을 이해하려고 마음을 쓰는 영화다. 인간에 국한되지 않은 종에 연민을 느끼는 태도가 중요했다. 기후 위기를 앞둔 현 시점에서는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 개와 고양이뿐만 아니라 나무와 곤충, 이 모든 것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때다.

- 서로 의심하고 질투하고 감정을 숨기던 세미와 하은이가 솔직한 마음을 보여주게 되는 전환점이 되는 신이 있다.

= 이기적이기도 실수도 많이 하지만 세미는 본래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세미가 개를 잃어버린 주인과 주인을 잃어버린 개에게 연민을 느끼는 마음을 보여줬다. 보통 개를 찾는다는 전단지를 봤을 때 사진을 찍어뒀다가 나중에 비슷하게 생긴 개를 봤을 때 전화를 거는 일은 잘 벌어지지 않는다. 세미의 행동으로 인해 세미가 꿨던 꿈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되살아나고 하은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 순간 세미에겐 하은이 거짓말을 했는지, 다른 누구와 데이트를 했는지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를 뛰어넘은 사랑이 세미 안에 있었고 하은 역시 마음을 느꼈으니까. 사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도 똑같이 싸울 거라고 생각한다. (웃음) 어쨌든 그 순간에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한다는 그림을 그렸다.

- <너와 나>에서 가장 실험적인 연출을 보여준 장면은 세미가 노래방에서 빅마마의 <체념>을 부르는 신일 것이다. 왜 그 노래였을까. 너무 통속적인 유행가 아닌가. 무엇보다 5분이나 되는 곡을 부르는 모습을 편집 없이 보여줄 줄 몰랐다.

= 시나리오를 쓸 때 세월호 학생들의 실제 일화를 반영하는 건 의도적으로 피했다. 개인적인 경험이나 취재를 통해 알게 된 것을 녹여내려고 했다. 그런데 유일하게 밀접한 연관이 있는 설정이 빅마마의 <체념>이었다. 수상소감에서 언급했던 정예진 학생의 노래방 18번이었다. 통속적인 가사를 가져온 건 정확히 의도한 바가 맞다. 내일 죽을 사람이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내용이 담긴 노래를 부르는 게 무척 아이러니하고 막대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5분 넘게 지속되는 장면을 그대로 넣을 것인가 여부는 편집 과정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나는 자르지 않고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5분 동안 세미의 내면이 파도를 타면서 얼굴의 질감과 표정, 눈빛이 변하는지, 그 생생한 물성을 보고 싶었다.

-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 죽음의 징후가 소녀를 불안하게 한다. 세월호가 떠오를 수밖에 없는 설정이다. 아티스트로서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누군가를 상처 줘서는 안 된다는 자기 검열이 있을 수밖에 없다.

= 주요한 고민이었다. 2016년 <너와 나>를 구상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에게 “수학여행 떠나기 전날 고등학생 이야기”라고 설명하면 100이면 100 모두 세월호를 떠올렸다. 그런데 2020~21년이 되니 사람들이 인지를 못하더라. 원래는 하은이 버스에 앉아서 혼자 우는 신에서 라디오 방송이 나올 계획이 없었는데, 어쩔 수 없이 사고를 암시하는 대사를 넣었다. 영화 제작이 늦어지는 바람에 하은을 버스에 앉혀놓고 고통스럽게 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서 하은이에게 너무 미안하다.

- 어떤 장면들은 시간이 고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2시 35분을 가리키는 시계가 시간 텀을 두고 반복해서 등장한다거나.

= 영화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주요한 부분은 아니었지만, 선형적인 시간의 느낌을 흩뜨리고 싶었다. 보통 영화를 찍을 때 시간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는데, <너와 나>는 시간 개념이 굉장히 중요했다. 수학여행을 가기 하루 전날, 12시간 남짓 안에 벌어진 일이지만 관객이 볼 때는 굉장히 오래된 일처럼 느껴졌으면 했다. 하은은 그 사고 이후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어떤 시간에 계속 멈춰 있다. 그렇게 묶여 있는 하은을 세미가 끄집어내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 세미가 거울에 비치는 숏이 유독 많은 건 의도적인 연출로 보였다.

=세미가 어떤 순간에는 유령처럼 보이기를 바랐다. 특히 하은과 헤어진 이후에 벚꽃길을 긴 트랙샷으로 보여줄 때는 그곳에 세미가 걸어가고 있다고 상상하며 찍었다. 그 다음 신에서는 거울 속에 아무도 없다가 세미가 걸어 들어오는데, 이 역시 꺼지기 직전의 불빛처럼 보였으면 했다.

- 엔딩 장면은 무엇을 의도한 것인가.

= 확실한 논리가 있지는 않다. 시나리오와도 다르게 찍었다. 세미가 누워 있는 장면을 8분 동안 찍었다. 그 시간이 박혜수라는 배우에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햇빛이 변한다거나 바람이 분다거나 하는 변화가 있으면 끊으려고 했는데, 처음으로 생긴 가장 큰 변화가 혜수 씨가 “이거 몰래카메라 아니냐”면서 일어난 거였다. 배우 말로는 울음이 나올 뻔했다가 그냥 웃었다고 하더라. <너와 나>에 참여한 박혜수라는 배우의 서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신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영화적으로는 일부러 엠비언스를 제거해서 공간성이 사라진 상태에서 대사가 나오도록 했다. 여전히 세미가 여기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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