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고 싶은 커다란 나무 같다. 신승호 배우가 맡은 전석대는 가출팸의 행동대장으로 얼핏 보기엔 주인공 일행을 괴롭히는 악역이지만 어딘지 계속 마음이 쓰인다. 전석대는 더 나쁜 무리와 상황으로부터 자기 식구들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방패막이를 자처하고 기꺼이 나쁜 짓에 발을 담그는 캐릭터다. 재미있는 건 이런 복잡한 사연을 알기 전에도 전석대를 미워하긴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나를 지켜주는 거목 같은 존재감은 배우 신승호가 이미 두르고 있는 특질에 가깝다. 우직하고 든든하게, 흔들림 없이 나를 지켜줄 것 같은 존재. 주연보다 눈길이 가는 특별출연. 신승호 배우에게 <약한영웅 Class 1>과의 특별한 인연에 대해 물었다.

-영화제는 처음이라고 들었다.

=아직 영화는 경험이 많지 않아서 내가 영화제에 올 수 있을 거라고 상상을 못했다. 막상 겪어보니 이래서 다들 영화제에 오는구나 싶다. 관객들과 직접 마주하면서 영화를 사랑하는 분들에게 에너지를 받으니 벅차오른다. 무엇보다 큰 화면에서 <약한영웅 Class 1>을 관람할 수 있어 감격스럽다.

-특별출연이라고 크레딧에 올라와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비중이 상당하다.

=약간의 사연이 있다. <약한영웅 Class 1>에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한준희 감독님이 처음 제안 주셨을 때 역할에 상관없이 무조건 하고 싶었다. 근데 타이밍이 드라마 <환혼>과 겹쳐서 부득이하게 거절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아쉬움을 달래던 차에 한준희 감독님이 특별출연으로라도 함께 하고 싶다며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감독님이 회사를 설득해주었고 나도 적극적으로 하고 싶다는 의지를 어필한 끝에 결국 어렵게 시간을 맞춰 동시에 진행하게 됐다. 이 자리를 빌려 배우 신승호를 필요로 하고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런 의미에서 전석대는 신승호를 위한 맞춤 캐릭터처럼 느껴진다.

=과분하다. 전석대는 겉으로 보면 단단한 바위 같은 인물이다. 주인공들을 방해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역할이지만 악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석대에겐 우선순위가 가출 팸에서 만난 동생들이고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하는 거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가족을 지키는 가장이라고 해도 좋겠다. 돈을 받고 연시은(박지훈)에게 대신 폭력을 휘두를 때도 아무런 감정 없이 ‘비즈니스’를 한다고 생각한다. 자세히 보면 석대는 상대를 때릴 때 눈을 쳐다보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폭력을 좋아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내 편,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손에 피를 묻힌다.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건 너무 좋았지만 3부에서 끝나서 아쉽다. 석대와 가출팸 식구들의 사연은 4부 이후부터 본격적이니 꼭 지켜봐 주시라.

-연출을 맡은 유수민 감독은 단편을 통해 탁월한 액션 감각을 증명했다. 그런 만큼 이번 작품에서 캐릭터의 성격에 맞춘 다양한 액션들을 선보인다.

=사실 대사가 그리 많지 않고 3부까지는 본격적인 사연이 밝혀지지 않아서 표현의 한계가 있다. 하지만 길지 않은 장면에도 캐릭터마다의 개성을 충분히 살려주셨다. 전석대의 경우 큰 덩치를 활용한 레슬링을 기반으로 한다. 상대에게 고통을 주는 것보다는 빠르게 제압하는 걸 목적으로 하는, 그야말로 비즈니스적인 접근이다. 외강내유의 인물인 만큼 상대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여린 마음이 드러나는 부분도 있다.

-<환혼>의 세자 고원과 비교하면 상당히 다른 캐릭터다. 동시에 오가며 연기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주변에서 많은 조언을 해주셨다. 꼭 하고 싶단 욕심을 부렸던 만큼 중심을 잡아야만 했다. 나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작품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니 부담이 적지 않았다. 특별한 비결 같은 건 없고, 그저 매 순간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지루한 걸 못 참는 편이다. 편하고 재미있어야 일도 잘 된다. 지나치게 긴장하거나 무게에 눌리지 않으려 애썼다. 분위기를 띄우려고 실없는 농담도 자주 하는 편이다.

-유머러스한 사람은 주변을 살피고 분위기를 읽는 능력이 탁월한 경우가 많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굳이 비교하면 실제 나는 세자 고원 쪽에 좀 더 가까운 것 같다. 가벼워지려고 노력한다고 할까. 때문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전석대가 되기 위해선 많은 걸 덜어낼 필요가 있었다. 이번에는 그런 접근을 좀 더 배운 것 같다. 바위처럼 단단하고 조용한 캐릭터의 내면을 그리기 위해 오히려 안으로 꾹꾹 누르는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표현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고, 뭔가를 덜어내고 비웠을 때 비로소 채워지는 것들이 있다는 걸 실감했다. 이번 역할은 여러모로 도전이었고 그만큼 얻은 것도 많았다. 앞으로도 가능한 다양한 역할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저 사람이 다음엔 뭘 할까,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기대감을 안기는 배우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