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편집장이독자에게
[이주현 편집장] 영화제의 존재 이유
이주현 2022-10-14

“왼쪽 눈 아래 맥립종이 보이네요.”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일정 막바지쯤, 며칠간 지속된 여흥의 훈장으로 눈 다래끼를 얻었다. ‘다래끼가 난 눈 부위의 속눈썹을 뽑아서 돌멩이 위에 올려두면 그 돌멩이를 발로 찬 사람이 다래끼를 가져간다’는 다래끼 민간요법(?)이 어느 식사 자리에서 화두에 올랐는데, 이 이야기를 아는 건 나를 포함해 부산 출신 2명뿐이었다.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라며 코웃음 치는 사람들을 향해 모 영상위원회 본부장은 새로운 IP의 경향을 얘기할 때만큼이나 진지한 얼굴로 (아마도 부산 지역에서만 구전되어온 듯한) 민간요법을 설명했다. 다래끼 얘기가 좀 뜬금없을 테지만, 요는 3년 만에 정상 개최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반가운 이들과 가까이 얼굴을 맞대고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원 없이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 3년간의 단절감을 해소하고도 남을 만큼 무수한 ‘00의 밤’들이 이어졌다. 한국영화 투자배급사들이 파티를 열었고 기관과 단체에서도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으며 영화제 초청작 팀끼리도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파티의 성격도 다양했는데, 이를테면 ‘플러스엠의 밤’에선 홍정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가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이라는 사명을 앞으로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로 바꿔 독립된 브랜드로 키워나가겠다”고 밝히며 브랜드 분리 선언 및 비전을 공개했다. 종합엔터테인먼트사로의 도약 의지를 대대적으로 공표한 자리가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의 파티였다는 것도 나름의 전략처럼 보였다. 물론 경쟁사까지 하나되게 만들었던 클라이맥스는 경품 추첨의 시간이었지만. 아무튼 분신술이 절실했던 밤들이 지나가고 남은 건, 영화(제)를 매개로 가까워진 사람들끼리 불콰한 얼굴로 찍은 부끄러운 기념사진과 한 무더기의 명함이었다. 이 얼마나 그리운 풍경이었는지.

관객의 입장에서도 이야기해보자면,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인 양조위를 비롯해 수많은 국내외 영화인들이 부산을 찾아 관객과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극장에서 단란하게 혹은 야외무대에서 활기차게 관객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도 풍성하게 마련되었는데, 영화제는 무릇 만남의 장이어야 한다는 것을 관객도 감독도 배우도 실감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온라인 공식데일리를 제작한 <씨네21>도 부산을 찾은 영화인들을 부지런히 만났다. <에브리씽 윌 비 오케이>로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한 리티 판 감독은 2022 CHANEL X BIFF 아시아영화아카데미 교장으로 부산을 방문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학생들과 시 낭송을 했다며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파도가 높고 거셀수록 정서적인 공감대가 중요하다. 우리는 교류하고 소통함으로써 지금보다 풍성해질 수 있다.” 이젠 더 자주 만날 일만 남았다는 기쁜 안도가 부산에서 켜켜이 쌓은 추억의 지층을 단단히 덮는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