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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명량’과 ‘한산’, 어린이들과 같이 보기
우석훈(경제학자) 2023-02-16

우리 집 어린이들은 초등학교 2학년, 4학년, 이제 곧 3학년, 5학년으로 올라갈 겨울방학 중이다. 태권도장, 미술학원, 영어학원을 적당히 섞어가면서 겨울방학을 보내는 중인데, 사실 시간 보내기가 쉽지 않다. 방학 전에는 집 근처로 누군가 찾아오면 커피도 한잔 마시고 그랬는데, 두 어린이의 학원 시간이 제각기고, 영어학원 말고는 차가 없어서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것도 정신이 없다.

큰애는 이제 <포켓몬스터>를 그만둘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 혼자서 영화를 볼 정도는 아니다. <원피스>를 주로 본다. 작은애는 한창 <포켓몬스터>를 볼 나이다. 영화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에서 전투 신만 보여주면 재밌게 본다. 만화 <삼국지> 같은 것들을 둘 다 본다. 얼마 전 <안시성>의 후반부 전투 신을 보여줬는데 아주 재밌게 봤다. 나는 <안시성>을 그렇게 재밌게 보지 않았는데 어쨌든 어린이들에게 만화를 덜 보게 하는 용도로는 딱 맞다.

영화 <명량>의 전투 신만은 몇년 전에 보여줬는데 전투가 복잡해서 그런지 둘 다 그렇게 재밌게 보지는 않은 것 같다. 재미있는 것들은 틀어달라고 하는데, 거의 역사 공부하듯이 <명량>을 보게 한 후로는 그렇게 보여달라는 요구가없었다. 겨울방학을 지루하게 보내다 이번에는 <한산: 용의 출현>(이하 <한산>)의 후반부 전투 신을 틀어줬다. 그런 적이 없었는데, 두 어린이의 반응이 확실하게 달랐다. 큰애는 학익진에 관심을 보였고, 진으로 일본군을 유인하는 과정을 무척 흥미롭게 봤다. 둘째는 별 반응이 없었다. 소파에 앉아서 보더니 나중에는 길게 누웠다.

며칠 지나고 나서 둘째가 <명량>을 다시 보여달라고 했다. “네 이놈,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로 유명해진 바로 그 장면에서는 내가 아들들 나이에 읽었던 책 설명을 좀 했다. 그 뒤로 둘째에게 <명량>을 끝없이 반복해서 틀어주는 중이고, 운전 중에도 블루투스로 연결해서 소리만 틀어주기도 했다. 소리만 들어도 어린이들은 좋아한다. 큰애는 <한산>을, 둘째는 <명량>을 끝없이 보는 중이다. 물론 전투 신만 본다. 아직 셋업과 준비 과정까지 즐길 나이는 아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명량>과 <한산>을 끝없이 보는 중이다. <명량>은 꽤 재밌게 봤고, <한산>은 별로 재미없게 봤다. 욕은 많이 먹었지만, <명량>의 ‘국뽕’은 피할 수 없었던 서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한산>의 의와 불의는 보면 볼수록 과잉 서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맘대로 <명량>과 <한산>의 최고의 대사를 뽑아봤다. 학익진이 완성되기 직전에 적선이 돌진하자 원균이 말한다. “저자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게야, 적들이 코앞인데. 부장은 뭐하는가, 어서 포를 쏴라!” 이때 최고의 대사가 나온다. “그게, 포탄이 떨어져서.” 부장이 어벙을 떤 덕분에 학익진이 완성되고, 대승을 거둔다. 용산 대통령실에는 이런 부장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배우 손현주의 체형과 어투가 대통령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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