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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인의 데구루루] 이야기의 빛과 맛
김세인 2023-05-25

2022년 여름, 당근마켓에서 2만원 주고 산 소파에 앉아 풍경 소리를 들으며 한 계절을 보냈다. 당시 나는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프로젝트마켓 출품을 목표로 이야기를 떠올리려 애쓰고 있었다. 크게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단지 잠자코 소파에 앉아 기다렸다. 바람이 가로질러가며 풍경을 울리는 소리를 듣다보면 이야기도 불현듯 방문할 것 같았다. 꽤 간절하기도 하고 심드렁하기도 했다. 나와 주변에서 벌어지는 불가해한 일들을 바라보다 보면 이야기는 의미가 없다. 이야기는 아무 힘이 없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감사하게도 많은 축복과 응원을 받았음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 안에서는 이야기에 대한 경멸이 커졌다. 다시 이야기라는 것을 믿고 싶었기에 그 방문이 간절했고 끝내 믿을 수 없을 거라 예상했기에 심드렁했다. 그래도 뭔가 떠오르기는 했다. 중년 여성 ‘동경’과 어린이 ‘을래’라는 두 인물 사이에 흐르는 시간에 대한 것이었는데 트리트먼트가 완성되었지만 스스로도 도저히 그 인물들과 이야기가 믿겨지지 않아 아무렇게나 끄적인 유치한 낙서쯤으로 여겨졌다. 당장에 부산으로 가야 할 시기는 가까워져가고 마음은 조급해졌다. 믿기지 않는데 어떻게 필름마켓에서 영화에 대해 소개할 수 있겠는가? 사기꾼이 될 순 없었다.

만화책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에서 마스다 미리 작가는 뭐라도 발견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부지런히 동호회에 참여한다. 그녀는 동호회의 주제에는 전혀 흥미가 없고 혼자 가는 것도 싫고 어두운 것도 무섭다. 그러나 간다. 성실한 회사원이 출근을 하는 것처럼 당연하게 간다. 이윽고 ‘쌍둥이바람초 관찰 동호회’에서는 ‘5월이 되면 싹 사라진다’는 평범하지만 설레는 한 문장을 만나고, ‘밤의 산을 하이킹 동호회’에서는 왠지 자신이 몹시 약한 존재로 느껴지는 마음을 만난다. 나도 이제는 소파에서 일어나야 할 시기가 되었다. 마스다 미리 작가처럼 떠난다고 별 소득이 있을까 하는 회의감을 품고 무작정 영화의 배경인 원주로 향했다. 일단 도착하자마자 물회를 한 그릇 먹고 이곳저곳 돌아다녀보았지만 역시나 나에게 채집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하루 하고도 반나절이 무의미하게 지났다. 빈손으로 서울에 올라가려던 차에 구룡사 근처의 계곡에서 마침내 나는 뭔가를 발견했다. 그건 초록빛이었다. 그게 뭐? 싶겠지만 나에게는 귀한 발견이었다. 이야기가 글자에서 감각으로 전환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바람에 우연하게 흔들리는 투명한 초록빛 수면 위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흘렀다. 트리트먼트에는 그와 닮은 장면이 있다. 이야기가 단순히 자음, 모음의 조합이 아닌 실체가 있다고 느껴졌다. 그 실체에 다가가고 있었다.

이야기를 쓰고 시나리오를 쓴다는 것은 작가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이미 놓여 있는, 이야기의 실체를 더듬고 받아쓰는 것이 아닐까. 내 손으로 만든 것들은 무엇이든 엉성하고 믿음이 가지 않는다. 이야기와 영화는 이미 생명력을 가지고 있고 나는 열린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편안해진다. 흔히 신들린 듯 글을 쓴다고 하지 않나. 신과 같은 이야기가 있고 작가는 보이는 대로 쓴다. 원주에서 초록빛을 발견한 것은 전설의 괴수 ‘켈피’의 머리카락 정도 본 격이니 이제 추적할 일만 남았다. 집에 돌아와 다시 이야기에 대해 의심이 들 때면 풍경 소리를 틀어놓고 소파에 누워 계곡의 초록빛을 떠올렸다. 그리고 트리트먼트 속 장면들을 떠올리다 잠이 들었다. 한참 그렇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꿈과 장면이 섞여 잠결에 ‘아, 이것이 실제 일어났던 일인가’ 어안이 벙벙한 채로 혼잣말을 했다.

얼마 전 처음으로 봄베이 하이볼을 마셨다. 봄베이 하이볼을 한입 마시자마자 속으로 ‘이거 동경(시나리오 속 인물명)의 맛이다’라고 말해버렸다. 참 이상하다.

‘동경에게 맛이 있다면 이런 맛이겠다’도 아니고 ‘동경의 맛이다’라는 확언이라니.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걸까. 봄베이 하이볼에서는 허브 입욕제와 목초액 향이 났다. 입안에 맴도는 맛이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어렸을 적 피부병을 앓았기 때문에 입욕제와 목초액을 푼 욕조에 자주 들어가 있었다. 열기로 가득 찬 욕실 안에서 초록색으로 흔들리는 하반신은 내 것이면서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다리를 움직이면 물속의 초록색 다리는 어쩐지 한 박자 늦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혀 나의 하반신을 노려보며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다리를 흔들어보거나 양손을 물에 담갔다 뺐다를 반복하곤 했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지난해 여름 떠올랐던 ‘동경의 날’(프로젝트명)의 빛이 왜 초록빛이어야 했는지. 왜 동경의 맛이 봄베이 하이볼 맛인지. 동경과 을래 두 사람 사이의 내 것이면서 내 것이 아닌 시간과 기억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신비로운 이야기는 꼭 그 빛과 맛이어야 했다. 빛도 맛도 분명한데 이야기의 실체를, 이야기가 아주 오래전부터 그곳에 놓여 있었다는 것을 믿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요즘 다큐멘터리를 자주 본다. 그리고 상상해본다. 인물과 상황 그리고 갖가지 요소들을 세포로 환원해 오롯한 하나의 생명체가 되는 이야기를. 갈라진 다리 근육으로 마구 내달리는 이야기, 입을 벌리고 포효하는 이야기, 드러누워 꼬리를 살랑거리는 이야기, 깊은 심해를 유유히 헤엄치는 이야기. 촉수를 곤두세우고 먹이를 잡아먹는 이야기. 진흙탕을 뒹구는 이야기, 구름 위를 비상하는 이야기. 호수 위에 잠시 고개를 내밀고 사라져버리는 이야기. 고유한 이야기들은 눈 밝은 작가에게 목격되고 쓰여질 것이다. 나는 꽤나 용맹한 이야기와 눈이 마주칠 것을 기대해본다. 그때까지 루테인을 잘 챙겨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