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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나의 사소한 슬픔’, 상상이라는 소설가의 사랑법
이유채 2023-06-14

작가 욜리(알리슨 필)가 캐리어를 끌고 가는 곳은 공항이 아닌 병원이다. 그의 병문안 대상은 “자살 충동이란 불치병에 걸린” 언니 엘프(사라 가돈)다. 욜리는 안 풀리는 원고 작업과 무명 신세, 이혼 위기와 멋대로인 딸, 무엇보다 10년 전 아버지의 자살이 남긴 트라우마를 안고서도 삶쪽으로 걸어가려는 자신과 달리 자꾸만 죽음으로 향하는 언니가 원망스럽다. 그런데도 그 마음을 헤아려보던 어느 날, 언니로부터 존엄한 죽음을 위해 자신을 스위스로 데려가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나의 사소한 슬픔>은 자살의 강력한 자장 안에서 살아오며 번민하는 인물의 복잡한 내면 풍경에 집중한다. 가족이 함께 살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아버지와 언니의 삶의 단면들을 상상하는 것으로 두 사람을 이해하려는 소설가 주인공의 노력을 간곡하게 시각화한다. 문학과 음악을 풍부하게 인용한 대사가 극의 그윽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상황에 부닥친 이들의 심정을 효과적으로 대변한다. 인물에게만 집중하게 하는 절제된 촬영과 미장센도 탁월하다. <설국열차>의 교실 칸 교사로 낯익은 알리슨 필은 남편과 자식을 잃은 엄마를 위무하는 딸과 죽음에 언니를 절대 뺏기지 않으려는 동생 역할 모두를 선명하게 연기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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