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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범죄도시’라는 프랜차이즈와 한국영화
김철홍(평론가) 2023-07-12

언론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보다 보면 가끔 해당 영화와 관련된 굿즈를 수령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굿즈의 유형은 크게 둘로 나뉜다. 첫째는 등장인물이 그려진 다양한 형태의 판촉물이고, 둘째는 영화에 등장하는 소품(의 모형)들이다. 지난해 개봉한 <범죄도시2>의 시사회에서 캐릭터 딱지를 제공했던 <범죄도시>는 올해엔 영화에 나온 아주 사소한 소품 몇 가지를 굿즈로 증정했다. 굿즈는 <범죄도시3>에서 형사 마석도(마동석)가 한번쯤 손에 쥐었던 물건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중 이 글을 통해 특별히 언급하고 싶은 두 가지는 바로 손거울과 증거 수집용 지퍼백이다. 그 둘이 어떤 측면에서 올해 첫 ‘천만 영화’ (예정)인 <범죄도시3>의 성질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손거울과 지퍼백 같은 영화

둘은 여러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선 가장 특징적인 것은 두 소품이 영화와 딱히 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거울과 지퍼백은 모두 ‘마석도의 범인 검거’라는 영화의 주요 서사에서 아무 역할을 수행하지 않으며, 동시에 이 영화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마석도라는 인물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제공하지 못한다. 심지어 이것들은 어떤 장면에서 나왔었는지 애써 떠올려봐야 기억이 날 정도로 영화에 출현하는 시간도 짧다. 손거울은 극의 초반부 마석도가 영화 내내 잘 드나들지도 않는 본부에서 대화를 나눌 때 단 한번 모습을 드러낼 뿐이고, 지퍼백은 마석도와 야쿠자 리키(아오키 무네타카)의 결투 직전에 짧게 등장한다. 말하자면 두 물건은 영화에 없어도 될 정도의 소품들이다. 그 존재의 유무는 영화의 완성도나 흥행 결과에 일말의 영향도 끼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둘은 그저 이 영화의 주요 목적인 액션 신들의 사이사이를 메우기 위한 웃음 유발 장치로 한 차례만 사용되며 그 역할을 다한다.

관계자들의 굿즈 선택이 부적절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한편으론 그 선택이 절묘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두 소품이 영화를 보는 관객을 웃게 만든 코미디의 논리 때문이다. 이 코미디가 유효한 웃음을 만들어내는 원리는 심플하다. 포인트는 지나치게 작다는 것이다. 이건 덩치가 큰 마동석의 거대한 손에 들려 있기에 강조되는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두 물건이 담으려는 것과 담을 수 있는 것 간의 차이가 커 더욱 작게 느껴진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렇게 누가 봐도 터무니없이 작은 지퍼백에 장검을 넣으라고 말하는 마석도의 대사는 그 ‘터무니없음’ 때문에 관객을 웃게 만든다. 손거울 역시 본질적으로는 같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단순한 사이즈의 차이일 뿐이지만, 이 또한 담으려는 것(마석도의 얼굴)과 담을 수 있는 것(거울의 사이즈)간의 심각한 부조화가 내재되어 있다. 결국 두 물건은 모두 무언가를 담기 위해 만들어진 사물의 목적 수행에 실패했다고 볼 수 있겠는데, 바로 이 지점이 일년 간격으로 두편 연속 천만 관객을 동원하고 있는 ‘대표 한국영화’와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범죄도시3>가 (이번에도) 실패한 것은 무엇인가. 그건 바로 영화가 한국이라는 현실을 거의 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엔 마석도 같은 비현실적인 형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이 영화의 전체적인 서사가 (강유정 평론가가 지난 기획 기사에서 지적했듯) 늘 과거를 완결 짓는 형태의 판타지였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니 <범죄도시> 시리즈는 항상 자신들이 제공하는 액션과 코미디를 관객이 순도 100%의 상태로 즐길 수 있도록, 영화를 현실과 최대한 분리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가상의 도시를 찾은 관객이 영화관 밖 현실의 범죄들과 도시를 떠올리지 못하게끔 말이다. 실제로 이상용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마약으로 인한 폭행/범죄 묘사를 생략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 바 있다. “현실의 마약 범죄가 우리의 일상 턱밑까지 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위험성”을 인지하여 “사건 묘사를 넣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실패는 사실 의도적인 실패에 가깝다. 마치 정치는 하나도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인기 연예인의 태도처럼, 그렇게 <범죄도시>는 명실상부 국민 모두가 좋아하는 거대 프랜차이즈 상품이 되었다.

그러니 ‘<범죄도시3>의 천만 관객 동원’이라는 하나의 사건이 사회적으로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이 영화는 말 그대로 터무니없이 작은 손거울, 또는 증거 채집용 지퍼백에 불과하다. 사이즈가 애초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흥행에 대해 어떤 의미를 담아내보려는 비평적 시도는, 정도가 과한 경우 영화에서처럼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어쩌면 팬데믹 사태 이후 최초의 천만 영화였던 <범죄도시2>의 경우까지는 나름의 유의미한 논의가 가능했을 수도 있다. 그중 이용철 평론가는 이 지면의 비평을 통해 <범죄도시2>를 ‘거울의 영화’라고 평했었다. 요지는 <범죄도시2>가 통한 이유가 영화가 현실과 거울처럼 닮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2편의 흥행이 한국영화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현재에는, 그 거울이 정말로 귀엽게밖에 보이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 프랜차이즈 신제품의 흥행 대박을 보며 사회적인 측면에서의 성공 요인을 따져보는 건, 이제 더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는 것이다.

먹자골목과 골목 상권의 기로에서

한국영화는 이제 먹자골목화될 것이냐 아니면 골목 상권의 길을 갈 것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먹자골목과 골목 상권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나라 요식 업계에서 가장 성공한 프랜차이즈 사업가인 더본코리아 대표 백종원씨가 2018년 산업통상자원중벤처기업위원회의 국정감사 자리에서 언급한 것으로 화제가 됐었다. 더본코리아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의원의 질문에, 먹자골목과 골목 상권간의 명확한 구분이 필요하다는 답변을 했던 것이다.

백종원만큼 자신의 브랜드를 확고히 다지는 데 성공한 제작자 마동석의 프랜차이즈 영화에 맞서 다른 한국영화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 속해 있는 곳이 어떤 상태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영화는 먹자골목인가, 골목 상권인가. 골목 상권이라면 <범죄도시>를 제외한 한국영화는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고, 먹자골목이라면 한국영화는 계속해서 자유 경쟁에 나서야 할 것이다. <범죄도시> 시리즈를 한국영화의 성장을 방해하는 악덕 프랜차이즈 기업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범죄도시3>의 장태수(이범수)처럼 “실적”을 운운하며 모범 사례로 따라갈 것인가. 그러다가 앞으로 나올 모든 한국영화들이 <범죄도시>처럼 현실과 완전히 분리된 판타지의 세계로만 관객을 안내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분명한 건 <범죄도시3>가 맛있었다고 사람들이 자연스레 이 골목을 다시 찾을 거라고 생각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이제 정말 뭔가 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이 골목 자체가 사라지는 날이 도래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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