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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편집장] 경각심을 가지고
이주현 2023-09-15

뒤늦게 극사실주의 데이트 프로그램 <나는 SOLO>를 보기 시작했다. 화제의 16기 출연자들 방송분을 정주행하는데 듣던 대로 솔로나라에서 헤어 나오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8월28일 통계청이 발표한 ‘사회조사로 살펴본 청년의 의식변화’에 따르면 19∼34살 청년 중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36.4%, 즉 3명 중 1명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비혼 1인가구 역시 증가하고 있는 시대에 ‘결혼을 간절히 원하는 솔로들이 모여 사랑을 찾는 프로그램’이 매주 뜨겁게 화제를 모으고 있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연애 예능의 탈을 쓰고 있지만 문화인류학에 가까운 관찰 프로그램 <나는 SOLO>에서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단어는 ‘경각심’이다. 경각심의 사전적 정의는 ‘정신을 차리고 주의 깊게 살피어 경계하는 마음’인데, 이 단어를 사용할 때 주의할 점은 스스로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경각심이 불러온 나비효과 혹은 가짜뉴스가 불러온 파국의 교훈은 (적어도 솔로나라에선) 타인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각자도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경각심과 각자도생이라는 단어를 기억한 채 솔로나라에서 영화나라로 점프컷을 해보자.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2024년도 예산안을 보면 영화 제작, 지역영화, 영화제 지원 등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주요 지원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되거나 크게 축소될 예정이다. 지역영화 지원 사업은 전액 삭감, 영화제 지원 예산은 50% 삭감된다. 영진위와 문체부는 왜 해당 지원 사업의 예산을 줄일 수밖에 없었는지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예산안 책정 과정에서 영화계의 의견도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영화인들의 반발이 거센 것은 당연하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얘기한 것처럼 “지역영화, 국내외 영화제 모두 정부 감사에서 특별한 지적사항이 없었다. 그런데도 예산을 삭감한다면 정부가 이유를 명확히 내놓아야” 마땅하다.

지역영화 사업 전면 폐지라는 충격적인 사태를 맞아 전국 11개 지역 99개 영화단체는 9월12일 이에 항의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9월13일엔 (가칭)국내개최영화제연대의 이름으로 총 50개 영화제가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관련 사업의 지원 예산을 복구하고, 논의 테이블을 구성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씨네21>은 강원, 대구, 인천, 전북의 독립영화협회 대표 4인(김진유, 최창환, 이란희, 박영완 감독)과 (가칭)국내개최영화제연대를 구성한 영화제 관계자 3인(김동현, 김조광수, 조지훈)을 만나 지역영화 및 영화제의 역할과 존재 이유에 대해 들었다.

만약 이대로 예산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2024년의 한국영화계는 냉랭한 각자도생의 논리”(이우빈 기자)로 흉흉할지 모른다. 지역영화가 사라지고 작지만 의미 있는 영화제들이 사라지는 건 영화인들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의 문화 향유권과 관계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신을 차리고 주의 깊게 살피어 경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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