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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곳에선 누구든 ‘빌런’이 될 수 있다, <나는 SOLO> 남규홍 PD
임수연 사진 최성열 2023-09-21

혹자는 <나는 SOLO>가 연애 예능 프로그램이 아닌 인간 군상을 관찰하는 다큐멘터리라거나 사회인류학 실험이라고들 표현한다. 서로 다른 유형의 인간들이 모였을 때 5박6일 동안 부대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온갖 사건을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다 평소 어떤 언행을 하면 외부에 부정적으로 비쳐질지 ‘거울 치료’를 받았다고 고백하는 시청자들도 적지 않다. 데이팅 프로그램 범람의 시대에 <나는 SOLO>는 어떻게 다른 프로그램과 차별화된 위치를 점하게 됐을까. <나는 SOLO> 패널진 녹화 및 한 기수가 끝날 때마다 진행되는 라이브 방송, 출연자 인터뷰, <나는 SOLO, 그 후 사랑은 계속된다>를 모두 촬영하는 촌장 엔터테인먼트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남규홍 PD를 만났다.

- 최근 방영 중인 <나는 SOLO> 16기 반응이 뜨겁다.

= 첫 번째 돌싱 특집이었던 10기가 총 10주 동안 방송됐는데 이번에 그 기록을 깨게 됐다. 16기는 총 11주 동안 편성이 예정돼 있다.

- 이번 기수는 매주 출연자들이 돌아가며 사과문을 쓰는 것으로도 화제가 됐다.

= 누가 어떤 말을 했느냐에 따라 나중에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져 있고, 정작 당사자는 기억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결과가 틀어진다. 본인들도 모르는 일을 방송을 통해 확인하게 되기 때문에 사후적으로 사과문을 올리게 되는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 대다수는 숨어 있고 소수의 악플러는 두드러지기 때문에 사과할 일이 아닌데도 대외적으로 사과하는 경우도 있다. 당사자들끼리 풀어야 할 일이 크게 번지기도 한다. 16기는 유독 그런 경향이 강하다. 아마 몇번의 사건이 더 진행될 것이다.

- 제작진 입장에서 출연자를 보호할 방법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겠다.

= 나름대로 순화하면서 적정선에서 만든 부분도 있다. 제작진으로선 악플러들이 밉긴 하지만 그 사람들 비위를 맞춰가며 방송을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 잘라내고 순하게만 만들면 감정 흐름이 흐트러지고 이른바 ‘무플’ 방송이 될 수 있다. PD가 출연자들과 따로 소통하지는 않는다. 편집자가 사사롭게 교류하면 영향을 받아서 방송이 공정해질 수가 없다. 주로 작가들이 출연자들과 대화한다. 악플은 무시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좋다, 여러분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언젠가 지나간다는 말로 위로하고 있다.

- 어제까지 촬영했다는 팀은 몇 번째 기수인가. 대체로 녹화 주기는 어떻게 되는가.

= 18기 촬영을 마쳤다. 촬영은 두달에 한번 정도 5박6일 동안 나간다. 한 기수에 적게는 6주, 많게는 10주로 평균 8주 정도의 분량이 나온다. 편집은 2~3개월 정도 잡고 중간중간 스튜디오 녹화를 진행한다. 편집은 두팀으로 나눠서 한팀이 편집할 동안 다른 팀은 촬영을 나가는 식으로 교대로 진행한다.

- 솔로 나라에 들어올 참가자들은 어떻게 캐스팅하나.

= 별도의 섭외 없이 전부 자발적으로 지원을 받아 선정한다. 우리쪽에서 섭외할 경우 제작진이 을의 입장이 되는데 참여 의지가 있는 분들의 신청을 받으면 방송의 진정성이 훨씬 커진다. 보통 기수당 사람이 12명인데 5배수나 많게는 10배수의 지원자만 살펴봐도 충분히 좋은 구성을 만들 수 있다. 물리적인 시간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지원서 중 적절한 분들을 먼저 추린 후 미팅을 잡는다. 인터뷰는 한 사람당 30분씩 한다. 사실 이것도 엄청나게 강도 높은 노동이다. 그렇게 만난 4~5명 중 1명 정도가 솔로 나라에 오게 된다고 보면 된다. 연예인 지망생이나 다른 목적이 있는 분들은 일단 배제한다. 자영업자 중에서도 훌륭한 분들이 많지만 그들도 홍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아깝게 커트하는 경우가 있다. 제작진 입장에서는 전문직이나 회사원 등 직업이 분명한 분들이 가장 좋다. 또 이성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을 본다. 남자든 여자든 외모가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길거리에서 마주칠 법한 평범한 분들이 많다. 종합적인 매력을 고려해 출연자를 선정한다.

- 기수마다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사람이 반드시 등장한다. “<나는 SOLO> PD는 인복이 많다”고 하는 반응은 어떻게 생각하나.

= 학창 시절을 생각해보라. 반 아이들 50명 중 한두명은 반드시 걸출한 친구들이다. 공부든 운동이든 다른 특기가 있든 특성화된 부분이 있다. 12명의 출연자를 고르면 그중 한두명은 반드시 걸출한 캐릭터가 탄생한다. 내가 의식적으로 특이한 사람을 찾는 것도 아니다. 방송 출연하기 전에는 다들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16기 상철도 원래 보통의 무난한 분이었는데 <나는 SOLO>를 보는 시청자들은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나. 다양한 인간들이 모여 관계를 맺고 사건이 터지고 농축된 감정이 폭발하고 그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표현되면 시청자가 보기에 독특한 캐릭터가 만들어질 수 있다. 누구든 <나는 SOLO> 같은 특수한 상황에 놓이면 이른바 ‘빌런’이 될 수 있다.

- 어떤 인물들이 부딪칠 때 재미있는 그림이 나올지 인물 조합도 고려 대상이 되는가.

= 정교하게 구성하지는 않는다. 다양한 매력을 가진 12개의 캐릭터가 만나 교류하도록 일단 놔두면 계산적으로 접근하지 않아도 어떤 사건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명색이 데이팅 프로그램인데 우정만 쌓고 있다거나 프로그램의 본질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때는 선택 방법을 바꾸는 식으로 내용을 바꿔 진행한다. 이를테면 솔로남들이 “나 외로워!”를 크게 외치며 데이트 상대를 찾는 것도 나름의 강력한 표현을 하도록 제작진이 푸시하는 거다.

- <>이 ‘남자 1호’, ‘여자 1호’라는 호칭을 부여해 원래 이름을 지워버린 것처럼 <나는 SOLO> 역시 영수, 영숙, 영호, 영자, 광수, 옥순, 영식, 순자, 상철, 현숙, 영철, 정숙 등 본명과 다른 이름을 부여한다. <스트레인저>는 미스터 리, 미스 김 등 성씨로 참가자들을 구분했다.

= 이곳에서는 익명화 작업이 무조건 필요하다. 방송에 본명이 노출되면 피곤한 일이 많이 생긴다. 그리고 학교 다닐 때 반 아이들 이름을 모두 외울 때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본명을 썼다면 5박6일 동안 서로 이름을 외우다가 끝났을 것이다. 반면 프로그램에 걸쳐 계속 반복되는 이름이 나오면 참가자도 시청자들도 금방 그들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다. 또 현장에서는 스탭들과 출연자들을 차별화하는 효과도 있다. 처음 봤을 땐 ‘저게 뭐지?’ 싶을 수 있지만 이를 반복하다 보면 “<나는 SOLO>는 영수, 영숙이가 나오는 방송”이라는 인식이 박히면서 프로그램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는다.

- 지금 70~80대가 태어날 당시 가장 인기 있던 이름들을 가져온 이유가 있나. 출연진의 나이대에 맞출 수도 있었을 텐데.

= 그렇게 하면 실제 본명과 헷갈릴 수 있다. 반면 옛날 이름을 쓰면 구분이 확 된다. 과거 한국에서는 첫째는 영수, 셋째는 영식이라고 이름을 짓던 시대가 있었다. 남자답고 몸이 우락부락한 사람은 영철의 이미지다. 그래서 프로그램 초반에는 그 사람과 직관적으로 어울리는 이름을 매칭시켜줬다. 지금은 해당 이름의 캐릭터가 하나로 굳어질까봐 의도적으로 섞기도 한다. 이를테면 광수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일부러 광수라는 이름을 부여할 때도 있다.

- <>이나 <스트레인저>에서는 남녀 성비를 7:5로 구성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6:6으로 고정했다. 또 단순 연애가 아닌 ‘결혼을 간절히 원하는 솔로 남녀’로 대상자를 좁히게 된 맥락은 무엇인가.

= 시대가 바뀌면서 성차별적인 요소로 비칠 수 있는 부분을 시청자가 용납하지 않게 됐다. <>에서 <나는 SOLO>까지 지난 10여년간 사회적 변화는 방송이 수용해야 한다. <> 때는 남자들이 프러포즈를 적극적으로 주도했는데 지금은 굳이 남녀의 역할을 구분하지 않아도 된다. 여자들도 자신의 선호도를 선명하게 표현한다. 디지털 감성이 강화되면서 결정도 빠르고 명쾌해졌다. 사실 연애만 하고 싶은 20대 청춘들이 나오는 데이팅 프로그램은 싱겁다고 생각한다. 목표가 있고 목표를 이루어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어야 진정성이 생기기 때문에 결혼 적령기의 출연자를 대상으로 하는 게 맞다. <> 때만 해도 30살 전후 출연자가 많았는데 지금은 남자는 30대 중후반, 여자는 30대 초중반이 대부분이다. 덕분에 프로그램 초반에는 실제 결혼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았다. 5박6일 동안 솔로나라에서 가진 경험을 공유한 사람은 사회에 나가서도 굉장히 끈끈한 관계를 유지한다. 일반적인 연애보다 무척 빠른 속도로 연인 관계로 발전하고 그 감정도 강력하다.

- <>은 한 기수가 2주 동안 방송된 반면 <나는 SOLO>는 적게는 6주, 많게는 11주까지 전파를 탄다.

= <> 자체가 굉장히 좋은 포맷의 프로그램이다. 한번 죽었던 방송을 다시 살리는 케이스는 거의 없는데 내가 기획했던 작품이기 때문에 <나는 SOLO>로 교묘하게 부활시켰다. 때문에 전개 방식의 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본질은 같다. <>의 경우 형식은 정교하고 복잡하지만 내용은 단순했다. 천지창조를 생각하며 7일 동안 꼬박 찍었는데(웃음), 60분씩 단 두편에 담아내야 했다. 그래서 방송에 쓰지 못하고 버린 분량이 많다. 반면 <나는 SOLO>는 같은 유니폼 등의 형식을 걷어내고 기능을 단순화한 후 깊숙이 들어갔다. 5박6일 동안 찍고 80분 분량으로 8주 정도 방송을 만들다 보니 심리 묘사가 훨씬 풍부해지고 내용도 더 디테일해진다. 하룻밤 사이에 벌어진 일이 한 회차를 채울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 방송이 끝날 때쯤 레이디 가가의 목소리가 들리면 데프콘이 “아직 끝날 때가 아니다”라며 아쉬워한다. 연애 프로그램의 엔딩곡이 레이디 가가의 <Poker Face>인 이유는 무엇인가.

= <스트레인저> 때도 같은 곡이었다. 나상원 PD가 편집 때 그 곡을 깔았는데 잘 어울렸다. 그래서 계속 <Poker Face>로 갔다. <나는 SOLO>도 그 연속선상에 있는 거다. 반복되는 요소가 있으면 시청자들이 거기에 중독되기 마련이다.

- 데프콘, 이이경, 송해나 세 패널 조합은 어떻게 완성된 것인가. 이들의 섭외 기준이 있었나.

= 너무 많은 방송에 나오는 분들, 특히 연애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들은 배제했다. 그런 분들이 출연하면 ‘데프콘 하면 <나는 SOLO>’ 같은 상징성이 안 생긴다. 그런데 내가 계산적으로 섭외를 하는 사람은 아니다. 일을 할 때 ‘신은 내 편에 있어서 날 도와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임한다. 왜냐하면 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그냥 믿고 가는 거다. 그러면 잘된다. <나는 SOLO>도 그냥 스케줄이 된다고 하는 사람과 함께했다. 초반 패널이었던 전효성씨가 나갔을 때도 후보 2~3명 정도 중 후속 패널을 물색했고 송해나씨가 스케줄이 된다고 해서 하게 됐는데 보배처럼 딱 맞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 뽀샤시한 보정과 근사한 데이트 장소를 찾는 데 힘을 주는 여타 데이팅 프로그램과 달리 <나는 SOLO>는 날것의 화면을 추구한다. 그래야 ‘진짜’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 편인가.

= 무언가 꾸미고 포장하는 건 우리 제작진과 안 맞는다. 두드러기가 날 것 같다. 교양 다큐멘터리 PD의 정직함을 갖고 프로그램을 만들다 보니 예능팀과는 제작 방식이 조금 다르다. 있는 그대로의 화면을 찍는 작업을 너무 오랫동안 해와서 이 방식이 익숙한 것뿐이다. <나는 한국인이다- 출세만세>의 완장촌에서 처음 테스트했고, 3년 동안 <>을 만들면서 발견한 노하우들이 있다. <> 때는 방송에 나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출연자들의 감정을 이어가기 위해 하루를 꼬박 버려가며 촬영하기도 했다. 이성에게 선택받지 못하면 혼자 자장면을 먹는 ‘고독 정식’ 같은 장치는 너무 우스꽝스럽다며 오히려 다른 예능 PD들은 감히 시도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다큐멘터리가 가진 힘을 믿고 도전할 수 있다. 인위적인 리허설도 하지 않는다. 정답을 알고 찍으면 출연자는 100% 망가지고 제작진도 실감나게 찍을 수가 없다. 나중에는 시청자들이 우리 같은 방식을 더 좋아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밀고 나가고 있다. 예능의 끝은 다큐멘터리라는 말도 있지 않나. 제작진의 진정성이 출연자에게 전해지고, 출연자들의 진정성이 시청자들에게도 전해질 것이라는 마인드로 만들고 있다. 또 기수가 이어지면서 새로운 참가자들이 앞 기수의 행동을 학습할 수 있다. 선례를 따라가거나 혹은 뛰어넘으려고 하다 보면 체계적인 시스템이 된다. 다만 변화가 없으면 망한다. 제작진은 이 안에서 가능한 변화를 주어야 한다.

- 방송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준 변화가 있을까.

= 이름을 모두 바꾼다거나 성비를 파격적으로 바꾼다거나 너무 큰 변화를 주면 시청자들이 당황하고 외면할 수 있다. 자극적이고 혁신적인 개혁은 프로그램이 망했을 때나 하는 것이다. 항상 일관된 구조로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것이 좋다. 그러면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새로운 출연자들을 그냥 내버려두기만 해도 방송에 담을 만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에 부분적인 아이디어를 첨가한다. 이를테면 웨딩드레스와 슈트를 입고 시간을 보내게 한다든지 비대면 데이트나 묵언 데이트를 하도록 하는 변주들이 있었다. 그렇게 프로그램은 발전하고 진화할 수 있다.

- 가성비가 좋은 프로그램이라고들 한다. 출연료가 100만원이라고 들었다. 솔로나라는 대체로 평범한 펜션으로 설정돼 있고 패널 녹화도 스튜디오 대신 제작사 사무실에서 진행한다.

= 기본 출연료를 100만원으로 책정해놓고 성과에 따라 추가 보너스를 준다는 방침이다. 돈을 너무 많이 주면 잿밥에 관심 있는 분들이 끼어들 수 있다. 스튜디오를 빌려서 한번 녹화를 해봤다가 너무 고생한 적이 있어서 그냥 사무실에서 진행하게 됐다. 따로 스튜디오를 빌린다고 방송 집중도가 더 높아지는 것도 아닌데 굳이 세트에 돈을 들일 필요가 없다. 데이트 장소도 참가자들의 선택이 끝난 후 연락을 취해서 촬영 가능 여부를 묻고 섭외한다. 슈퍼 데이트는 제작진이 비용을 지불하지만 그외에는 각자 돈을 집행한다. 각자 데이트 할 때 스타일이 드러나야 방송에 똑같은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이전에 세팅을 잘해놨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방송을 만들 수 있다. 5박6일 동안 촬영장에 머물며 PD와 카메라맨들이 촬영할 땐 거의 전쟁터와 흡사하다.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치열하게 일하다가 돌아오면 흩어져서 각자 영역의 일을 한다. 2주에 한번씩 촬영을 나갔던 <> 때는 더 혹독한 환경이었다. 3년 동안 거의 하루도 쉬지 않았고 명절 때도 현장을 나갔고 편집하다 새벽에 집에 갔다. 제작비가 높지는 않지만 순식간에 뚝딱 만들어내는 방송들은 아니다. 각 분야의 스탭들이 최선을 다해 열심히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 <나는 SOLO>는 연애 프로그램이 아니라 인간 군상을 관찰하는 다큐멘터리라거나 사회인류학 실험에 가깝다는 반응은 어떻게 생각하나.

= 틀린 말은 아니다. SBS 스페셜 <나는 한국인이다–출세 만세>가 권력을 다뤘고, <나는 한국인이다–짝>이 사랑의 시작부터 종결까지 과정을 3부작에 나눠 담았다. 기회가 더 주어졌다면 식욕, 성욕, 수면욕 등 인간의 오욕칠정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 본성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하며 만든 다큐멘터리가 <나는 SOLO>의 출발점이 됐다. TV프로그램을 만들 때 단순히 시간 낭비를 하면서 소비하기보다는 뭔가 얻어가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카메라 앞에서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감정과 출연자 각자의 인생이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뭉쳐진다. 단순히 짝을 찾으면 박수 쳐주고 끝나는 방송이 아니라 짝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객관적으로 관찰하면서 자신을 대입하고 되돌아보기도 한다면 시청자들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또 부모가 만난 과정을 디테일하게 알고 있는 자식이 지구상에 얼마나 될까 궁금해서 만든 방송이기도 하다. <나는 SOLO>를 통해 결혼한 부부의 자식은 나중에 엄마와 아빠가 어떻게 만났는지 방송분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단순한 개인사가 아닌 인류사, 사랑학, 인간 생태학, 철학, 사회학, 심리학이 농축된 콘텐츠로 확장될 수 있다. 매 기수 12명씩 그들이 만들어가는 사랑 생태학의 기록을 토대로 학문적 분석도 할 수 있다. 이건 대학교수들이 조교들을 시켜서 설문 조사를 돌리는 것으로는 얻을 수 없는 데이터라고 본다.

- 술자리와 남녀 애정사를 통해 인간을 살펴본다는 측면에서 홍상수 영화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다. 혹시 홍상수 감독의 작품을 좋아하나.

= 좋아한다. 최근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봤다. 홍상수 감독은 촬영 당일 아침에 시나리오를 써가면서 영화를 만든다는데 우리도 즉석에서 바꾸는 게 많다. (웃음) 홍상수 감독이 영화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바와 내가 <나는 SOLO>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은 본질적으로 같은 듯하다.

- 혹시 내 인생의 영화가 있나.

= 인생영화가 있을 만큼 영화를 몰두해서 보지는 않는다. 훌륭한 영화들이 워낙 많아서 무슨 작품을 언급해도 다 좋다고 할 것 같다. (웃음)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다. CG를 쓰지 않고 그렇게 사실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다니 놀랍다. 최근에도 몇번 다시 봤다. 볼 때마다 신기하다.

- 원래 SBS 시사교양국 PD로 오래 일했다. <>도 SBS 시사교양국 PD 시절에 연출한 방송이었다.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후 PD가 된 과정이 궁금하다.

= 재능이 없어서 사법고시를 떨어지는 게 당연했다. 시험 성적대로 대충 대학에 들어갔는데 별로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방황했다. 나는 최고의 영화 리스트를 뽑으라고 하면 제목을 잘 대지 못하고 줄거리 요약도 잘 못한다. 30~40대 때는 1년에 책을 200권씩 읽었는데 그걸 다 기억하지 못한다. 그만큼 생각이 파편화돼 있다. 대신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들을 연결해 직관적으로 아이템을 기획하는 일은 할 수 있다. 그래서 법 공부보다는 PD 일이 적성에 맞다고 판단했다.

- <그것이 알고 싶다>도 2년 동안 연출했더라. 어떤 에피소드들을 맡았나.

= 6개 팀이 돌아가면서 연출했는데 개인적인 신념상 살인 사건은 한번도 맡지 않았다. ‘조용한 가족-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는 비극을 부른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교실 - 선생님들은 왜 침묵하는가’처럼 지금 중요한 사회문제들을 주로 맡았다.

- 이후 연출한 <인터뷰 게임>은 고민을 가진 출연자가 직접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정해 직접 인터뷰하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었다. 이 역시 인간에 대한 탐구와 연결된다.

= 다른 인간의 고민을 다루기 위해 기자나 PD들이 나서서 대신 취재하지 않나. 본인이 직접 하면 되지 않느냐는 역발상에서 시작한 방송이다. 포맷이나 주제 면에서 무척 가까운 프로그램이었다. 어떤 측면에서는 <>보다 훨씬 훌륭한 프로그램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인간 본성을 계속 다루고 있다고 해서 내가 엄청난 통찰을 얻은 것은 아니다. 나는 동물보다는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 더 중요해서 SBS에 있을 때 <동물농장>도 거의 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자연 다큐멘터리보다 인간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내겐 더 맞아서 자주 찍은 것뿐이다.

- <발모의 기술> 등을 발간한 출판사 대표이기도 하다. 같은 출판사에서 최근 <나는 SOLO>에 등장하는 10초 남짓의 짧은 글들을 모은 <사랑을 보았다>를 냈다. 어쩌다가 출판 일도 하게 됐나.

= 10년 동안 교류했던 한의사 선생님의 책을 직접 내드리고 싶다는 생각에 내가 직접 출판사를 만들었다. 그런데 <발모의 기술> 이후에 아무 책도 내놓지 않으면 단 한권만 낸 출판사로 사장되기 좋다. 그래서 이번에 <사랑을 보았다>를 낸 거다.

- 2019년 촌장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 SBS를 퇴사하고 중국으로 넘어갔는데 사드 때문에 예정보다 일찍 돌아오게 됐다. 어쨌든 급하게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했다. 이곳 방송회관에 다른 파트너 제작사들이 있어서 사무실을 마련하고 바로 회사를 차렸다. 가장 먼저 만든 프로그램은 TV조선에서 방영한 부동산 프로그램 <이사야사>다. <구해줘! 홈즈>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는데 우리는 단기간에 종영하고 <구해줘! 홈즈>는 아직까지 롱런하고 있다. 회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게 <>의 포맷으로 만든 <스트레인저>였다. 1기부터 걸출한 친구가 나와서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안타깝게도 내부 사정으로 종영하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가 추구하던 포맷이 <나는 SOLO>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게 됐다.

- <> <스트레인저> <나는 SOLO>까지 거의 6년 동안 연애 프로그램을 만든 셈이다. 그동안 쌓인 데이터를 토대로 누군가는 학술 논문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웃음)

= <>을 70번 가까이, <스트레인저>는 3번, <나는 SOLO>는 16기까지 왔으니까 거의 90개 가까이 된다. 이것이 일종의 사회 실험이면 정말 많은 영상 데이터가 쌓인 것이다. 우리가 여력이 있다면 학자들과 공동 연구를 진행해서 훌륭한 학술서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웃음)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연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매달려서 하나의 산업이 만들어졌다고 하는 것처럼, 학문별 연구를 집대성할 만한 자료도 언젠가 쌓일 수 있지 않을까. 의도한 것은 아닌데 반복적으로 촬영분이 쌓이다 보니 왜곡 없는 거대한 서사시가 만들어졌다. 그만큼 정직하고 사실적으로 만들어온 방송이다. 2010년대 초반 한국인의 사랑을 보려면 <>을, 2023년의 사랑을 보려면 <나는 SOLO>를 보라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