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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소년시대’ 이명우 감독, 꿈은 운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이루는 것
이자연 사진 백종헌 2023-12-22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시대>는 안 맞고 사는 게 목표인 병태(임시완)가 어쩌다 부여농고의 짱이 된 좌충우돌 소년기를 다룬다. 1989년 충청남도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그 시절의 입말을 생명력 있게 재현하면서 젊은 세대에는 레트로 베이스의 즐거움을, 병태 또래 세대에는 과거를 향한 노스탤지어를 이끌어낸다. 우스꽝스러운 5:5 가르마를 장착한 배우 임시완이 능청스럽게 “그러면 다음에 키스 혀~” 하는 장면을 완성해낼 거라고 누가 상상했을까. 이 세계관의 싸움짱 흑거미 지영(이선빈)부터 병태의 거짓말을 아슬아슬하게 조여오는 진짜 아산백호 정경태(이시우), 어수룩한 10대 청소년들의 혈투기를 현실처럼 전환시킨 부여농고 학생들까지 개성 넘치는 모든 이가 <소년시대>의 DNA다. 드라마 <열혈사제> <편의점 샛별이> 등으로 유머의 완급 조절을 유려하게 펼쳐온 이명우 PD를 만났다.

- <소년시대>는 처음부터 안전한 흥행을 담보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출연배우 대부분이 신인이고, 대본을 쓴 작가도 <소년시대>가 첫 시리즈다. 유통 플랫폼 또한 공룡 OTT가 아닌 상황이었는데 그럼에도 <소년시대>였던 이유는 무엇인가.

= 간단하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에 느꼈던 감정을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이란 게 그렇지 않나. 살면서 고민과 갈등이 가장 많지만 친구도 가장 많은 시절이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갈피조차 잡기 힘든 질풍노도 시기를 대중성 있게 그려보고 싶었다. 물론 고민도 컸다. 남성 시청자가 열광하면서 볼 거라는 데는 자신이 있었다. <열혈사제>를 통해 어떤 코미디 코드가 그들에게 유효한지 학습한 덕이다. 그렇다면 시청자의 절반인 여성을 어떻게 아우를 수 있을까. 그게 주요한 맹점이었다. 그래서 남고생이 등장하지만 남자 이야기로 가면 안된다고, 여성 시청자들도 자신을 이입하거나 선망감을 느낄 만한 인물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소피 마르소 같지만 단단한 선화(강혜원)와 세계관 최강자 흑거미 지영이 탄생했다. 남자들의 성장담이라기보다 젊은이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두려 했다.

- 지영 캐릭터 설정이 눈에 띈다. 성장물에서 싸움을 잘하고 싶은 소년은 대개 재야의 고수를 찾아가거나 자신이 몰랐던 힘을 발휘하는데, 병태는 같은 집에 사는 흑거미 지영에게 재능 기부를 받는다.

= 극 중에도 이런 대사가 나온다. “지영이가 유명한 흑거미라는 걸 모든 사람이 아는데 엄마 아빠와 본인만 몰라. (웃음)” 거기서 아이러니를 주고 싶었다. 모든 사람이 지영을 싸움짱 흑거미라고 인식하는데 정작 자기는 모르는. 근데 이 친구는 단순히 싸움만 잘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것을 넘어서 의협심 강하고 괴롭힘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싸울 줄 안다. 절대 불의를 못 참는다. 일부러 남자 캐릭터 중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이러한 성향을 부여하지 않았다. 흑거미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어도 그의 존재만으로 극 전체의 균형이 맞아떨어지는 이유다.

- <소년시대>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짱이 되고 싶은 도토리의 이야기’인데. 콘텐츠로서 이런 이야기가 어떤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하나.

= 사실 <소년시대>가 10대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다소 폭력적이고 어른스럽다. <소년시대>는 그 시절, 그 나이대의 남자아이들이 갖고 있던 로망을 건드린다. ‘어디 가서 안 맞았으면 좋겠네’에서 ‘어깨 펴고 살고 싶다, 장악하고 싶다’는 욕망까지. 이건 단순히 힘의 논리가 아니라 리더가 되고 싶다는 바람에 가깝다. 그래서 비슷한 바람을 가져본 시청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병태를 응원하게 된다. 병태의 거짓말이 들키지 않길 바라며 조마조마해하기도 하고, 더 나은 행운이 찾아오길 바라기도 한다. 실제로 병태는 약자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학생회장 후보로 꼽혔을 때도 “너희들이 괴롭힘 받지 않고 공부만 할 수 있게 해줄” 거라는 공약을 내세운다. 이런 철학을 갖고 행동하는 리더들이 현실에도 필요하다. 하지만 <소년시대>가 궁극적으로 달려가야 하는 방향은 그쪽이 아니다. 운 좋게 얻은 힘으로 꿈을 이루는 게 아니라, 진짜 자기 힘으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 거기에 방점을 찍고 있다. 그것만이 진정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실질적인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 우직하고 차분한 역할 혹은 섬뜩한 악역을 맡아온 임시완에게서 어떻게 코미디의 가능성을 발견했나.

= 제일 어려운 질문이다. (웃음) 임시완 배우를 실제로 만나보면 엄청나게 진지하다. 무엇이든 논리적으로 스스로 납득해야 안심하고 움직이는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그가 지닌 진중함과 캐릭터에 대한 깊은 이해도를 믿었다. 코믹 연기는 웃기는 순간 망한다. 다른 사람을 웃기기 위해 중요한 건 웃긴 행동이 아니라 그 본연의 캐릭터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임시완 배우에게도 장병태로만 살아주면 된다고 얘기했다. 병태는 병태대로만 살아갈 뿐인데 상황이 자연스럽게 웃기게 흘러간다. 임시완 배우가 그 지점을 본능적으로 잘 낚아채줬다.

- 많은 시청자의 호응과 관심을 받으며 5주가 짧고 굵게 흘러갔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본다면.

= 여기저기서 <소년시대> 이야기가 들려올 때 얼떨떨했다. 이 작품은 캐스팅에 가장 큰 공을 들였다. 부여농고의 주요한 역할을 신인배우들이 안정적으로 연기해줬다. 낯선 배우가 나오면 시청자는 어색함을 느끼고, 연출자는 걱정이 앞서는데 그 모든 게 잘 정착됐다. 배우들이 이전에 했던 배역의 이미지가 남지 않은 상태에서 그 캐릭터로만 받아들여지길 바랐다. 마치 흰 도화지처럼. 그게 잘 적중한 것 같아서 기쁘다. 아쉬움을 꼽자면… 20부작을 할걸 그랬나? (웃음) 현재 시즌2나 스핀오프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다. 흑거미의 이야기나 친구 관계 등 다양한 활로로 세계관이 확장될 수 있도록 처음부터 설계해놨다. 너무 늦지 않게 시청자들을 다시 만나면 좋겠다. 너무 오래 기다리면 화나니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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