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이런 사람이다. 정수(송선미)는 한때 인기 많은 배우였다. 12년 만에 복귀해서 얼마 전 독립영화 한편을 찍었다. 2년 전에 이혼했고 현재는 11살 딸과 강아지 한 마리와 산다. 학원에서 연기 수업도 듣는다. 담배를 즐겨 피우고 술을 좋아한다. 여기까지가 그녀를 수식하는 사실들이다. 그런 그녀가 지금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위해 독일식 식당에 앉아 있다. 이 하루의 인터뷰는 그 사실들을 넘어, 그녀에 대한 어떤 진실을 보여줄 수 있을까.
홍상수의 34번째 영화 <그녀가 돌아온 날>은 소제목 없이 나뉜 다섯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다섯개의 장이 배우 정수를 중심으로 맞물려 각 장이 끝난 뒤에도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이 세계의 구조는 선형적인 시간성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구형의 인상을 준다. 이는 홍상수 영화의 인장으로 일컬어지나 근작들에서는 한결 희미해진 ‘반복과 차이’의 운동성이 한 사람의 세부를 발견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작용한다는 인상과도 연관될 것이다. 이 영화의 구조는 단출해 보여도 높은 밀도로 호흡한다.
인터뷰로 진행되는 세개의 장에서 기자들은 정수의 사생활에 대한 예상 가능한 질문을 던지고 말미에는 하나같이 젊은이들에게 해줄 조언 한마디를 요청한다. 단절 없이 길게 이어지는 인터뷰 장면들은 기자의 뒤통수와 정수의 얼굴을 주시하는 화면구도를 견지하며, 정수에게 주어진 유사한 물음이 그 순간의 공기, 뉘앙스, 맥락, 질문자의 기질과 화법 등에 따라 어떻게 다른 말들과 감정을 낳고 이야기의 방향을 전환하는지 세심히 응시한다. 정수는 기자들의 물음에 날 선 반문을 던지거나 특별한 호감을 표하기도 하지만, 세번의 인터뷰는 그들의 태도를 판단하려는 설정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유동적인 반응들만으로 한 사람의 구체성이 드러나는 과정을 살피기 위한 것이다. 한편 연기학원에서 진행되는 남은 두개의 장은 앞선 인터뷰들이 정수의 몸과 마음에 새긴 기억을 이번에는 온전히 그 스스로 다시 써서 연기하게 한다.
다섯개의 장 중 어느 하나가 정수의 진실에 더 근접한다고 말하기는 애매하다. 마지막 장에서 정수가 연기 연습으로 자신을 재현 혹은 재연한 대목이 앞선 인터뷰에서보다 진짜 그에게 더 가까운 모습이라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정수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하나의 결론으로 모이지 않는’ 세계라고 설명하며 “그냥 그 흐름을 타고 가면 좋은데”라고 말한다. 정수는 이 ‘흐름’을 관객의 감흥을 억지로 조종하는 주류영화의 전략에 반하는 자연스러운 결이라고 여긴다. 우리도 그러한 자세로 <그녀가 돌아온 날> 속 정수의 여러 면모를 대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영화에서 그 ‘흐름’이 인터뷰의 틀, 질문과 대답이라는 질서를 전제로 발생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편안한 대화를 지향하더라도 인터뷰는 의도와 방향성이 명확한 닫힌 형식이다. 기자와 배우의 질의응답시간이 끝날 때까지 롱테이크로 두 사람을 고정된 구도에 두는 장면의 지속성과 완고함은 이 작품이 인터뷰의 ‘형식’을 프레임화하는 방식으로도 느껴진다. 홍상수는 인터뷰라는 형식의 제한성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장면 구성을 통해 오히려 그러한 한계 안에서 매번 다른 빛을 발굴해내는 배우 송선미의 생기를 지켜본다.
영화 속 정수 역시 규격화된 인터뷰의 뼈대, 혹은 목적과 의도를 흔들어보는 시도를 한다. 그는 답변자가 아닌 질문자가 되길 자처하거나 진부하고 관념적인 질문을 개별화하고 자기화해본다. 5장에서 정수가 지난 인터뷰들을 떠올리고 다시 느끼며 펼친 연기, 기자들을 쳐다볼 때와 달리 고개를 수그리고 종이를 들여다보던 모습, 말로 수습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침묵 등은 인터뷰를 모방한 최소의 형식 안에서 그가 확보하고 곱씹는 자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맥주가 있다. 정수는 인터뷰 중간중간 독일 맥주의 근사한 맛을 상기하며 인터뷰의 시간을 알코올로 적셔보려고 한다. 맥주의 유혹으로부터 인터뷰 형식을 사수하려는 첫 번째 기자와 알코올을 불러들일 기회를 엿보는 정수 사이에는 묘한 신경전이 엿보인다. 세 번째 기자는 가장 능숙하고 능글맞은 질문자답게 맥주를 거절하지 않고 그 맛을 칭찬하지만, 그 기운을 인터뷰 질서를 공고히 다지는 데 사용한다. 맥주를 향한 정수의 갈증에 망설임 없이 화답하는 두 번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둘은 질문자와 답변자의 경계를 지우고 술과 사람과 개와 사랑에 대해 가장 사적인 대화를 나눈다. 정수는 ‘아주 오랜만에 독립영화로 돌아온 이혼한 여배우’를 향한 세간의 호기심에 불쾌감을 표하지 않고, 그 앙상한 규정을 솔직한 고백으로 풍성하게 되돌려준다. 인터뷰를 마치고 프레임을 빠져나간 기자를 다시 화면으로 불러들여 다정하게 꼭 안아주며, 정수는 말한다. “잘 가요, 잘 살아요.” 정수는 인터뷰의 단조로운 뼈대를 자신의 흐름대로 흩트려 펼쳐내고 스스로 마무리한다.
그렇다고 <그녀가 돌아온 날>이 인터뷰의 관습적 형식을 균열하려는 본능, 맥주가 불러온 솔직함을 예찬하는 것만은 아니다. 아무리 정수가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희구한다고 해도 그의 말처럼 그 체험에 실제로 이르기는 더없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해석과 의미에서 완전히 탈피한 민낯의 순간을 기꺼이 긍정할 수 있다는 믿음은 환상인지도 모른다. 왜 아니겠는가. 정수가 뒤늦게 전화를 걸어 인터뷰 내용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하는 이는 다름 아닌 두 번째 기자다. 전화를 사이에 두고 오가는 둘의 대화 내용과 톤에는 앞선 장면에서 두 사람이 나눈 친밀감과 내밀함의 흔적이 오간 데 없다. 질문에 안착하는 대답으로 성립되는 인터뷰의 공식적 틀, 그러니까 안전한 막의 안위는 쉽게 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투적일지라도 그처럼 얼마간 인위적인 형식이 배우를, 사람을 버티게 한다는 사실 또한 이 영화는 회피하지 않는다. 인터뷰가 끝나고 기자들이 떠난 화면에 홀로 남겨진 정수의 얼굴과 육체는 어딘지 막막하고 불안하다. 그것은 최선의 언어로 자신의 일부를 선택적으로 내보이게 하던 막이 거둬진 뒤, 삶의 울퉁불퉁한 시간으로 돌아온 자의 초상인 것일까. 다소 급작스럽게 짐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기자들에게 정수는 서두르지 말라고 말한다. 그의 목소리에는 그 막의 시간을 조금 더 지연하고자 하는 미련이 밴다.
편집 없이 실시간으로 진행되던 인터뷰는 매번 감독의 침착하지만 단호한 음성이 끼어드는 순간 종료된다. 첫 번째 인터뷰 후, 식당 밖에서 담배를 피우던 정수 앞에 딱 한번 모습을 비칠 때를 제외하고 감독은 화면에 나타나지 않는다. 아니, 그때도 그는 다음 인터뷰가 시작될 시간을 상기하러 나온다. 저예산 독립영화의 조건상 감독이 배우의 인터뷰까지 챙기는 수고를 한다는 정수의 짧은 언급이 있기는 해도, 그가 정말 감독이긴 한 걸까, 의심이 들 정도다. 영화는 그에게 감독으로서는 물론이고 인물로서의 입체감을 부여하지 않는다. 정수는 기자들에게 감독에 대한 깊은 신뢰를 표현하나 정작 그가 화면 밖 감독과 주고받는 말에는 ‘영화적’인 구석이라고는 없다. 하지만 바꿔 말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세개의 장이 배우가 인터뷰라는 방식으로 자신을 상연하는 일종의 무대라고 볼 수 있다면, 프레임 밖에서 그 시간의 끝을 알리는 자를 ‘감독’이 아니라면 무엇이라고 부르겠는가. 시간이 다 됐다고 기계적으로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실은 감독이 카메라 앞에서 나지막이 내뱉는 ‘컷’ 소리와 같다. <그녀가 돌아온 날>에서 그의 역할은 생각보다 막중하다.
얼굴 없는 감독의 음성이 기이한 건 그것이 인터뷰의 시간을 멈추는 동시에 예상치 못한 삶의 시간을 열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장의 마지막 대목에는 인터뷰를 마친 정수가 식당 밖에 쪼그려 앉아 말없이 홀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등장한다. 카메라는 원피스를 늘어뜨린 채 한손에 담배를 들고 몸을 웅크린 정수를 그의 등 뒤에서 가만히 바라본다. 화면에 새겨진 그의 뒷모습에는 무엇도 가장하거나 애쓰지 않고 모든 긴장을 내려놓은 존재의 평온함이 있다. 현실의 중력을 모조리 끌어안고 땅에 뿌리를 내린 형상의 존엄함도 있다. 무엇보다도 그 신체의 굴곡진 골격에는 앞선 인터뷰의 정돈된 프레임으로는 담을 수 없을, 언어로는 모두 설명할 길 없을 삶의 무게와 공허가 실린다. 정수의 등을 마주하며 우리는 느낀다. 시선의 방향을 알 수 없는 고요한 그 등의 지평은 그것을 담은 사각의 틀을 초과하는 것만 같다. 삶은 인터뷰의 프레임보다 크다. 삶은 영화보다 크다.
정수가 이혼에 대한 말을 꺼리는 건 그저 불쾌해서가 아니라, 이별을 둘러싼 삶의 복잡다단한 맥락과 지난 시간의 궤적, 파편화된 심정을 담기에 인터뷰는 너무도 명징한 그릇이기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 장에서 담배를 피우던 정수가 화면 후경으로 걸어간 뒤에는 다리 위에서 어딘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기자의 모습이 보인다. 다음 숏에서 계단에 앉은 정수는 마치 기자를 발견한 듯 프레임 밖을 올려다보지만, 다시 이어지는 기자의 숏에서 그는 정수의 시선을 알아채지 못하고 앞선 인터뷰 장면에서의 쾌활함이 완전히 가신 상태로 무력하게 서 있다. 정수가 그를 부르지 않고 계단을 올라 식당으로 향하는 숏으로 이 장은 마무리된다. 직전 장면에서 맥주를 사이에 두고 밀착하던 두 사람은 어느새 서로 접속하지 못하는 숏들로 동떨어져 있다. 다리 위에 덩그러니 멈춰 선 기자의 음울한 초상과 풀밭 위에 움츠려 앉은 배우의 쓸쓸한 등 사이의 거리는 멀다. 두 사람 각자가 짊어진, 말로 닿아지지 않는 삶의 그늘은 인터뷰 장면에서 이들이 나누던 교감의 반짝임으로도 망각될 수 없다는 것일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큰’ 삶, 그처럼 수월하지 않은 삶에도 분명 사람을 돌려세우고 일으키는 힘이 있을 것이다. <그녀가 돌아온 날>은 그렇게 여긴다. 고된 인터뷰를 마치고 인터뷰를 돌이키는 연기 연습을 하고 학원에서 나온 정수에게 절실한 건 맥주 한 모금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그는 엄마의 귀가를 바라며 딸이 줄기차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떠올린다. 영화 안에서 보인 적도 들린 적도 없으나 정수의 장면을 내내 생생하게 부유하던 딸의 존재감, 외화면 어딘가에서 엄마를 또렷이 응시하고 있을 그 딸의 생명력, 버거운 책임, 정수의 말을 빌리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사랑”. 그 힘이 정수의 피로한 등을 집쪽으로 민다. 한밤, 이 여인이 지난 인터뷰의 시간을 한껏 끌어안고서 카메라를 등지고 ‘큰’ 삶이 기다리는 곳을 향해 다시금 걸어가고 있다. 그 뒷모습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