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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5호 [스페셜] 닫힌 집에서 열린 세계로, <옛날 옛적, 미래에> 마르게리타 페라리 감독

거리에서 벌어지는 역사를 통과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2001년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열린 G8 정상회의와 반세계화 시위는 국가 폭력으로 기록됐다. 마르게리타 페라리 감독의 장편 데뷔작 <옛날 옛적, 미래에>는 25년 전 그날을 집 내부에서 바라본다. 임신 8개월인 18세 소녀 니콜(가이아 라비나)은 시위대를 집으로 들이고,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한 이들은한 공간에서 마주한다. 감독은 네 살 때 창문 너머로 목격한 시위의 기억을 출발점 삼아 사적인 삶과 거대한 역사가 교차하는 순간을 그린다. 실제 기록영상과 세밀하게 재현한 시대의 풍경을 엮어 과거를 현재로 불러내는 영화다. 제노바 방언으로 ‘우화’를 뜻하는 ‘Föa’라는 제목에는 이야기 끝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싶은 감독의 바람이 담겼다.

- 부산에서 처음으로 관객들에게 영화를 선보인 소감이 궁금하다.

한국 관객을 직접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굉장히 감동적이었다. 관객들이 뜨겁게 반응해주고, 영화를 존중하며 집중해서 관람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상영이 끝난 뒤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선 관객들도 있었다. 관객들의 반응을 통해 큰 감동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었다.

- G8 시위가 일어났을 당시 네 살이었다. 그때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이 남아 있나.

특별히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집 안에서 창 밖을 바라보던 순간이다. 밖에서는 시위대의 함성과 소음이 들리고 가스가 자욱했다. 날씨가 무척 더웠지만 창문을 굳게 닫아야 했다. 바깥에서 거대한 사건이 벌어지는데도 집 안에 머물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외로움을 느꼈다. 흥미롭게도 이 기억은 코로나 19로 격리 생활을 하던 시기에 다시 떠올랐다. 두 경험 사이에 연결되는 감정이 있다고 생각했다.

-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시위 현장이 아닌 한 가정의 내부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이 영화는 사적인 공간에서 바깥 세상을 향해 문을 여는 이야기다. 한 소녀가 성장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많은 이야기가 가족이나 탄생처럼 작고 개인적인 것에서 시작해 더 큰 세계로 나아간다. 서로 다른 규모의 사건이 한 공간에서 만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이야기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 영화에서 집은 하나의 중요한 캐릭터처럼 느껴진다. 어떤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나.

집은 폐쇄적인 공간이자 공포와 혼란이 머무는 장소다. 미래를 알 수 없는 니콜의 불안과 바깥에서 벌어지는 사건으로 상처받은 시위대의 혼란이 그 안에 함께 존재한다. 인물들은 마치 덫에 갇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이 공간을 아이가 태어나기 전 머무는 어머니의 배처럼 생각했다. 그 안에 갇혀 있던 인물들이 결국 밖으로 나와 서로 관계를 맺고, 그 만남을 통해 무언가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이미지를 그리고 싶었다.

- 이러한 시각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미술감독, 촬영감독과는 어떻게 작업했나.

영화 속 집은 실제 주택이 아니라 세트로 만들 었다. 2000년대 초반의 집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콘센트와 전화기 같은 작은 소품까지 세심하게 준비했다. 관객이 자신의 집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익숙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촬영감독, 미술감독과는 색채와 벽의 질감 같은 요소도 함께 고민했다. 인물들의 관계가 변하고 긴장감이 달라지는 과정에 맞춰 색을 조절하는 등 세부적인 부분까지 신경 썼다.

- 실제 G8 시위 기록영상과 픽션을 결합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것은 무엇인가.

당시 텔레비전 화면에서 볼 수 있었던 영상과 픽션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이미지의 형식부터 고민했다. 기록영상과 극영화의 장면을 어떻게 배치할지가 중요한 문제이자 핵심이었다.

- ‘Föa’는 제노바 방언으로 ‘우화’ 또는 ‘이야기’를 뜻한다. 이 단어를 제목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실제 현실과 창작된 이야기를 잘 연결하고 싶었다. 이 영화를 다큐멘터리 처럼 사건을 직접 설명하는 방식으로 만들기보다는 서사와 분위기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개인이 경험하는 감정과 기억에서 출발해 관객에게 전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관객이 영화에서 희망을 느낄 수있기를 바랐다. 현실은 동화처럼 아름답게 끝나지 않았지만, 적어도 이야기 속에서는 그렇게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 가이아 라비나 배우와 니콜이라는 인물을 함께 만들어간 과정은 어땠나.

굉장히 멋진 작업이었다. 가이아는 창의적이고 자기 생각이 뚜렷한 배우다. 내가 생각한 인물의 이미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지만, 결국 배우 자신이 캐릭터를 구축해 나갔다. 자신의 삶과 생각을 바탕으로 인물을 만들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후에는 내가 음악을 들려주면서 인물의 감정과 분위기를 함께 찾아갔다.

-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이 설립한 제작사 누메로 10과 함께 작업한 경험도 궁금하다.

나에게 굉장히 풍요로운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감사하다는 마음이 크다. 소렌티노는 프로젝트가 충분히 발전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줬다. 우리가 작품을 이해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신뢰해줬다. 그런 믿음을 받으며 작업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 한다. 더 많은 사람이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영화는 25년 전 미래를 고민했던 젊은이들을 바라본다. 오늘날의 젊은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갈 수 있다는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