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아저씨의 시대는 가다
2001-04-03

신현준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늦장가를 간 후배 녀석이 털어놓은 신혼의 고충 중 하나는 “같이 놀자”는 신부(혹은 아내 혹은 마누라 그리고 ‘아줌마’)의 요구라고

했다. ‘같이 노는’ 일 중에서 최고의 고역은 ‘드라마 같이 봐주기’라는 말도 곁들였다. 맞다. 성화에 못 이겨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으면

종국에는 자신을 한심해지게 만드는 게 드라마다. 그건 마치 마약 같은 거다. 아침 시간대에 KBS에서 MBC로, MBC에서 SBS로 20분마다

채널을 돌려가며 아침 드라마 3개를 작파하는 사람도 보았고, 토요일 8시에 MBC 드라마는 녹화해 놓고 KBS 드라마 보다가 9시가 되면

녹화한 비디오를 틀어대는 사람도 보았고, 낮시간에 유선방송으로 어제 못 본 것들을 꼼꼼히 챙기는 사람도 보았다.

그들 대부분은 ‘여자들’이자 ‘아줌마들’이었다(하긴 문화적으로 첨단적인 척하는 ‘언니들’마저 <가을동화> 같은 신파 멜로물에 눈물을 펑펑

쏟았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야기를 계속했다가는 반여성적이고 반페미니스트적 발언으로 이어질 테고, 그러면 최보은 아줌마 같은 사람한테

된통 당할 게 뻔하니 이쯤에서 얼버무리고 끝내야겠다. 이건 뭐 TV라는 가정오락 수단을 빼앗긴 지 오래인 아저씨의 투덜거림이라고 봐주기

바란다. 한마디로 이제 여덟살된 여자애보다도 ‘채널 선택권’이 없으니까.

그런데 최근 아저씨가 선택권을 되찾고 ‘연속극’에 중독되어버렸다. 다름 아니라 장안의 화제였던 <아줌마> 말이다. 마땅히 할 일이 없는

날도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개비작거리던 사람이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귀가를 서둘렀다. 세 가족이 오순도순 바보상자를 보는 재미는 꽤 쏠쏠했다.

‘사람 하나 병신 만드는 것으로 흥미를 더하려는 의도가 과도한 나머지 중반 이후 리얼리티가 떨어졌다’는 나름의 평도 내렸고, 간혹 ‘이거

나 같은 사람 씹어대는 의도가 다분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이 아저씨, 바보 아님), 그렇게 씹히는 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진보지식인’과

‘문화평론가’들이 대체로 별볼일 없는 존재로 묘사되는 장면에서는 괜히 키득거리기도 했다(이거 웬 마조히즘적 쾌락인가).

압권은 마지막회 방영분에서 존 레넌(장진구의 발음으로는 ‘전 레넌’)에 대한 진보지식인과 문화평론가의 이전인수식 해석이었다. 존 레넌에

대한 전기까지 책으로 쓴 사람으로서 예전 같으면 ‘지들이 얼마나 안다고 존 레넌을 저 따위로 들먹여’라고 깝죽댔겠지만, 전업주부와 진보운동가로

투신하는 동기를 기발한 발상으로 처리했다는 상찬이 앞섰다(하지만 존 레넌이 한국적 컨텍스트에 위치하면 매우 황당해진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그게 작가의 의도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하나 더 시비를 걸자면 마무리가 약했다. 권선징악, 개과천선, 사필귀정, 용두사미

등의 4자성어에나 어울리는, 뻔하면서도 작위적인 결말이었고, 함께 지켜보던 어떤 ‘아줌마’는 “김국진과 조혜련이 나오는 <테마 게임> 같다”고

말할 지경이었으니까.

어쨌거나 <아줌마>를 보고 난 느낌은 ‘허세부리는 아저씨들의 전성시대는 끝난 것 같다’는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 영웅이 있었다면 (‘일그러진

영웅’을 포함하여) 정치인, 군인, 기업인, 운동지도자 등이었다. 다른 나라라면 혁명가나 과학자도 추가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새로운 영웅은 이런 아저씨들이 아니라 배우, 가수, 스포츠선수 같은 ‘오빠들’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영웅적으로 살려고 하면 그에게

남은 길이라곤 장진구처럼 망가지고 또 망가져서 주위 사람들에게 쓴웃음을 선사하는 것밖에는 없어보인다(뭐 다른 길도 있겠지만 그것도 망가지기는

마찬가지다).

드라마 <아줌마>가 끝난 다음 날 정주영이 타계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성장의 빛나는 영웅이자 김대중 대신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마땅할 업적을 남긴 고인의 명복을 빌지 못할망정 싸가지 없이 장진구식으로 견강부회해 보자. “이 사건은 말야.… 아… 주 상징적이야.

그건 말이지. 작업복 차림에 헬멧을 쓰고 현장을 지휘하던 CEO의 시대가 끝났다는 뜻이거든. 몽헌 아저씨가 현대를 살려내는 건 벅찰걸.

천민 자본주의 상징인 삼성과 현대가 아작나는 꼴을 보고 죽는 게 내 오래된 소원이었어. 하나는 실현되었는데…. 나머지 하나는? 그래 재용

아저씨, 당신만 믿어.”

P.S. 일주일 전에 쓴 글임을 감안하시고 읽어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신현준 / 아저씨 http://shinhyunjoon.com.n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