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DVD 서플먼트의 은밀한 매력(2)
2002-11-14

삭제장면

서플먼트의 매력 1 <화양연화>와 삭제장면 : 생략은 아름다워

한마디로 이건 전혀 다른 영화다. DVD에 들어 있는 삭제장면을 본다면 당신은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시나리오를 쓰지 않고 촬영에 들어가기로 유명한 왕가위는 <화양연화>의 첫 촬영을 홍콩의 낡은 병원 건물에서 시작했다. 곧 헐릴 예정인 이 건물을 영화 속 호텔로 개조해놓고 양조위와 장만옥을 데려다 카메라에 담았다. 이곳에서 왕가위는 완성된 영화에 포함되지 않은 그들의 베드신을 찍었다. 비내리는 창문 밖에 카메라를 놓고 소리로 방 안 풍경을 어렴풋이 느끼게 하는 암시적인 장면이다. 그러니까 <화양연화>는 지금보다 좀더 ‘통속적’인 데서 출발했다. 촬영 초기 왕가위는 양조위의 교활한 면을 부각시키는 장면도 찍었다. 장만옥의 남편이 자신의 아내를 유혹했다고 여긴 양조위가 복수심으로 장만옥에게 접근했다는 설정이다. “정확히 뭔지 모르지만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부터 다시 찍어야 했다.” 진짜 <화양연화>의 시작은 여기부터다.

디스크1에 들어 있는 <화양연화>의 삭제장면은 4개 장으로 구분돼 있다. 제1장 ‘2046호의 비밀’은 극의 방향을 결정지은 촬영 초반 호텔방 촬영에 관한 이야기로 방번호도 처음엔 307이었다가 다음 영화 제목인 2046으로 바뀌었다. 제2장 ‘싱가포르에서의 나날들’은 양조위가 싱가포르로 떠난 다음 장만옥이 싱가포르에 갔다오는 대목이다. 그러나 장만옥은 양조위를 만나지 못한다. 장만옥은 양조위의 신문사 동료 펭을 만나 “혹시 그를 보더라도 내가 왔었단 얘긴 하지 말라”고 부탁하고 싱가포르를 떠난다. 제3장 ‘70년대’에선 장만옥과 양조위의 의상과 분장이 완전히 달라진다. 나팔바지에 콧수염을 기른 양조위는 싱가포르에서 사귄 루루라는 여자와 함께 홍콩에 돌아온다. 양조위의 마음이 늘 딴 데 있다는 것을 눈치챈 루루는 펭을 통해 장만옥의 이야기를 듣고 장만옥의 아파트까지 찾아간다. 남편과 아이를 먼저 보내놓고 자신도 이민을 준비 중인 장만옥, 루루는 새로 살 집을 찾았다며 양조위를 장만옥의 아파트까지 이끌지만 당황한 양조위는 화를 낸다. 그리고 항상 국수를 샀던 그곳에서 양조위와 장만옥은 잠시 마주친다. 제4장 ‘앙코르와트에서의 비밀스런 재회’는 그들이 앙코르와트에서 우연히 만나는 대목이다. 돌아서는 장만옥에게 양조위가 묻는다. “오랫동안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어요. 내게 전화를 했던가요” 장만옥이 답한다. “기억이 안 나는데요.” 둘은 다시 헤어지고 양조위는 앙코르와트 석벽의 작은 구멍에 사랑의 기억을 불어넣는다.

아마 삭제장면들이 들어갔다면 <화양연화>는 3시간 가까운 영화가 됐으리라. 하지만 왕가위가 단순히 상영시간을 줄이려고 애써 찍은 장면을 잘라낸 것은 아니다. 생략은 여운을 남겼고, 그 여운은 왕가위의 영화가 이룬 새로운 경지이다.남동철 namdong@hani.co.kr

추천작 베스트 3

▣ <브라질>_크라이테리온

아직 국내에선 출시되지 않은 타이틀이지만 <브라질> 박스세트는 삭제장면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디스크1은 테리 길리엄의 최종편집본인 142분의 영화가 담겨 있는 반면 디스크3에는 유니버설의 제작자 시드 샤인버그가 편집한 94분의 영화 <브라질: 사랑은 모든 것을 정복한다>가 들어 있다. 1985년 테리 길리엄의 암울한 영화를 못마땅하게 여긴 제작자가 영화 전체를 맘대로 뜯어고친 해피엔딩 버전 <브라질: 사랑은 모든 것을 정복한다>는 편집권을 둘러싼 제작자와 감독의 다툼이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면 어떻게 될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 <오스틴 파워>_씨넥서스

다소 썰렁하거나 이야기의 흐름에 어긋나서, 완성된 영화에 포함되지 못한 걸로 보이는 마이크 마이어스의 개그가 20분가량 삭제장면에 들어 있다. 오스틴이 어느 글래머 여성과 악수를 하며 흔들리는 그녀의 가슴 때문에 손을 놓지 못하는 장면, 닥터 이블이 미니미에게 <You Are So Beautiful>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애정을 표하는 장면, 지뢰탐지기처럼 생긴 섹시탐지기가 등장하는 장면, 젊은 넘버2와 늙은 넘버2(로버트 와그너)가 동침하는 장면 등이 나온다.

▣ <쎄븐>_ 비트윈

데이비드 핀처의 코멘터리가 곁들여진 <쎄븐>의 삭제장면에는 모건 프리먼과 기네스 팰트로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장면이 많다. 모건 프리먼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면모와 기네스 팰트로의 외로움이 표현된 장면이 들어갔다면 <쎄븐>은 지금보다 따뜻한 영화가 됐을 것이다. 엔딩 시퀀스의 콘티가 지금과 다른 ‘얼터너티브 엔딩’도 흥미롭다. 핀처는 헬기에서 찍은 장면이 들어갈 자리에 ‘없어진 장면’이라고 쓴 카드를 집어넣었다. “촬영 당시 헬기장면이 왜 필요하냐고 했던 제작자들이 나중에라도 이걸 보고 헬기장면이 꼭 필요했다는 걸 깨닫기 바란다”면서.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