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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은 확실히 울릴 자신 있다”
2001-04-17

<유령>의 민병천 감독, 멜로적 감성의 SF영화 <내츄럴시티>로 돌아오다

확실히 2001년은 한국형 SF영화의 해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테슬라>

<예스터데이> 등 제작비 50억원을 넘는 SF영화들이 차례로 제작에 들어가는 지금, 민병천 감독의 <내츄럴시티>도

최근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갔다. 공일오비의 뮤직비디오 로 일찌감치 SF영화의 적임자로 손꼽히던 민병천(33)

감독은 <백야 3.98> <유령> <고스트>를 거쳐 마침내 숙원사업에 착수한 셈이다. 지난 2년간 준비한

SF프로젝트 <내츄럴시티>는 민병천 감독이 1년6개월간 직접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넉달간 테스트촬영을 거쳐 본궤도에 올라섰다.

<내츄럴시티>는 서기 2080년 서울에서 벌어지는 인간과 사이보그의 사랑을 담고 있다. 컴바이너라 불리는 합성인간들이 인간의

필요에 의해 광범위하게 활용되나 무단이탈하는 컴바이너들이 늘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 주인공 R은 무단이탈한 컴바이너를 제거하는 요원으로

접대용 컴바이너인 리아와 사랑에 빠진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그녀를 위해 R은 인간에게 그녀의 메인칩을 이식하려한다. 언뜻 <블레이드

러너>를 연상시키는 설정이지만 민병천 감독은 삼각관계의 멜로드라마로 얼개를 짜서 좀더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 생각이다. 그가 이번 영화를

만드는 제작사는 신생영화사인 썬키스엔터테인먼트(대표 이동준). 역삼동에 자리한 사무실에서 만난 민병천 감독은 다소 피곤한 모습이었지만 <내츄럴시티>의

진행과정을 이야기하면서 점점 신이 나는 듯 보였다. 컴퓨터모니터로 데모필름을 보여줄 때 들린 조금 상기된 듯한 목소리는 그가 이번 영화에

쏟고 있는 애정을 짐작게 했다.

<유령>을 끝내자마자 미니시리즈 <고스트> 연출에 들어갈 만큼 연출제안이 많이 있었는데 거의 2년간 소식이 없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알다시피 <유령> 믹싱작업할 때 <고스트> 연출에 들어갔다. <고스트>를 찍으면서 너무 힘들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까 1년에 280일을 촬영현장에서 보냈다. 마치 내가 기계가 된 것 같았다. <고스트>를 끝내면 무조건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고스트> 마치고 석달간 배낭여행을 했다. 인도에서 시작해 몰디브에서 끝나는. 그런 다음 <내츄럴시티>

시나리오를 시작했고 꼬박 1년6개월 걸려 지금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다른 연출제안도 많았을 텐데 직접 시나리오를 쓴 <내츄럴시티>에 매달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유령> 할 때도 그랬지만 내가 원하는 걸 100% 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작가가 따로 있고 제작자가 요구하는 게 따로

있고 하는 시스템에선 한계가 있다. 기획영화라는 게 대체로 시나리오가 있는 상태에서 감독을 부르기 때문에 감독의 특성을 100% 살리기

어렵다. 신인감독에겐 그것도 나쁘지 않고 한번쯤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2번은 하기 싫더라. 그래서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내츄럴시티>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시작된 것인가. 배낭여행을 갔다와서 구상한 것인가.

아이디어는 <유령>을 찍을 때 나왔다. <유령>을 찍을 때 일인데 어느 날 우리집 강아지가 죽었다. 굉장히 예뻐하던

강아지인데 너무 슬펐다. 사이보그에게 사랑을 느낀다면 마찬가지로 죽을 때 아주 슬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이보그와 사랑하는

이야기를 구상했고 강아지가 죽었을 때 정서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내츄럴시티>는 이야기로 보면 <블레이드 러너>와 흡사하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모티브는 <블레이드 러너>와 <공각기동대>에서 왔다. <유령> 때도 그랬지만 문제는 그걸 우리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유령>은 모델이 <크림슨 타이드>였는데 그걸 어떻게 내 식으로 만들까 고민했다. 이번에도 <블레이드

러너>와 <공각기동대>를 민병천 식으로 만드는 데 주안점을 뒀다. 가장 일상적인 모습의 SF를 만들 생각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나서도 좋은 영화를 봤다고 느끼면 그만이지 SFX를 강조하진 않을 것이다. 영화내용으로 보면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존재에 대해 묻는 영화이고 <공각기동대>는 자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반면 <내츄럴시티>는 인간성

회복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서 인간성은 감정인데 닫혀 있던 감정의 벽이 무너지는 과정을 다룬다. 주인공 R이 인간의 감정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을 가뒀던 벽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사이보그인 여주인공 리아가 내게 계기를 줬던 강아지 같은 존재다. 개가 인격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는 것처럼 주인공 R은 사이보그 리아를 보며 인간이길 바란다. 최근 본 영화 중 <캐스트 어웨이>에서 비슷한 예가

있다. 톰 행크스가 배구공을 윌슨이라 부르며 감정이입하는데 사이보그에게 그런 느낌을 갖는다면 절절한 사랑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일상적인 모습의 SF라니, 쉽게 감을 잡기 어렵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SF는 판타지다. <에이리언> <스타워즈> <블레이드 러너> 같은 영화를 보면 이게 영화라는 생각부터 하게

된다. <내츄럴시티>의 배경은 2080년인데 <내츄럴시티>는 그 시대를 다큐멘터리처럼 펼쳐놓을 생각이다. 대단히 화려하지

않고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으로. 그래서 컴퓨터그래픽(CG)도 너무 튀지 않는 방향으로 만들 생각이다. 사실 화면을 보기 전에 말로 설명하는

걸로 감을 잡긴 힘들거다. 우리 제작진도 2080년의 도심이 어떤 느낌일지 답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얼마 전 비로소 답을 발견했다. <유령>을

만들 때 드라이포웨트 기법으로 해저느낌을 만든 것처럼 이번엔 필름감도를 조정하면서 이게 답이 아닐까, 하는 화면을 만들어냈다.

SF영화지만 관객과 호흡하는 코드는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멜로드라마일 수도 있고 액션영화일 수도 있는데 <내츄럴시티>는

어떤 쪽인가.

<내츄럴시티>는 기본적인 감성코드가 멜로드라마다. 멜로적 감성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SF를 택했다고 보면 된다. 사실 SF를

일상적인 수준으로 끌어내리려면 가장 정직한 드라마가 받쳐줘야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내츄럴시티>의 드라마는 멜로의 가장 기본적인

구도인 삼각관계로 출발한다.

얼마 전 SF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한 감독으로부터 SF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가 하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이게 현실화될 수 있는지,

제작비가 얼마나 들지 계산하다보면 장면을 이어나갈 수 없다는 얘기였는데. 그런 난감한 순간을 많이 겪지 않았나.

이해가 간다. 내 경우는 어느 정도 경험이 있으니까 답이 금방금방 나왔지만 처음 하는 사람들에겐 무척 힘든 일이다. 모델이 없고

시행착오도 없으니까 참고할 자료가 없는 것이다. <내츄럴시티>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콘티작업을 병행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콘티가

나오고 다음에 시나리오로 옮겼다. 미술팀은 1년 전부터 같이 작업했고 특수효과, 시각효과, 시퀀스, 미니어처 등 각 부문 감독만 8명이나

된다.

스탭구성이 일반 영화와 많이 다른가.

얼마 전에 스탭을 전부 모아서 체육대회를 했는데 300명쯤 되더라. CG만 해도 3D, 2D, 합성 등 3개 분야 스탭이 따로 구성돼 있다.

CG총감독이 있고 연출부에도 CG를 전담하는 사람이 있다. CG는 3D를 최대한 배제할 생각이다. 2D와 합성 위주로 간다. CG가 드라마에서

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미니어처팀은 <용가리> 작업을 했던 사람들이다. 처음엔 <용가리> 미니어처팀이라고 해서

큰 기대를 안 했는데 막상 미니어처 만든 거 보니까 대단하더라. <용가리>에서 미니어처가 빛을 보지 못했다면 그건 미니어처 만든

사람들 잘못이라기보다 촬영, 조명 등 프로덕션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미니어처의 생명은 조명이다. 미니어처 촬영경험이 없으면 적정한

조명을 쓰지 못하고 그 때문에 미니어처가 튀어보인다. 미니어처로 건물만 280동을 지었다.

제작비가 얼마나 드나. 과연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을지, 염려하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총제작비 예산을 62억원으로 잡고 있다. 순제작비만 52억원이라고 보면 된다. 엄청난 금액이지만 한국에서만 가능한 최소의 제작비이기도 하다.

우리끼린 극초저예산 SF영화라고 말하기도 한다. (웃음)

어디에 그렇게 많은 제작비가 투자되나.

배우 개런티나 스탭 개인이 받는 돈은 오히려 일반 영화보다 적다. 순수하게 영화제작에 드는 돈이 그만큼 많은 셈이다. 촬영만 해도 180회를

잡고 있다. 일반 영화의 3배 정도다. 한 신을 찍을 때도 한 장소에서 끝낼 수 없는 거라 시간이 많이 걸린다. 최소한 3∼4군데 옮겨다니며

찍은 뒤 합성해야 한 신이 나온다. 후반작업도 7∼8개월 정도 걸린다. 찍은 필름 가운데 70%는 필름스캔을 받아서 CG작업을 한 뒤 다시

출력해야 되는데 그런 공정에만 넉달은 소요된다. 미니어처에 드는 돈, 세트 만드는 돈, 그런 거 따져보면 60억원이 아무것도 아니다. 영화에

나오는 자동차 1대 만드는 돈만 해도 최소 1억원이 넘는다. <유령> 때는 미니어처로 잠수함 9대 만든 게 전부였지만 <유령>의

20배 정도 물량이 든다.

서기 2080년이 배경인데 당신이 보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내츄럴시티>는 2001년의 내가 원하는 미래를 담는 영화다. 과학적 검증이나 미래학자의 예측 같은 거 무시하고 내가 바라는

서울의 미래모습을 담았다. 배낭여행을 좋아해서 외국에 자주 가는데 그러면서 느끼는 것이 서울은 전세계에서 가장 개성없는 도시 같다. 도시계획도

없고 특성도 없는. 내가 만약 2080년의 도시계획을 한다면 이렇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다. 예를 들면 모든 건물에 황룡사석탑 같은

기와지붕을 얹었다.

<내츄럴시티>의 의의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 SF영화들이 많이 기획되고 대작영화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도 나오고 있는데.

SF영화를 보고 감동받아서 울었다고 하면 만족한다. 두번은 확실히 울릴 자신이 있다. 철저히 감정선을 따라가는 영화가 될 것이다. 대작영화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도 많다는 거 알고 있지만 그에 따른 사명감도 있다. 단순히 스케일이 큰 작품이 아니라 좋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자신있나.

자신있다. 석달 전까진 정말 헤맸고 자신없었는데 최근 나온 비주얼 보고 자신감이 생겼다. 지금까지 테스트한 걸 그대로 복제하는 과정이 남았을

뿐이다. 정말 좋은 작품이 나올 거 같은 느낌이 든다.

글 남동철 기자

사진 오계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