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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이 원하는 코드에 새로움을 덧붙이다,<색즉시공>
2002-12-11

■ Story

늦깎이 대학생이자 차력동아리 회원인 은식(임창정)은 에어로빅부의 은효(하지원)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소란스러운 기숙사 친구들 틈바구니에서 수줍고 애틋한 마음을 키워가지만 상황은 늘 은식에게 불리하다. 주체할 수 없는 몸의 정열이 수시로 말썽을 일으키는데다 은효가 교내의 바람둥이 킹카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효가 임신을 한 채 버림받게 되자 은식의 사랑은 더욱 진실해진다.

■ Review

<색즉시공>은 윤제균 감독의 재능을 한눈에 보여준다. 데뷔작인 <두사부일체>가 다소 엉성한 품새로 조폭영화의 흐름 위에 올라탄 코미디라면, 두 번째 영화 <색즉시공>은 대중영화로서 대단한 짜임새와 유려함을 과시한다.

물론 이 영화의 소재나 주제, 스타일이 전통적으로 평론계가 지지해온 것과는 거리가 있고, 관객 가운데서도 일부는 ‘내가 왜 여기 앉아 있나’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영화가 늘어놓는 화장실 유머나 관음증은 뻔뻔스럽다. 그러나 한국의 주류 관객이 선호하는 코드들을 잘 간추려 과감하게 밀어붙이고 거기에 한두 가지 새로움을 덧붙임으로써 감독 자신이 선정한 위치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바꿔 말하면 연출가보다는 기획자로서의 성공이 먼저 눈에 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거의 섹스영화들이 나이 꽉 찬 성인들의 불량한 애정행각을 묘사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불륜을 엿보는 위치에 놓이도록 만들었다면, 최근에는 기혼여성, 중학생, 노인 등 성이라는 이슈에서 소외되었던 계층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 두드러진다. <색즉시공>은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스무살 언저리 대학생의 현실적인 성 감각을 건드린다.

<색즉시공>은 젊은 관객에게 ‘너 바로 이렇지’라고 들이댄다. 이러한 직설법은 관객의 분열증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 결혼을 하거나 여관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지만 성적인 에너지로 보자면 일생에 가장 왕성한 청소년 혹은 20대 초중반의 관객은 스크린 어디에서도 그들의 실제적인 성과 마주치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이들은 섹스라고는 도무지 관심 없는 착하고 아름다운 젊은이로 묘사되거나, 아니면 아예 부모도 스승도 몰라보는 뒷골목 아이들이나 되어야 섹스 이야기가 비로소 중심에 오른다. 그러니 젊은이들의 현실적인 육체는 도색잡지나 인터넷 성인 사이트, 불법 비디오, 화장실 유머 사이를 떠돈다.

<색즉시공>은 이들의 삶에서 섹슈얼리티가 일상적으로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아울러 그것의 표현 형태와 상상력이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동시에 말해준다. 이 영화에서 섹슈얼리티를 묘사하는 방법은 엽기적일 만큼 과장되어 있는데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리얼하다고 여겨진다. 칙칙하고 부담스러워서 외면하고 싶다는 느낌 대신 비록 어처구니없지만 가볍게 웃으면서 인정하고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마저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윤제균 감독은 이렇게 직설적인 접근법에 균형과 안정감을 부여하는 장치를 여럿 깔아두었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정신없는 ‘섹스 어드벤처’ 와중에 서정성과 순박함이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은효를 바라보는 은식의 초반 시선부터 은효의 주위를 맴도는 은식의 초라한 모습, 임신 중절 수술을 한 은효를 위로하려는 은식의 애절한 노력 등이 코미디의 리듬과 공존하고 있다.

조연급 캐릭터들이 슬랩스틱이나 시트콤처럼 보이는 과장된 대사와 액션에 많이 의존하는 반면, 두 주인공에게는 뚜렷한 이야기선을 부여하고 코미디와 드라마 연기 사이에서 균형을 잡도록 했다. 이같은 효과로 인해 후반부 들어 멜로드라마 플롯으로 귀결되는 데 무리가 없다. 코미디가 강하면 드라마가 약하고, 드라마나 캐릭터를 고민하면 코미디가 실종되는 주류 상업영화의 딜레마를 보기 좋게 뛰어넘었다.

(왼쪽부터 차례로)♣ 차력동아리의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은 에어로빅부와 한방을 쓰게된다. ♣ <색즉시공>은 섹스에 대한 젊은이들의 다양한 태도를 요약해서 보여준다. ♣ 또한 신중하고 책임감 있는 사랑을 하라는 잔소리를 잊지 않는다.

<색즉시공>의 또 다른 관심사는 젊은 육체가 주는 매혹이다. 굳이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신체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려서 폭발하는 육체의 움직임이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 가운데 하나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차력이나 에어로빅과 같이 육체를 격렬하게 사용한다. 배우들이 대강의 동작을 흉내내고 어려운 부분은 대역을 써서 눈가림 편집을 한 것이 아니라, 임창정과 하지원을 비롯한 배우들의 동작이 하나같이 그럴싸한 수준이다.

주연급 배우들에게 석달이 넘도록 연습을 시킨 것은 단순히 감독의 결벽증 때문이라기보다는 이 영화의 목표 자체가 육체의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려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에어로빅 장면은 말할 것도 없고 섹스장면까지 화려한 카메라와 편집을 통해 거침없이 보여주고 상당한 러닝타임을 할애한 것 또한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제의식은 상당히 보수적이다. 급진적인 것이 그 자체로 자랑이 아닌 것처럼, 보수적이라고 해서 감독이 안이한 타협을 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만약 윤제균 감독이 영화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가 섹스를 향유하되 여성의 몸을 잘 보호해야 한다는 것과 신중하고 책임감 있는 사랑을 하라고 설득하려는 것이라면, 요즘 젊은 관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잔소리’가 아닐까 싶다. 김소희/ 영화평론가 cafe.daum.net/cw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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