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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한국영화 베스트 5
2002-12-27

한 발짝 나아갔다,넓어졌다

한국영화 베스트 5 - 생활의 발견

“ 홍상수는 항상 정직하지는 않다. 그런데 그런 순간 홍상수는 메시지를 보낸다.” 정성일

“ 허허실실 윤리학 이부작.” 심영섭

“ 멈춰 있는 듯하면서도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홍상수 감독의 ‘새 영화’.” 홍성남

홍상수 감독의 네 번째 영화 <생활의 발견>은 이제는 보통명사가 되어버린 ‘홍상수식’으로 ‘모방과 흉내’라는 모티브를 다시 한번 집요하게 파고든 영화이다. 전작 <오! 수정>에서부터 조짐을 보인 변화의 가능성은 이 영화를 통해 더욱 밀도 있고 유연해진 구성으로 발전했다. 영화평론가 김봉석씨는 이에 대해 “<생활의 발견>에서는 ‘난 과정을 믿고 거기에 건다’던 홍상수의 태도가, 한결 너그러워졌다. 이번에는 집요하게 인물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붙이거나 복마전을 헤매게 하지 않는다. 깨달음이나 변신을 의도하지도 않는다. 그저 마라톤 선수처럼 꾸준하게 달려간다. ‘정체성은 물질적’이란 말대로, 인간의 물질성을 침착하게 관찰한다. 배우가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에 공명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준다. 풀어놓고, 본성을 찾아 움직이게 만든다. 그동안 홍상수의 영화에 나온 배우들이, ‘절정의 연기’를 보여준 것은 우연이 아니다. 홍상수는 뼈대 위에 찰흙을 계속 덧붙여나가는 방식으로 인물을 만든다”고 지적했다.

한국영화 베스트 5 - 오아시스

“ 개인이 아니라 사회를 다시 보게 만든 한국영화.” 김봉석

“ 거창한 도그마에 지배되는 시선 대신 자신의 영혼과 육체의 감수성을 가동시켜서 관찰한 결과물.” 김소희

제59회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신인연기상을 수상한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는 대중에게는 감동을, 평단에서는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오아시스>를 두고, “이기적인 휴머니즘”(정성일)이라는 비판적 견해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대다수 평론가들은 이 영화에 일반적으로 지지를 표명했다. 영화평론가 유운성씨는 “이창동이 영화와 대면하여 시네마틱한 것에 대한 탐구로 나아간, 그의 첫 번째 ‘영화’”라며 그의 영화적 발전 양상에 주목했고, 심영섭씨는 “거시적 이야기의 구조를 지녔던 <초록물고기>와 <박하사탕>이 산산이 부서진 가족과 근대화의 문제를 성찰하는 대의명분에 충만했다면, <오아시스>에 이르러서 이창동은 이러한 대의 명분을 걷고 현재진행형의 미시적인 것들을 천착한다”라고 그 궤적을 밝히는 한편, “인간에게 아무것도 허락되지 않았을 때에도 남아 있는 판타지로서, 현실을 되새김질하는 판타지로서, <오아시스>의 판타지는 진흙창에서 피워올린 한 송이 연꽃이 되었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한국영화 베스트 5 - 복수는 나의 것

“ 화려하고 치밀하면서도 힘을 잃지 않은 영상언어.” 변성찬

“폭력의 사회학이 아닌 폭력의 자연사 혹은 생물학에 관한 영화.” 황진미

<공동경비구역 JSA>로 장르영화의 대중화를 성공적으로 일궈냈던 박찬욱 감독이 만든, ‘하드 보일드’를 표방한 <복수는 나의 것>은 세밀한 장치와 과감한 생략으로 기존 영화들과의 차별화를 선언하며 영화의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리 마빈의 무표정한 모습에서 드러나는 냉철함과 크리스토퍼 워컨의 조각 같은 외모가 전달하는 차가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박찬욱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듯 송강호는 이 영화에서 기존의 코믹한 이미지를 전복시키는 날카로운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영화평론가 유운성씨는 “<복수는 나의 것>은 공감되거나 오해되거나 무시될 가능성을 모두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아예 그것에 신경쓰지 않겠다는 듯한 태도를 보여주는 영화다. 아벨 페라라의 복수의 윤리학을 고다르의 유물론적 태도로 해체한다, 고 말하면 아마 감독은 웃을 것이다. 그럼 딱 한마디만 하면 된다. 이건 정말이지 올해 여러분이 꼭 봐야 할 걸작 가운데 하나”라고 강경하게 추천하기도 했다.

한국영화 베스트 5 - 죽어도 좋아

한국영화에서 가장 낯설고 진귀한 체험 가운데 하나. 허문영

사랑이 삶을 살 만하게 만든다는 것에 대한, 그 어떤 픽션영화들보다도 훨씬 절절하고 감동적인 ‘기록’. 홍성남

눈길을 사로잡을 데뷔작이 드물었던 올해, 진정 발견의 기쁨을 준 영화는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였다. 방송사 PD로 일하면서 찍은 다큐멘터리 <사랑>에서 알게 된 70대 노인 박치규, 이순예 부부의 로맨스를 담은 이 영화는 올해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70대 노인의 성과 사랑’을 다뤘다는 사실 자체가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켰지만 선정성은 이 영화와 가장 거리가 먼 단어일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사랑하고 몸을 섞고 기쁨의 노래를 부르는 지극히 단순한 이야기 속에서 <죽어도 좋아>는 사랑이라는 욕망과 감정의 가장 아름다운 상태를 그려낸다. 별다른 플롯을 개입시키지 않은 채 <청춘가>의 가사로 챕터를 나누고 시종 다큐멘터리 시점을 유지하면서 감정의 절정을 만들어가는 이 영화의 매력은 일반적인 멜로드라마로는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경지이다. <꽃섬>의 감독 송일곤은 <죽어도 좋아>에 관해 이렇게 썼다. “67분, 단순한 이야기다. 그런데 무엇이 우리를 감동시키는가. 주인공이 내뱉은 언어들과 그들의 육체의 움직임과 눈물을 흘리게 되는 과정과 노인의 주름진 손등에 내려앉은 눈송이들이다. 영화에 보여지는 모든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포착하는 카메라의 진실 때문이다.”

한국영화 베스트 5 - 취화선

“ 영웅적인 예술가의 알레고리.” 데이비드 제임스

“ 우리네 산수를 닮은 영화.” 김봉석

오원 장승업의 일대기를 그리며 예술가의 험난하면서도 창조적인 삶을 아름다운 화폭 안에 담아 보여준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은 제5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한국영화의 문화적 도약을 증명했다. 영화 제작현장을 같이 경험한 영화평론가 정성일씨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의 원칙은 “구석에 서 있는 엑스트라일지라도 그의 연기 동선은 그를 주인공으로 세상의 중심에 놓고 움직여라. 그들은 주인공을 보조하기 위해 거기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과 함께 세상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다”라고 임권택 감독의 영화적 ‘세상’을 정의해냈으며, “유랑길을 떠나는 장승업이 그 풍경 안에서 걸어가는 장면은 순간적으로 내가 컴퓨터그래픽으로 그려넣은 산수화 안으로 걸어들어간 것이 아닐까, 라는 착시현상이 일어날 정도였다”고 그 미학적 성취도를 술회했다.

외화 베스트10’피아노 치는 여자’에 한 표!

시사회가 있은 지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아 아직 응답자들의 마음에 현의 울림이 남아 있는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피아니스트>가 2002년 국내 개봉 외화 가운데 최고 평점을 얻었다. <피아니스트>는 정성일, 유운성, 심영섭, 이성욱(<한겨레21>) 등 평자에게 최고의 작품으로 꼽혔다. 2위는 2002년 극장가를 열고 닫은 한쌍의 반지가 차지했다. “영화가 ‘기계의 딸’로 불리는 이유를 알겠지”(박평식) “바그너적 장엄과 과잉의 스펙터클”(김소희)이라는 코멘트가 붙었다. 3위는 10대 영화 유행 끝에 돋보였던 “10대의 종말에 대한 슬픈 백서”(이상수) <판타스틱 소녀백서>가 차지했고 4위는 많은 응답자의 순위에서 고루 5위권 안에 포함된 코언 형제의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에 돌아갔다. “맞다, 인생은 아이러니의 연속이라는 말은”이라고 박평식 평론가는 호응했다.

1. 피아니스트2. 반지의 제왕3. 판타스틱 소녀백서4.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5.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6. 로얄 테넌바움7.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헤드윅9. 아귀레, 신의 분노10. 소림축구

93점 85점 84점 76점 66점 53점 48점 38점 37점

미야자키 하야오의 동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5위에 올랐고 6위는 미국 인디의 새로운 재능 웨스 앤더슨의 국내 첫 개봉작 <로얄 테넌바움>이 차지해 극장에서의 설움을 달랬다. 공동 7위에 선정된 두 영화는 보색대비를 이룬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는 “키아로스타미 영화에서 감동은 단 한번이다.

그런데 나머지 중 버릴 장면들은 더욱 없다.”(정한석), <헤드윅>은 “고전 멜로의 전통 안에 민족, 성, 하위문화 담론을 담고 그에 걸맞은 스타일의 구사가 돋보였던 영화”(변성찬)라는 찬사를 들었다. 9위는 “서방제국주의 역사에 대한 가장 통렬한 자기 성찰”(이상수) <아귀레, 신의 분노>가 차지했고 주성치의 <소림축구>가 2002년의 10번째 영화로 뽑혔다. <소림축구>를 순위 꼭대기에 올린 황진미(영화 칼럼니스트)는 “전 지구적 보편성을 지닌 축구, 무예, 코미디를 통해 전 우주적 보편성을 지닌 건강과 사랑, 선을 추구한 영화”라고 품평했다. 이 밖에 <바운스> <칸다하르> <디 아더스> <위대한 독재자> <공각기동대> 등이 아슬아슬하게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김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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