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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바보였어,<캣츠>

The Cat’s Meow, 2001년 감독 피터 보그다노비치 출연 커스틴 던스트, 에드워드 허먼, 에디 이자드, 캐리 엘위스, 조안나 럼리 장르 드라마 (메트로)

70년대에 모습을 드러낸 영화광 출신 감독 중에서 최고의 스타는 피터 보그다노비치였다. 영화와 영화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무장한 보그다노비치의 대표작 <라스트 픽처 쇼>는 스튜디오 전성기 시절의 존 포드와 하워드 혹스를 떠올리게 하는 탄탄한 걸작이었다. 치밀한 캐릭터, 원숙한 촬영과 편집 등 <라스트 픽처 쇼>는 고전영화에 대한 지식을 고스란히 영상으로 되살린 듯했다. 하지만 <라스트 픽처 쇼> 이후의 영화들은 단순한 고전의 모방에 그쳤다. 세련되고 우아하지만, 그 안에는 어떤 갈망이나 열정이 없었다.

고만고만한 범작들 중에서 그나마 호평받은 것은 초기 무성영화 시대를 배경으로 한 <니켈오디온>이었다. 21세기 들어 만든 <캣츠>의 시대배경은 무성영화 시대의 막바지인 1924년이다. 이상하게도 피터 보그다노비치는 무성영화의 세계로만 들어가면 활력을 찾는 듯하다. <캣츠>는 24년 신문 재벌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찰리 채플린을 비롯한 할리우드의 제작자와 배우, 기자들을 초청한 선상 파티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매끄럽게 그려낸 스릴러영화다. 스티븐 페로스가 자신이 쓴 희곡을 직접 각색했다.

랜돌프 허스트(에드워드 허먼)는 영화사 사장인 톰(케리 엘위스)의 생일을 맞아 선상 파티를 주최한다. 찰리 채플린(에디 이자드), 최고 인기의 여배우 엘리노 글린(조안나 럼리), 톰의 정부인 마가렛, 기자인 롤리 등이 초대받는다. 랜돌프 허스트가 부인과 별거한 채 배우인 매리언(커스틴 던스트)과 지내는 것을 알고도, 채플린은 매리언에게 끊임없이 구애를 퍼붓고 있다. 파티에 모인 사람들의 목적은 저마다 다르다. 파산위기에 몰린 톰은 허스트의 투자를 받아내기 위하여 채플린과 매리언의 관계를 캐고 다닌다. 마가렛은 그들의 관계를 감추고 일에만 열중하는 톰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다. 이미 매리언을 의심하는 허스트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감시의 눈길을 멈추지 않는다. 기자인 롤리는 허스트의 신문에 자신의 컬럼을 연재하기 위하여 안간힘을 쓴다.

<캣츠>는 로버트 알트먼의 <고스포드 파크>를 연상시킨다. 겉으로는 고상한 척하지만, 그들의 내면은 이기심과 질투심, 치졸한 욕망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캣츠>는 <고스포드 파크>처럼 냉정하지 않다. 내레이터 역할을 하는 엘리노는 말한다. 우리는 모두 바보였지만 멈출 수 없었다고. 멈춘다면 이미 우리가 아니기 때문에. 채플린의 구애처럼 교활하고 치사하면서도 그 안에는 나름의 진정성이 있었다. 아마 피터 보그다노비치가 사랑한 것도 과거의 아련한 순수함일 것이다.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