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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의 풍경만 아스라이‥ <화성으로 간 사나이>

■ Story

산골 소녀 소희는 죽은 아버지가 화성으로 갔다고 굳게 믿으며 그곳으로 편지를 보낸다. 한편 소년 승재는 소희를 좋아하는 마음에 자신이 아버지인 양 ‘화성으로부터 온 편지’를 써내려간다. 세월이 흘러 승재(신하균)는 마을의 우체부가 되어 있고, 서울 고모집으로 떠났던 소희(김희선)는 17년 만에 고향집을 찾는다. 어릴 적 사랑을 평생 가슴속에 품고 있던 승재의 심장은 소희의 등장과 함께 아련하게 고동쳐온다.

■ Review

가끔 어떤 사랑은 계속되는 ‘수취인불명’의 소인을 견뎌낼 만큼 큰 인내심을 요구한다. 그것도 한철 강풍처럼 불어닥쳤다 사라지는 짝사랑이 아니라 평생을 바칠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사랑이라면 더욱더. 여기 이 청년은 17년 동안 제대로 주인에게 전달되지 못하는 사랑을 계속해서 날려보낸다. 매번 또박또박 글을 쓰고, 정성들여 우표를 붙이고, 심장으로부터 소인을 찍어. 그에게 이 사랑이 도착할 주소는 세상에 오로지 하나다. 마치 평생 바뀌지 않는 영구불변의 전화번호를 얻은 것처럼, 그에게 주소변경이란 없다. 하여 이 사나이가 매번 다른 주소를 가진 사람들에게 편지를 전하는 우체부가 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동감>을 각색하고 연출했던 장진, 김정권 감독이 두 번째로 선보이는 <화성으로 간 사나이>는 이처럼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그리는 영화다. 영화는 어린 강수연이 주연했던 <하늘나라에서 온 편지>와 같은 설정으로 시작된다. 죽음을 인정할 수 없는 아이에게 “사람은 죽는 게 아니라 화성이란 먼곳으로 떠나는 것”이라는 어른들의 ‘착한 거짓말’은 장례식에서 소녀의 입가에 미소를 선사할 만큼 강한 힘을 가진다. 소년과 소녀가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해 움막에서 서로를 의지하는 <소나기>의 그 유명한 순간 역시(곽재용 감독이 <엽기적인 그녀>에서 코믹하게 패러디하고 <클래식>에서 오마주를 바친) <화성…>에서 성심껏 재현되었다.

이 동화와도 같은 사랑에 현실감을 부여하는 것은 승재의 마을이 처한 위기다. <동감>을 끝내고 오랜만에 고향인 전주와 선산이 있는 전북 진안을 찾은 김정권 감독이 “낯설게 변해버린 고향과 물밑으로 가라앉은 할아버지의 무덤”을 보며 이야기의 출발점을 찾았다는 영화는 마을과 승재를 운명공동체로 만든다. 순수한 자연을 붕괴시키는 댐건설의 위협은 순수한 사랑을 위태롭게 만드는 세속의 위협과도 같다. 고향이자 생활터전인 마을이 수장되기 일보직전에 이르른 상태, 평생을 바라보았던 사랑이 이제 돌아올 곳이 사라진 것이다. 그는 이걸 견뎌낼 수 없다.

결국 <화성으로 간 사나이>는 제목이 이미 영화의 끝을 말해주는 영화다. 사나이는 화성으로 간다. 그러나 불행히도 영화는 그가 왜 화성으로 가게 되었는지에 대해 끝내 납득할 만한 이유를 말하지 못한다. 또한 감독의 전작인 <동감>이 현재의 남자와 과거의 여자가 각자의 시대 속에서, 혹은 시대를 교차하며 고르게 감정을 쌓아갔던 것에 비해 <화성…>은 승재가 그토록 열망하는 대상인 소희의 감정에는 크게 아랑곳하지 않는 편이다. “어쩌면 사람이 그렇게 순수해, 오빠 옆에 있으면 나도 정화되는 느낌이야”라며 승재의 떨리는 어깨에 먼저 머리를 기대던 소희는 얼마 되지 않아 번듯한 외모의 MBA 출신 사업가의 종이반지에 마음을 뺏기고, 급기야 밤새 자신을 기다린 남자에게 “어릴 적 추억은 추억으로만 간직하자”는 말로 비수를 꼿는다.

특히 영화는 두 사람이 17년 만에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나누는 ‘우체국에서의 하룻밤’ 이후 너무 가쁘게 호흡을 가져간다. 서울과 시골로 대립되는, 오염과 순수로 양분되는 극단적 구분이 석연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소희의 마음을 빼앗은 서울의 한성호(김민준)는 ‘도시남자’의 전형성을 뛰어넘지 못한 채 끝까지 극의 이물적인 존재로 남고 승재의 동생 호걸(김인권)을 비롯한 ‘시골이웃’들은 간간이 극의 재미를 더하면서 소모될 뿐이다.

결국 문제는 이제는 올드해져버린 승재의 ‘바보 같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을 박제함으로써 수장함으로써 부패와 파괴의 상태에 이르는 것을 스스로 막겠다는 영화의 결말은 고귀한 희생보다는 현실도피적 선택으로 느껴진다. 결국 <화성…>은 수몰된 마을의 풍경을 수중촬영을 통해 서정적으로 훑어내리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처럼 핵으로는 접근하지 못한 채, 표면의 풍경만 아스라이 더듬는 데 그치고 말았다.

:: 김정권 감독 인터뷰

“사랑이 무엇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오해 하나, <화성으로 간 사나이>가 간 ‘화성’은 <살인의 추억>의 배경이 되었던 그 ‘화성’이 아니다. 농담 하나, 신하균은 ‘지구’를 지키다가 힘들어서 ‘화성’으로 간 것도 아니다. 데뷔작 <동감> 이후 3년 만에 두 번째 작품을 내놓은 김정권 감독과의 짧은 인터뷰는 결국 왜 목성도 금성도 아닌 ‘화성’이었는지에 대한 의문부터 시작되었다.

죽은 이들이 가는 곳을 ‘화성’으로 이름 붙인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화성’이라는 이름에 특별히 의도된 바는 없다. 흔히 죽으면 ‘하늘나라’간다는 표현을 하는데 그 정도의 개념이다. 멜로영화다보니 격하지 않은 표현으로 고르다보니 화성에 이르른 것 같다.

시사회장에서 첫인사로 “<동감> 끝내고 영화 못 찍을 줄 알았다” 고 했다. 3년 동안 어떻게 지냈나. 농담 비슷하게 한 이야기인데 오해의 소지가 있었나보다. 그냥 쉽게 올 수 있었던 길을 의외로 좀 멀리 돌아왔다는 뜻이었다. <동감> 끝내고 여행을 많이 다녔고 그 이후로 <화성…> 시나리오 작업을 했는데 원래 디토와 공동제작하기로한 영화사가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 때문에 제작을 포기하면서 마음고생을 좀 했다. 그러다 영화제 참여건으로 일본에 갔다가 우연히 신간센 기차 안에서 장진 감독을 만났다. <화성…> 이야기를 듣은 장 감독이 흔쾌히 같이 해보자고 했고 수다에서 제작과 시나리오 각색을 맡게 되었다.

승재에 비해 소희의 캐릭터나 감정상태는 지나치게 점프되고 행동의 개연성 역시 부족한 느낌이다. 편집하면서 소희 분량을 많이 덜어낸 게 사실이다. 연기의 문제는 아니었고 처음에 시나리오를 봤을 때도 그랬고 촬영을 하면서도 늘 이 영화는 승재가 중심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서울 분량을 편집하다보면 늘 승재는 지금 뭐할까, 빨리 보고 싶어졌다. 소희의 감정이 급하다는 느낌은 다 붙여놓고 보니 알겠더라.

마지막 승재의 선택을, 불완전의 사랑을 완전하게 마무리 짓는 최선이라고 믿는 것인가. 내 주변에는 이상하게도, 물론 승재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지만, 십년 이상 한 여자만을 기다리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직도 그런 이들이 있다는 것을, 현대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사랑일지라도 그들이 결코 틀리지 않다는걸 보여주고 싶었다. <동감> 때도 사랑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아직도 모르겠다. 사랑이 무엇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준비 중인 작품은. <화성…>에 관해서는 이제 뭐가 잘못되고, 뭐가 잘되고 하는 개인적인 분석은 끝난 것 같다.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많았는데 <동감> 끝나고 중압감 때문인지 결국 잘 풀어내지 못한 부분이 크다. 다음 작품은 첫 작품과 두 번째 작품에서 잘못했던 것을 거울삼아 더 열심히 할 거다. 5월 안에 시나리오가 나오는데 로맨틱코미디다. 이제는 휴지기를 갖기보다는 호흡을 빨리 가져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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