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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의 슬픈 자기고백,찰리 채플린의 <라임라이트>

Limelight, 1952년감독·출연 찰리 채플린EBS 6월29일(일) 낮 2시

리처드 애튼버러 감독의 <채플린>(1992)은 채플린에 관한 전기영화였다. 1950년대 미국 FBI는 채플린을 ‘공산주의자’로 규정해 입국을 거부했으며 그 역시 돌아가길 원치 않았다. 남은 여생을 유럽에서 보내기로 한 채플린은 과거의 화려했던 시간을 뒤로 한 채 미국을 등졌다. 명예회복이 이뤄진 것은 1972년이었다. 아카데미에서 공로상을 받기 위해 LA로 돌아간 것이다. <채플린>의 마지막 장면은 이 배우가 아카데미 식장 무대에 서 있는 것이다. 어두운 실내에서 객석의 사람들은 그의 전성기 시절 영화 장면을 보고 박장대소한다. 채플린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아무도 그가 우는 모습을 볼 수 없다. <라임라이트>는 무성영화 시대 코미디 배우였던, 채플린의 자전적 영화다.

‘어느 발레리나와 광대의 이야기’. <라임라이트>는 이렇게 서두를 장식한다. 과거에 코미디언으로 이름을 날렸던 칼베로는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있다. 어느 날 같은 건물에 살던 테리가 자살을 기도한 것을 발견한 칼베로는 그녀를 간호한다. 테리는 한때 무용수였지만 지금은 제대로 걷는 것조차 어렵다. 칼베로는 그녀에게 용기를 주고 다시 재기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시간이 흐르고, 발레리나로 성공한 테리는 칼베로가 일할 수 있게 기회를 준다. 아쉽게도 그에게 허락된 시간은 많지 않다. <라임라이트>는 황혼기에 접어든 배우 채플린의 걸작이다. <시티라이트> 시절까지 무성영화를 고집했던 그는 더이상 입을 열길 주저하질 않는다. 영화의 대사는, 두고두고 음미할 만하다. 칼베로라는 퇴락한 코미디언을 연기하는 채플린은 연기라는 직업에 대해 “우린 영원한 아마추어야. 거기서 벗어나기엔 인생은 너무 짧아”라고 뇌까린다. 그리고 자살을 기도한 여성에겐 “혹시, 별들이 자기 궤도에서 벗어나는 걸 본 적 있나?”라며 되묻는다. 또 관객을 웃기는 일이 얼마나 모순되고 흥분되는 것인지 수줍게 고백한다. 영화에서 채플린은 무성영화 시대의 또 다른 위대한 배우 버스터 키튼과 공연한다. 두 배우가 무대에서 벌이는 무언의 코미디는 <라임라이트>에서 빛나는 순간이다.

<라임라이트>는 채플린의 어린 시절에 관한 기억을 담는다. 그는 어려서 가난과 배고픔을 뼈저리게 겪었으며 불우했던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연극무대에 올라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재능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법을 배웠다. 영화는 런던을 배경으로 하면서 빈곤과 슬픔, 그리고 희망의 드라마를 구성한다. “오늘날 채플린은 다빈치에 비유된다.” 장 뤽 고다르는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영화에서 채플린은 각본과 연출, 영화음악과 무용안무 등 작품에 관한 완벽한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다. 스스로 영화적 인간임을 뽐내고 있는 것이다. <라임라이트>는 1950년대에 만들어진 흑백영화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 중 하나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