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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 코드로 풀어보는 <원더풀 데이즈>의 성공 가능성 [1]
김현정 2003-07-25

애니메이션의 `쉬리` 될까

7개 코드로 풀어보는 <원더풀 데이즈>의 성공 가능성

<원더풀 데이즈>가 드디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7년에 걸친 제작기간과 126억원에 달하는 제작비, 독창적인 제작기법으로 관심을 모아온 <원더풀 데이즈>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한 고비가 될 만한 작품이다. <원더풀 데이즈>가 스스로 길을 닦아가면서 치른 모험은 애니메이션에 하나의 돌파구를 열 수도 있겠지만, 실패한다면 그 손실이 가져올 파장은 엄청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대작이 실패할 때마다 몇년 동안 그 여파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한국의 장편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는 그 쓰라린 기억을 되풀이하게 될까, 아니면 한국 애니메이션에 ‘원더풀 데이즈’를 가져올 수 있을까. <씨네21>은 <원더풀 데이즈>가 내놓은 승부수를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조심스럽게 그 미래를 짐작해 보았다. - 편집자

1 | 기법과 이미지의 신대륙

김문생 감독은 “아주 가끔, 눈이 부시도록 맑은 날…”이라는, 티저포스터에도 실린 문장 하나를 토대로 <원더풀 데이즈>를 시작했다. 파란 하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영감을 받은 글라이더, 그늘진 미래도시의 거리. 비가 그치지 않는 AD 2142년 지구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이 포스터는 하늘이 맑게 갠 단 한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아주 다른 세계에 속해 있는 조각들을 봉합한 그림이기도 하다. 실사로 촬영한 하늘과 평면적인 2D의 글라이더, 미니어처와 3D가 혼용된 미래도시가 프레임 하나에 녹아 있는 것이다. 몇겹의 그림을 겹쳐가면서, <원더풀 데이즈> 제작진은 여러 기법의 질감을 살리는 방식으로 엄청난 규모의 할리우드 애니메이션과 대적할 수 있는 희망을 발견했다.

<원더풀 데이즈> 제작진이 이런 독창적인 기법을 시도한 까닭은 의외로 <파이널 환타지> 때문이었다. 3D 기술만으로는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부어도 할리우드를 따라잡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그 때문에 가우디의 건축물을 기초로 삼은 에코반과 레비우스 우즈의 해체주의 디자인을 청계천 골목에 응용해 완성한 마르는 미니어처로, 미묘한 색감과 존재감이 중요한 구름은 실사촬영으로, 3D보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필요한 인물은 2D로 제작하기로 했다. 에코반 경비대와 마르 레지스탕스가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은 그 조화가 가장 돋보이는 부분 중 하나다. 역동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3D로 만든 도끼가 미니어처 세트를 가르며 2D인 제이 옆에 박히는 이 장면은 <원더풀 데이즈>가 자랑스러워 할 만한 결실. 깊이가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번져 기법간의 경계를 지워가는 <원더풀 데이즈>의 영상은 한국 애니메이션이 이룩하지 못한 경지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감독이 20년 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파리, 텍사스>에서 가져온 황폐한 대지와 흐린 안개 속을 질주하는 제이의 바이크는 분명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감정을 품은 장면이다. <원더풀 데이즈>는 세심한 손길을 거친 테크놀로지라면 정서에도 호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이다.

2 | 제작기간 7년, 제작비 126억원 ‘사상 최대’

“블루캡에서 후반 작업할 때 김기덕 감독을 만났는데, 내가 1편 만드는 동안 4편 째 만들고 있더라.” 애니메이션의 평균 제작기간이 실사영화보다 길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원더풀 데이즈>의 항해는 참으로 지난했다. 기획에 들어간 96년의 프리프로덕션 단계부터 꼽으면 7년째. 2000년 2월 미니어처 제작부터 시작된 메인 프로덕션만 따진다 해도 만 3년 반이 걸렸다. 적확한 항로를 알 수 없는 모험이었던 만큼, 이미지의 신대륙을 찾아가는 과정의 시행착오도 불가피했던 탓이다. 이를테면 미니어처로는 에코반의 웅장한 스케일을 제대로 살릴 수 없다는 판단하에, 촬영 직전 세트를 포기하고 3D컴퓨터그래픽으로 대체한 것도 그 한 예. 전체적인 레이아웃에 맞는 세트를 제작하려면 스토리보드가 정확해야 하고, 그러려면 완전한 시나리오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문제는 결국 프리프로덕션으로 귀결된다.

<원더풀 데이즈> 시나리오의 최종 수정이 끝난 것은 2002년 가을. “순서대로 하는 게 최상이지만, 쉽지 않다.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는 투자가 안 된다.” 프리프로덕션에 대한 투자가 잘 이뤄지지 않는 국내 환경에서, 완성된 시나리오보다 데모부터 선보이는 방식으로 투자자를 유치하는 경우가 많은 게 창작애니메이션의 현실. <원더풀 데이즈>의 경우, 99년 데모 제작을 위해 인력을 모은 뒤 메인 프로덕션에 박차를 가하기까지 그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들었다. 제작 스탭만 해도 350여명, “CG 파트만 25명이 3년간 일했다. 1인당 100만원씩만 인건비를 계산해도 1년이면 3억원”이라는 황경선 PD의 말이 아니더라도 제작비가 불어난 과정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12만매의 동화와 3D의 외주 제작, 소니카메라와 프레지어 렌즈의 4개월 대여료 10억원, 다양한 질감의 이미지를 합성하기 위한 장비 인페르노를 1년간 사용하는 데 4억원 등 제작기법에 따른 제작비 상승도 만만치 않다. 제작사 양철집이 밝힌 실제작비는 80억원. 20억원은 국내 마케팅, 나머지는 해외 세일즈용 더빙 및 마케팅 비용이다. 하지만 프리프로덕션부터 차근차근 밟으며 시나리오 수정에 들어간 돈과 시간을 절감할 수 있었다면, ‘한국 영화사상 초유’라는 126억원의 제작규모는 줄어들었으리라는 게 업계의 중론. 어마어마한 제작비는 세계 시장에 승부수를 던질 만한 영상을 길러내는 자양분이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 승부를 아슬아슬하게 만드는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3 | 헐거운 구성과 빈약한 스토리라인

오랜 산고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질감의 이미지를 조합하는 세공의 매력에 비해 군데군데 빈틈이 보이는 이야기는 가장 많은 아쉬움을 샀던 지점. 갈등구조가 단순하고, 인물들의 감정표현이 적은 드라마의 전개는 느슨하고 밋밋한 편이다. 오염물질을 에너지원으로 하는 인공 도시 에코반, 에코반의 존속을 위해 희생될 위기에 처한 마르, 각자의 터전을 지키는 적으로 재회한 두 연인 제이와 수하. 가보지 않은 미래세계에 대한 시각적인 이미지의 구성은 풍부하지만, 에코반과 마르가 어떤 공간인지에 대한 이해나 주인공들의 애틋한 감정에 대한 몰입을 유도할 만한 묘사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유기체적이고 현대적인 에코반과 거친 자연의 모습을 띤 마르의 풍경을 활보하는 카메라워크의 역동적인 장관 속에서, 절제된 대사와 표정으로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들은 정물적인 이미지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김문생 감독은 “대사에 의존한 영화보다는 이미지에 의한 구성을 시도하고 싶었다”고. “비는 현실, 안개는 회상과 과거에 대한 기억, 번개는 생존, 바람은 변화, 햇살은 이상이 찾아온 날, 5장의 구조를 가진 시적인 애니메이션”이 애초의 구상이었다. 실험영화냐, 드라마가 약하다는 주위의 지적에 시나리오를 보강하기 위해 한국과 미국의 작가들에게 의뢰해가며 거듭 수정을 거쳤지만, 3년이 지나도록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사실 국내에서 장편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써본 사람은 드물다. 써보지 않았기 때문에 추상적으로 쓰는데, ‘어둠이 컬러를 도려내는 침묵’ 같은 묘사를 보고 어떻게 콘티를 짜겠나.” 결국 감독이 직접 다락방에서 칩거하면서 사랑 이야기 위주로 풀어보고자 했던 시도가 지금의 버전. 제작 막바지까지도 시나리오를 다듬고, 편집실에서 곽재용 감독의 조언을 들어가며 대사를 일부 손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남은 눈치다. 인물 중심, 수하의 동선을 쫓아갔어야 한다는 어느 관객의 평에 수긍이 갔다면서, “관객은 울고 웃을 준비를 많이 하고 보는데, 그 감정을 끌었다 놨다 하지 못하고 좀 일방적으로 보게만 한 것 같다”는 게 김문생 감독의 말.

7개 코드로 풀어보는 <원더풀 데이즈>의 성공 가능성 [1]

7개 코드로 풀어보는 <원더풀 데이즈>의 성공 가능성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