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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자신의 죽음을 봤어? <폭주 기관차>
조성효 2003-08-12

나는 대학생활 전반부의 대부분을 ‘그분’과의 처절한 투쟁에 쏟아부었다. 친구들이 ‘그분’의 존재유무로 고민하고 있을 때, 나의 고민은 ‘그분’을 따를 것인가에 맞추어져 있었다. 즉 ‘그분’의 존재를 알고 있음에도, 그분의 품에 안기는 순간 영원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감히 ‘그분’과의 전쟁을 선포했던 것이다. 연못 속의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와선 살 수 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면 기꺼이 물 밖에서 죽는 쪽을 선택하려 하였다. 내가 읽던 책들이나 보던 영화들은 모두 나의 전쟁에 동원되었고 나는 ‘그분’의 흠집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런 시절, 어느 날 친구들과 어울려 영화를 보러 갔다. <폭주기관차>(Runaway Train)를 선택한 이유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각본을 콘찰로프스키가 연출했다는 것을 신문광고에서 읽어서였다. 일본의 거장과 한때 타르코프스키만큼이나 촉망받는 감독과의 결합이라니, 뭔가 있어 보이지 않았겠는가? 영화가 시작되고 나는 곧바로 존 보이트가 연기한 매니라는 캐릭터에 빠져들었다. 매니가 감옥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욕망을 내가 ‘그분’으로부터 달아나고자 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면서 말이다. 영화 속에서 매니는 결코 영웅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자신도 어쩔 수 없는 한명의 인간으로서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폭주기관차 내에서 동료 벅과 지저분하게 다투게 된다. 그런데 갑자기 싸움은 정지되고 비발디의 <글로리아>가 연주되는 가운데 묘한 공기가 흐른다. 벅이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나도 울음을 터트렸다. 그때 나는 내가 왜 울었는지 바로 알지는 못했다.

매니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감옥의 간수가 호락호락하게 그를 보내주지 않았다. 간수 역시 목숨을 걸고 헬기를 이용하여 폭주기관차에 동승을 한 것이다. 매니는 간수와 사투를 벌이고 결정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지만 그를 죽이지는 않는다. 결국 매니는 간수를 포함한 세 사람을 안전한 차량에 남겨두고 기차를 분리시킨다. 그리고 자신은 눈발이 휘날리는 기차 지붕 위에서 죽음을 항햐여 두팔을 벌린다. 영화는 끝나고 불은 켜졌지만 나는 얼굴을 들 수 없었다. 10분가량을 계속 그 자리에 앉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이후로도 나는 이만큼 나를 눈물나게 하는 영화를 보진 못하였다). 친구들은 영문도 모른 채 조용히 그런 나의 등을 두들겨주었다. 매니의 죽음 속에서 나는 나의 죽음을 미리 보았다. 비발디가 ‘그분’을 찬양하며 작곡하였을 글로리아 D장조 가 앤딩에서 또다시 흘러나왔지만 그 곡은 마치 나를 위한 장송곡처럼 들렸다.

이후 나는 그분과의 장기전쟁에서 지쳐버렸고 항복을 선언했다. 물 밖에서 죽는다고 ‘그분’과의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후 비디오테이프로 <폭주기관차>를 두세번 더 봤지만 매니 속에서 나의 죽음을 다시 볼 수는 없었다. 사실은 또다시 나의 죽음을 보게 될까봐 그런 생각을 억지로 떨쳐버렸는지도 모른다.

지난해 베니스영화제에서 콘찰로프스키의 <바보들의 집>을 보았다. 역시 아무도 울지 않았던 장면에서 나는 또다시 울 수밖에 없었다. 비록 황금사자상은 <막달레나 시스터즈>의 피터 뮬란이 가져갔지만 콘찰로프스키에게 대상을 선사한 심사위원들에게 감사했다. <폭주기관차>는 비디오로는 출시되어 있지만 DVD는 아직 국내 출시되지 않았다. 소문에 의하면 아직 DVD 판권을 가진 곳이 없다나. 혹시 발매가 되더라도 구입하게 될는지는 미지수다. 나에겐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처절한 전투 중에 바라보았던 영화이고 그 기억을 일부러 떠올리기 싫었기 때문이다. 영화 <폭주기관차>를 생각하지 않을 때, 나는 그럭저럭 현재의 삶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십중팔구 지금과 같은 어쩡쩡한 삶을 나는 끝까지 가져갈 것이다. 그러다 재수 좋으면 ‘그분’의 품에 안길지도 모른다. 그전까지는 그냥 이렇게 영화나 보면서 살란다. 담배 한대에 술 한잔 곁들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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