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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 완전정복 [3]

진짜 현실을 볼 수 있을까?

<카우보이 비밥> 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

Profile | 1965년 교토 출생 · 선라이즈 입사 · 제작진행 스탭을 거쳐 <기갑엽병 메로우링크> <건담 0083 스타더스트 메모리즈> 연출 및 그림 콘티를 담당 · <마크로스 플러스> <카우보이 비밥> <카우보이 비밥: 천국의 문> <애니매트릭스: Kid’s story> <애니매트릭스: Detective story> 감독

모두들 농담으로 듣지만, 애초 <카우보이 비밥>에서 그가 그리고 싶었던 건 이소룡의 정신세계였다. 빈센트와의 대결장면에서 스파이크가 보여준 포즈는 그냥 나온 게 아니었던 것이다. “영화판보다 빨리 감독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애니메이션계에 발을 들였다고 말하는 이 사람은,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역시 열정은 숨길 수 없는 것일까. 이른 아침 인터뷰에 몽롱한 상태였던 와타나베 감독은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무르익어갈수록 활기차게 변했다.

<카우보이 비밥: 천국의 문>이 세상에 나온 지도 벌써 2년이 되어간다. <카우보이 비밥> 이전과 이후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나. 여전히 돈은 별로 없지만 여러 사람들이 지원을 해주는 덕분에 좋아하는 것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지금은 <사무라이 참푸르>(SAMURAI CHAMPLOO)라는 새로운 TV시리즈를 만들고 있다. ‘참푸르’는 오키나와 지방의 고유명사로, 짬뽕처럼 이것저것 넣고 섞어서 만드는 요리 이름이다. 사무라이물이지만 고정관념을 벗어난, 그야말로 이것저것을 집어넣은 참푸르 요리 같은 작품이 될 것이다. 배경은 에도 시대로, 말투나 행동거지는 모두 현대적이다. 일본의 옛날영화를 즐겨봤는데, 이번 시리즈에서 그 영향이 많이 드러날 것 같다. 방송사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내년부터 방영될 예정이다. 내가 기획하고 각본 쓴 작품이다. 미소녀나 미소년이 나오는 종류는 전혀 아니다. (웃음) 자유롭게 만들 수 있어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음악은 힙합이고 이번에도 간노 요코에게 음악을 부탁했다.

장르 이동에 무척 능숙한 것 같다. 추리, 액션, 로맨스, 미스터리…. 그때그때 이야기에 가장 적합한 장르를 적용시킨다. 원래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편인가. 영화를 볼 때도 특별히 장르를 가려서 보는 편이 아니다. 옛날부터 메이저영화부터 독립영화까지 가리지 않고 봤다. 물론 취향은 있다. 요즘 할리우드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고 1960∼70년대의 액션영화나 누벨바그를 비롯한 유럽영화, 필름누아르나 탐정물도 좋아한다. 홍콩의 오우삼 감독도 좋아한다.

굉장한 영화광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사실 애니메이션은 그렇게 많이 본 편이 아니고 라이브 액션을 많이 봤다. 그래서 감독이 되고 싶었고, 일본에서는 애니메이션 감독이나 실사 감독이나 그다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이쪽으로 오게 됐다. 솔직히 애니메이션쪽이 훨씬 빨리 감독이 될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왔다. 잔머리를 굴린 셈이다. (웃음) 일본에서는 실사 감독이 되려면 무척 오랫동안 바닥 일을 해야 하니까.

다른 감독에 비하면 참여한 작품이 많은 편은 아닌데…. 연출부를 오래했다. 감독 아래서 TV시리즈 한편 한편을 관리하는 일인데 이걸 오래했다. 그러나 역시 위에 감독이 있어서 자유롭게 작품에 참여할 수 없었다. 마음에 드는 캐릭터가 있어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었고, 그래서 내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마크로스 플러스>에서 처음 감독 데뷔를 했지만 가와모리 감독과 공동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반밖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카우보이 비밥>에서 비로소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감독의 작품에는 언제나 기억에 얽매여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기억이 봉인되거나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특별히 기억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나. 나 스스로가 기억에 얽매여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기억’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흥미가 있었다. 인간의 과거라는 건 기억 속에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억에는 틀린 부분이 있다. 자신의 기억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런 게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라이브 액션에서는 배우가 가지고 있는 과거가 캐릭터에 배어 나오지만, 애니메이션은 그림이니까 그럴 수 없다. 그래서 과거를 넣어서 깊이를 우려내려고 노력했다. 과거가 소개될 기회가 없는 캐릭터라도 경력이나 과거를 설정하고 생각하면서 만들었다. 다음 작품에서도 역시 이런 특징은 나올 것이다.

<카우보이 비밥>의 연출은 정말 놀랍다. 별로 고민하지 않고 그런 연출이 나오는 건지 궁금하다.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는 편인가. 아니다. 시간 걸린다. (웃음) 업무량이 많은 탓에 무척 고생하면서 잠도 안 자고 만들고 있다. 굉장히 힘든 일이다. 그러나 발상은 그냥 저절로 나오는 편이다. 어릴 적부터 영화를 많이 봤기 때문에 그런 연출이 나오는 것이냐고들 묻는데, 생각해보면 그건 또 아니다. 그렇게 치자면 많은 영화를 섭렵한 평론가가 제일 뛰어난 감독이 된다는 소리가 되지 않나. (웃음)

" 라이브 액션에서는 배우가 가지고 있는 과거가 캐릭터에 배어나오지만, 애니메이션은 그림이니까 그럴 수 없다. 그래서 과거를 넣어서 깊이를 우려내려고 노력했다. "

<카우보이 비밥> 하면 감노 요코의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서로 치밀하게 논의하는 편이 아니라 각자 영감대로 만든 뒤 나중에 맞춰본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영상과 음악이 그토록 조화를 이룬다니,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그건 필링이다. 말하지 않아도 감각으로 통하니까. 대부분의 작업이 그랬다. 음악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아도 필링으로 전해지길 바랐다. 그게 안 되면 아무리 설명해도 전해지지 않는다. 결국 필링이 맞느냐, 안 맞느냐의 문제다. 영상을 음악과 맞추는 것은 물론 어려웠다. 그러나 모두 나중에 맞추는 것은 아니다. 가령 음악이 계속 나오는 장면에서는 미리 삽입할 곡을 정하고 거기에 맞춰 그림 콘티를 짠다. 편집에서 그 음악의 길이에 맞춰 장면을 편집하는 것이다. TV시리즈 5화에서 스파이크가 창문을 부수고 떨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과거로 플래시백 하는 장면인데, 그게 1분40초다. 거기에 들어가는 음악이 1분40초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딱 맞는 것이다.

그럼 음악이 먼저 완성된다는 소리인가. 대개 그렇다. 일단 먼저 완성된 음악이 있고, 점점 새로운 곡이 추가된다. 그렇게 병행해서 음악 작업은 진행됐다. <마크로스 플러스> 때 간노 요코를 처음 알게 됐는데, 그때도 서로 치밀하게 논의한 편은 아니었다. <카우보이 비밥>에 대해 말하자면, 처음에 내가 이런 작품이다, 이런 캐릭터가 등장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것만 듣고 간노 요코가 멋대로 곡을 만들어왔다. 서스펜스 1, 2, 3이라든가 액션 테마 등 자세한 설명을 의뢰서에 썼건만 그런 건 전혀 보지 않고 멋대로 만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내가 그 곡을 듣고 영감을 받아서 새로운 장면을 만들게 됐다. 그걸 간노 요코에게 영상으로 보여주면 이번에는 그쪽에서 영감을 받아서 새로운 곡을 만들어오고…. 이런 식이었다. 캐치 볼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셈이다. 그녀는 0.5초 안에 영감으로 곡을 만든다.

감독이 생각하는 간노 요코의 음악은 어떤 것인가. 뭐랄까…. 자기 입으로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음악을 만들고 있다고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 음악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사랑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애정이 담겨 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나, 생각한다.

음향이나 사운드에 특별히 신경을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 작품에서 사운드는 반 이상의 역할을 한다. 영상과 사운드를 믹스할 때 특히 주의하는 것은 사운드가 영상의 설명에 그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가령 슬픈 장면에서 슬픈 음악이 흐르면, 음악이 영상을 설명하는 역할만 할 따름이다. 사운드 이펙트에서도 그림을 설명하는 것에 그치는 수준을 넘어서고 싶었다. 소리와 영상이 안 맞아도 좋으니까, 소리가 영상에 종속되는 게 아니라 50:50의 관계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무척 실력있는 사람에게 의뢰했고, 그림에 없는 소리를 넣어달라고 특별 주문했다. 그림에 있는 소리만 넣는 것은 평범하지 않나. 그림에는 안 나와도 화면 밖에는 세계가 있으니까 거기에 있는 걸 상상해서 넣어달라고 했다. 그걸 잘 생각해서 만들어줬다. 예를 들면 TV시리즈 1화의 안약을 흥정하는 장면에서 파리가 붕붕 날아다니는 소리가 났는데, 그림에 파리는 없었다. 다만 여기는 이 정도로 더러운 곳이니까 파리 정도는 있을 것이라는 상상에서 만든 것이다.

<카우보이 비밥> TV시리즈부터 극장판까지, 조연으로 세명의 노인이 줄곧 등장한다. 그들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느껴졌는데, 이건 오해인지. 어떤 캐릭터가 가장 좋으냐고 물으면 나는 세명의 노인을 꼽는다. 원래 1화에서 잠깐 나오고 말 예정이었는데, 만들고보니 재미있어서 계속 내보내게 됐다. 화성, 금성, 목성, 배경은 다른데 계속 여기저기에서 나온다. (웃음) 어디를 가도 그들이 있다. 심지어 극장판에서는 비행기를 타고 지구를 구해낸다. 사실은 화성이지만. (웃음)

어릴 적부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진짜일까’라는 의문을 가져왔다고 말한 적 있다. 그 주제는 <카우보이 비밥>을 거쳐 <애니매트릭스>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난 셈인데…. 그렇다. <매트릭스>를 처음 봤을 때 ‘나랑 비슷한 녀석이 있군’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애니매트릭스>를 만들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참으로 신비한 느낌을 받았다. 워쇼스키 형제 역시 <카우보이 비밥> 팬이어서, 그들도 ‘일본에 비슷한 녀석이 있군’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웃음)

지금 이 세계는 진짜라고 생각하나. 현실이란 뭐라고 생각하나. 모르겠다. 그걸 알고 싶어서 작품을 열심히 만들고 있다. (웃음)

만일 <매트릭스>의 앤더슨과 같이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걸 선택할 건가. 깨지 않는 꿈을 꿀 텐가, 냉혹한 현실이라도 진실을 선택할 텐가. 어려운 선택이다. 정말은 현실을 보고 싶다. 그러나 과연 현실을 볼 수 있을까? <애니매트릭스>를 작업할 때 생각한 건 현실을 선택한다 해도 그게 과연 현실일까, 진짜 현실이라고 불리는 세계는 거짓말일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따라서 어느 쪽을 선택한다 해도 똑같을지도 모른다. <매트릭스>식으로 보자면, 현실 속에 허구가 있고, 허구 속에 현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애니매트릭스>에서 두편을 감독했다. <Kid’s story>는 워쇼스키 형제가, <Detective story>는 본인이 직접 각본을 썼는데, 아무래도 후자쪽이 만들기 쉬웠을 것 같다. 사실은 그 반대다. <Kid’s story>는 워쇼스키가 쓴 각본이라고 해도 완전히 완성된 게 아니라 이렇게 해주었으면 하는 희망 정도가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거기에만 맞추고 나머지는 내 마음대로 만들었다. 그게 워쇼스키의 마음에도 들어서 그대로 가게 됐다. 원래 나는 이 한편만 만들 예정이었다. 그런데 다른 감독 작품이 잘되지 않은 바람에 시간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한편 더 만들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Kid’s story>가 마음에 드니까 자유롭게 만들어보라는 소리에 오리지널 스토리를 썼는데, 뜻밖에 엄청나게 많은 리테이크가 나왔다. 오리지널 <매트릭스> 세계관에 맞춰서 <Detective story>를 수없이 고쳤다. 정말 고생했다. 이런 이유로 <Kid’s story>를 만들 때가 훨씬 편했다.

흑백 사진 이미지를 특별히 선호하는 이유가 있나. 옛날영화의 이미지를 좋아하는 탓도 있지만 원래 모노톤을 좋아한다. 사실은 작품 전체를 완전하게 모노톤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 사람들이 보지 않을 것 같다. (웃음) 이런 생각을 지지해주는 스폰서가 나타난다면 해보고 싶다. (웃음)

전체적으로 작품이 밝은 편은 아니다. 혹시 염세주의자인가. 사실 젊었을 때는 그랬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낙천적으로 변하더라. <카우보이 비밥: 천국의 문>이 염세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을 등장시킨 것은 삶과 죽음이 나의 커다란 주제이기 때문이었다. 죽음을 부정적이거나 염세적인 이미지로 여기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삶과 죽음은 서로 뗄 수 없는 것이다. 삶을 그리려면 죽음을 그려야 하고, 죽음을 그리려면 삶을 그려야 한다. 죽음을 다뤘다고 염세적인 것은 아니다. 김일림/ 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 illim@korea.com

▶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 완전정복 [1]

▶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 완전정복 [2]

▶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 완전정복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