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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 완전정복 [2]

루팡과 고우사토를 불러오다

와타나베 신이치로는 우리에게 ‘현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요즘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건 현실감이 희박해졌다는 것이다. 좋지 않다고는 생각하지만, 나 자신도 그런 시대에 살고 있으니. 현실과 허구의 경계선이 점점 없어지고 있지 않나. 방송을 할 속셈으로 머리를 잘라버리는 녀석들도 있고, 허구의 세계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 녀석도 있고. 뭔가 현실에서 살고 있다는 실감 자체가 점점 옅어지고 있어서, 자기 자신조차 때로는 좀 의심스럽지 않나. 아마, 이런 생각도 작품 속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한 대담에서도 와타나베는 ‘<이지 라이더> 같은 영화를 오락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요즘 세태’를 한탄한다. 오락이면서도, 현실에 굳건하게 뿌리를 박고 있었던 영화와 사람들이 있었던 과거를 동경한다. 그것이 와타나베 신이치로이고, 스파이크 스피겔이다.

와타나베 신이치로는 살아 있는 사람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 안에 피가 흐르고, 아니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의 모험 속에 어떤 리얼리티가 있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카우보이 비밥>의 이해를 위한, 몇 가지의 전제가 있다. 하나는 <루팡 3세>다. 몽키 펀치 원작의 만화를 처음으로 TV시리즈로 옮긴 오오스미 마사아키의 작품. 와타나베 스스로, 유일하게 영향을 받았다는 오오스미 판 <루팡 3세>에는 ‘고독하기 때문에 떠날 수 없다’는 비일본인 감각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뭔가 눈물이 나고 매달리거나 하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자신의 고독을 떠안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비감의 태도가 아니다. 서로 깊이 들어가지는 않지만, 그들은 분명 하나의 의사 가족을 이루고 있다. <카우보이 비밥>의 비밥 식구들이 그렇듯이.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지 않고, 타인의 내부에는 필요 이상 들어가지 않는다”.(오오스미 마사아키)

와타나베 신이치로가 영향을 받았다는 또 하나의 작품은 79년에 방영된 마쓰다 유사쿠 주연의 TV드라마 <탐정 이야기>다. 현재 ‘컬트’로 추앙받는 <탐정 이야기>는 하드보일드와 나르시즘으로 장식된, 기묘한 탐정 이야기다. 마지막에 주인공 고우사토는 죽었지만, 다음 장면에서 다시 군중 속을 걸어간다. “그건 이상한 엔딩방식이었다. 그는 거기서 죽었을지도 모르고, 그 허구에서는 죽었을지도 모르지만, 또 하나의 세계, 말하자면 시청자 속에서는 계속 살아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탐정 이야기>에 대해서 다카하시 미노루는 이렇게도 말한다. “갈피를 잡을 수 없더라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잃어버린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서. 그곳에 있던 것은 60년대를 향한 노스탤지어와 불모의 80년대에의 환멸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탐정 이야기>의 마지막회 각본을 <루팡 3세>의 각본작가 중 하나였던 이야가 유키가 썼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애니매트릭스>에서 와타나베 신이치로가 만든 단편 하나의 제목은 <디텍티브 스토리>다.

와타나베 신이치로는 <루팡 3세>와 <탐정 이야기>의 인물들을 우리 시대로 가지고 왔다. ‘현실과 꿈이 혼연일체가 된 시대’로 온 루팡과 고우사토는, 대중의 히어로 혹은 어릿광대가 된다. 이미 과거의 영웅은 사라졌고, 반영웅조차도 몰락했다.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도, 실사영화의 매력에 사로잡힌 와타나베는 <카우보이 비밥>을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변형을 시킨다. “전부터 의식하고 있었던 것은 세련되게 하자! 는 것인데, <루팡 3세>도 그렇지만, 역시 무거운 이야기를 무겁게 이야기하는 것은 별로 세련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뭔가 본질적으로는 무거운 요소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가볍게 보이도록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카우보이 비밥>의 매력은 그것이다. 가벼우면서도,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 현실의 무거움.

스파이크 역시 그렇다. “주인공답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처음부터 있었다. 몇번이고 시나리오 작가와, 스파이크 캐릭터에 좀더 힘을 주거나 활약상을 두드러지게 해서 개성을 강렬하게 표출시키자는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역시 그를 너무 내세우는 것에는 저항이 있었던 것 같다. 몇 가지 행동만으로 이해가 가능할 정도로 단순명쾌한 캐릭터로 하는 건 이제 됐다, 그만두자, 라는 생각이 있었다. 현재의 인간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좀더 지켜보게 한 뒤 그 캐릭터를 알게 하는 쪽이, 좀더 인간처럼 보이지 않을까. 그리고 기본적으로 캐릭터성을 높이는 것과 자신들의 멘털리티가 드러나는 것의 미묘한 밸런스가 있어서, 사실 우리 자체가 보통 생활할 때, 그다지 임팩트 있는 강렬한 인간들이 아닌지라, 자신에 가까워질수록 캐릭터로서는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카우보이 비밥>의 경우엔 뭐,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라고 생각한 거다. 그러니 ‘약하다’고 누군가가 얘기한다면, 그 말이 맞다. 어쨌든, 현실의 인간 같은 존재감을 나타내고 싶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마음의 문제를 제기한 뒤 각각의 오리지널리티를 잃지 않은 채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한 <소녀혁명 우테나> <기둥전함 나데시코> <아키하비라 전뇌조> <레인>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등이 출현한 것도 <카우보이 비밥>의 전초전이었다. <카우보이 비밥>은 그 결과로서, 혹은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서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현실의 인간, 현실에 발을 디딘 애니메이션이 바로 <카우보이 비밥>이다. 와타나베 신이치로는 살아 있는 사람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 안에 피가 흐르고, 아니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의 모험 속에 어떤 리얼리티가 있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살고 죽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단순히 인간이 죽는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닌, 가공의 세계이긴 하지만, 삶과 죽음을 그 나름대로의 리얼리티를 가지고 그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스파이크는 이미 한번 죽었다가 살아났다. 그리고 비밥에서 꿈속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 세계는 음악처럼 자유롭고 유동적이다.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작품들에서 음악을 도맡고 있는 간노 요코의 말을 빌린다면 ‘이 세계에는 뭐든지 있다라는 기분이라든지, 인종이 엉망진창으로 섞여 있으면서도 다들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 살고 있다는 느낌이라든지, 우주가 배경인데도 전혀 미래적이지 않고 오히려 폐쇄적인 분위기가 난다든지’ 하는 느낌이다.

그런 세계이기 때문에 스파이크는 꿈을 꾸듯이 살아간다. “스파이크는, 세상에서, 보통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캐릭터다. 세상에 무관심한 듯 있으며, 이런저런 것들에도 거리를 두고 지켜볼 뿐이라는 듯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살아가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으로, 이 세계에 대해서 위화감과 결락감을 계속 가지고 있다.” 단지 생각이나 행동만이 아니다. 외모에서부터 스파이크는 두드러진다. 보통은 잘 모르겠지만, 스파이크의 얼굴이 클로즈업될 때 좌우의 눈은 다른 색을 띈다. “한쪽 눈이 의안이라고 하는 것은 처음부터 생각한 설정이다. 오른쪽이 지금을, 왼쪽이 과거를 보고 있는. 반절은 과거를 살고, 나머지 반절은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그 이유를 묻는다면, 인간이라는 건 과거를 전부 버리고 지금만 살아갈 수는 없다는 거다. 앰비밸런스한 곳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반절은 꿈속에서 사는 것처럼.”

와타나베 신이치로는 어릴 때부터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진짜일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카우보이 비밥>은 거기에 대한 하나의 답이고, 그는 앞으로도 같은 이야기를 할 것이다. <매트릭스>에서 꿈과 현실의 세계를 보는 것 못지않은 즐거움이, <카우보이 비밥>에는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고정된 답은 아니다. 이곳이 현실이라고 강변할 생각도, 저곳이 진짜 현실이라고 소리칠 의사도 없다. “흔히 듣는 말이, 우리는 퀴즈방송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니니까, 정답 같은 건 없다는 것이다. 그림이나 사진을 보고, 모두 같은 것을 느낄 리가 없지 않은가. 각각 다른 것을 느끼고, 그 나름의 해석이 있게 마련이다. 이 그림은 이렇게 보라는 식의 해설은 오히려 방해하는 것이 아닌가.” 와타나베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답을, 각자가 찾는 것이다. <카우보이 비밥>의 식구들은 저마다 비밥호에서 내려, 자신의 길을 각자 걸어간다. 개 한 마리 정도야 동행할 수 있겠지만, 꿈에서 깨어날 때는 누구나 혼자인 것이다.김봉석

▶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 완전정복 [1]

▶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 완전정복 [2]

▶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 완전정복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