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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 완전정복 [1]

<카우보이 비밥>의 감독 와타나베 신이치로가 한국을 찾았다. 국내 케이블방송에서도 방영된 <카우보이 비밥>은 애니메이션의 영역을 실사쪽으로 한 걸음 더 끌어당긴, 그러면서도 애니메이션의 자유로움을 잃어버리지 않은 독특한 작품이었다. 현실과 환상을 한 화면에 담았다고나 할까. 언제나 끼고 다니던 선글라스를 벗은 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이 말하는 ‘이야기와 현실’을 들어보았다. - 편집자

반절은 꿈속에서, 반절은 현실에서

애니의 새 지평 연 <카우보이 비밥>과 와타나베 신이치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

<카우보이 비밥>의 마지막 화에서, 죽으러 가는 스파이크를 페이가 말린다. 그 순간 스파이크는, 처음으로 진심을 말한다. “이 눈을 봐. 사고로 없어져서, 만들어 넣은 거야. 그때부터 나는 한쪽 눈으로는 과거를, 그리고 다른 한쪽으로는 현재를 본다구. 눈에 보이는 것만이 현실은 아냐, 그렇게 생각했어. 깨지 않는 꿈을 보려했지. 하지만, 어느샌가 깨버린 거야.”

<카우보이 비밥>이 첫선을 보인 것은 98년 4월 TV 도쿄를 통해서였다. 그러나 전 26화 중에서 12화만 방영되었고, 부득이하게 재편집된 부분도 있었다. 모든 에피소드가 방영된 것은 그해 10월 일본 위성방송 채널인 <WOWOW>를 통해서였다. <카우보이 비밥>은 위성간 게이트 사고로 지구에서는 더이상 사람이 살 수 없게 되고, 인류는 다른 별들로 이주한 2070년대를 무대로 한다. 하지만 어떤 별이나 지금의 지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어디는 사막이고, 어디는 정글이고, 어디는 타락한 도시다. 그곳에서 한때 중국계 마피아의 간부였던 스파이크와 경찰이었던 제트, 수십년의 냉동 상태에서 깨어난 페이와 천재 해커 겸 게으름의 왕 에드 그리고 천재견 아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떤 때는 인간드라마로, 어떤 때는 모험활극으로, 어떤 때는 필름누아르로. 그런 <카우보이 비밥>의 내용을 감독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말로 축약하자면 ‘네 사람과 한 마리의 이야기’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이후 등장한 <카우보이 비밥>은 종래의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특이한 질감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치밀하고 높은 완성도의 작화와 다양한 스타일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세련된 각본, 하드보일드풍으로 한껏 숙성된 세계관. 그리고 전형적이지만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절묘한 캐릭터가 잘 어우러진 애니메이션은 아무데서나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요소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멋진 TV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단순하면서도 순수한 목표를 완수시키기 위해 작용했다는 점이 대단한 것”이다. 완성도로 따지자면 <카우보이 비밥>은 그 무엇도 감히 따르기 힘든 하나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그 완성도에 끌려 <카우보이 비밥>을 보기 시작하면, 이내 중독되어버린다. 모든 에피소드의 제목은 노래 제목으로 되어 있고, 그 제목에 걸맞은 음악과 이야기가 펼쳐진다. 때로는 음악으로 모든 것이 전개되기도 해서, 마치 오페라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에 말려들어간다. ‘별거 아니야’라고 내뱉는 그들의 어깨 위에는 결코 내릴 수 없는, 묵중한 과거가 달라붙어 있었다. 무겁지 않은 듯 무겁고, 가볍지 않은 듯 가벼운 인물과 상황들이 연달아 펼쳐지면서, 즉흥 재즈 연주의 화려한 생명력처럼 <카우보이 비밥>은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꿈속에서만이 아니라, 현실의 거울로서도.

현실과 환상이 하나로

그 <카우보이 비밥>을 만든 것은 와타나베 신이치로. 일본 선라이즈의 제작 진행을 거쳐 <기동전사 건담 0083 스타더스트 메모리즈> 등을 연출했고 <마크로스 플러스>를 공동감독했다. <카우보이 비밥> 이전까지 와타나베 신이치로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과거의 작품 속에서도 그는 조금씩 자신을 투영하고 있었다. “인간이라는 것이 그렇게 단박에 끄집어내어지는 것이 아닌지라, 조금씩 꺼내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카우보이 비밥>에선 굉장히 많이 참고 억누른 게 사실이다”라는 말처럼 와타나베 신이치로는 <카우보이 비밥>에서도 많은 것을 참았다. 과거에는 더욱 그랬다. <마크로스 플러스>에서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싶은 이사무의 꿈을 드러내는 것 정도였다. 그 꿈을 위해서 이사무는, 모든 것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카우보이 비밥>은 와타나베 신이치로 없이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애니메이션이다. 그리고 <루팡 3세>와 실사영화 없이도. <카우보이 비밥>에서 두드러진 것 하나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전통적인 영화문법이다. 1965년생인 와타나베 신이치로는 애니메이션을 그다지 많이 보지 않았다고 한다. “실사든 애니든 구분하지 않고 보다가 취직할 무렵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우루세이 야츠라-뷰티풀 드리머> 등이 나와서 뭔가 애니는 자기 좋을 대로 이것저것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재미있어 보였다.… 그리고 애니쪽이 빨리 감독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라는 것이 애니메이션 지망의 변이다. 그는 <루팡 3세> 이외의 어떤 애니메이션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서도, 애니메이션은 결코 아이들만의 장난감이 아니라고 말한다.

<카우보이 비밥>은 와타나베 신이치로 없이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애니메이션이다. 그리고 <루팡 3세>와 실사영화 없이도. <카우보이 비밥>에서 두드러진 것 하나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전통적인 영화문법이다. 실사의 세계관으로 다듬어낸, 현실을 그려낸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애니메이션이 바로 <카우보이 비밥>이다.

실사의 세계관으로 다듬어낸, 현실을 그려낸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애니메이션이 바로 <카우보이 비밥>이다. 한 예로 제1화 <아스테로이드 블루스>는 방송을 거부당했다. 조직으로부터 현상금이 걸려 절망적인 도피행을 하는 커플의 이야기다. 라스트 신, 그들은 비행정을 타고 도망가려하지만, 뒤를 쫓는 적기(敵機)의 수에 여자는 절망한다. 그리고 마약에 미쳐버린 사랑하는 남자에게 총구를 돌린다. 조종석 안에서 선혈이 터져나오고, 여자는 스파이크의 눈앞에서 추격하던 포탄에 맞아 비행정과 함께 날아가버린다. “총을 쏘거나 하는 작품이 애니메이션에는 굉장히 많지만, 대체로 아주 멋들어지게만 보여진다. 하지만 총을 쏜 다음, 선혈이 낭자하고, 결국 아주 끔찍하게 죽는 인간들도 있다. 물론 이런 장면 때문에 아주 싫은 기분이 될 때도 있긴 하겠지만, 숨기지 않고 이런 부분도 있다는 것을 거짓없이 보여주고 싶었다.”

또한 애니메이션 자체의 발전도 <카우보이 비밥>의 탄생을 재촉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비평가인 다카하시 미노루의 말에 따르면 “장르영화가 번성할수록 그 속에는 장르를 뒤엎는 요소가 등장할 가능성을 간직한다. 표면은 장르영화의 틀을 따르는 듯하면서, 사실은 모든 지향점이 다른 오리지널리티를 가진 작품”들이 등장한다. 애니메이션이 번성하면서 수많은 장르가 만들어지고, 분화하면서 더욱 깊고 넓어진 90년대 말에는 반드시 <카우보이 비밥> 같은 작품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마음의 문제를 제기한 뒤 각각의 오리지널리티를 잃지 않은 채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한 <소녀혁명 우테나> <기동전함 나데시코> <아키하바라 전뇌조> <레인>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등이 출현한 것도 <카우보이 비밥>의 전초전이었다. <카우보이 비밥>은 그 결과로서, 혹은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서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그러나 마음을 찾으면서도, 결코 마음을 찾아나서지는 않는다.

<카우보이 비밥>은 그저 꿈을 꾸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다. 극장판인 <카우보이 비밥-천국의 문> 도입부에서 스파이크는 말한다. ‘꿈속에서 살고 있는 듯한 그런 남자였다.’ 스파이크가 쫓는 남자 빈센트는 “죽음 같은 것은 두렵지 않아. 조용히 꿈을 꿀 뿐이다. 영원한 꿈을 꾸고 있는 거야”라고 말한다. 스파이크와 빈센트는 비슷한 냄새가 나는, 현실의 꿈을 살고 있는 남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돌아오려 한다. 빈센트는 테러리스트로서 세상을 파괴하려 하고, 스파이크는 죽음을 맞이하러 비셔스를 찾아간다. “스파이크가 비밥호에서 나와 비셔스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은 현실로 되돌아오는 것을 의미한다. 뭐, 이런저런 사람에게 원망을 들었지만. 과거의 여자에 얽매여 도피했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인가, 하고. 지금 현실의 여자가 눈앞에 있는데도 어째서 뒤돌아가야 하는가 하고. 하지만, 그렇게 말할 것은 아니다. 스파이크는 현실로 되돌아와,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고 한 것이다. 혹은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꿈을 찾으러 가서, 그렇기 때문에 죽는다고.” 비밥호에서의 모험은, 스파이크가 보기에는 ‘꿈의 시간’이다. 그것 역시 절실하지만 결코 현실로 돌아가기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관객에게도 마찬가지다. 현실로 나가라고 애걸하지 않는다. 그저 스파이크라는, 시대에 뒤쳐진 주인공을 내세워 ‘현실의 싸움’에 나서게 할 뿐이다. 선택은 관객에게 있다.

▶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 완전정복 [1]

▶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 완전정복 [2]

▶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 완전정복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