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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제작사의 이유있는 흥행

현재 문광부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영화사가 1천여개를 넘는다고 한다. 이름만 걸쳐놓은 영화사가 많이 있다고 하더라도, 영화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예전에 비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것은 사실인가보다. 하지만 1년에 제작되는 60편 내외의 작품 수를 생각하면 이 많은 영화사의 숫자는 허수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영화의 80% 이상을 생산하고 있는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의 공식 회원사는 40여개 안팎에 불과하다. 이중에서도 90년대 이후 한국영화의 발전에 중요한 성과를 이루었다고 평가되는 작품을 제작한 영화사를 꼽으라면, 열 손가락으로 셈을 해야 될지 모른다. 그만큼 좋은 영화 한편 혹은 흥행영화 한편을 만든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바람난 가족>의 성공이 남다른 이유와 가슴 뿌듯한 감동을 가져다주는 것은 한국 영화계의 자랑거리인 ‘명필름’이 뒤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난 가족>이 제작되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많은 얘기들을 주위에서 들었다. 흔히 영화인들의 술자리에서 오고가는 작품에 대한 뒷얘기들은 일상의 소일거리에 지나지 않지만, <바람난 가족>의 경우는 나에게 특별한 관심을 둘 만한 이유들이 있었다.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나 이은 감독을 만나서 직접 얘기를 들은 바는 없다. 다만 나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이유들이다. 제작 초기에 김혜수 캐스팅을 둘러싼 해프닝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제작자에게 엄청난 타격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웬만한 내공이 없는 제작자라면, 그 작품을 계속 끌어가지 못한다. 나중에 문소리가 캐스팅되었을 때, 그간의 시간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가히 짐작된다. 그 이후에 우연히 문소리와 자리를 같이 한 적이 있었다. <바람난 가족>을 선택한 문소리에게 진심으로 격려와 지지를 보냈다. 문소리 역시 자신이 이 작품을 선택한 배경에는 임상수 감독과 무엇보다 제작사인 ‘명필름’에 대한 신뢰가 있었음을 숨기지 않았다.

캐스팅이 마무리된 이후에도 이 작품은 순탄한 제작과정을 거치지 못한 것 같다. 그것은 프로덕션 내부과정의 문제가 아니라 결정적으로 투자자들에게 외면당했던 것 같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명필름’이 제작하고 임상수 감독이 연출하는데 투자자들이 투자를 기피한다는 것은 언뜻 납득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의 투자 분위기를 생각하면, 별로 이상할 게 없다. 조금이라도 흥행전선에 부담이 있다고 판단하면, 제작자 감독의 크레딧에 관계없이 투자를 꺼린다. 투자의 보증수표라고 여겼던 스타 캐스팅의 조건도 이제는 옛말이 돼버렸다. 오로지 작품 자체가 이른바 상업성이 있어야만 한다. ‘명필름’은 이에 굴하지 않고 <바람난 가족>의 제작을 밀어붙였다. 뒤에 영진위 관계자로부터 얘기를 들은 바, 이 작품 때문에 ‘명필름’에서 10억원의 대출을 받아갔다고 했다. 2년 안에 갚아야 되는 대출금으로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은 자칫 자기 무덤을 파는 행위일 수 있다. 제작자의 자기확신과 책임감이 없이는 결코 할 수 없었던 제작방식이라고 생각된다.

‘명필름’이 개봉을 얼마 앞두고 인터넷 펀딩을 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지나친 마케팅 전략이라며 비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이 작품에 대한 자기확신과 책임을 전제한 마케팅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과에 따라 회사가 엄청난 곤경에 처할 수도 있는 제작방식과 마케팅은 누구라도 쉽게 선택하지 못한다. 이것은 ‘명필름’만의 내공과 마케팅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하며, 결과는 모두에게 성공적이었다. 그렇다고 단순히 흥행의 결과만 놓고 판단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며 쉬운 일이다. 이는 영화사의 운명과 작품의 운명을 같이한 ‘명필름’의 큰 원칙이 있었고, 시작부터 지금까지 일구어온 전 과정의 땀과 노력의 결실이라고 평가해야 한다. 그래서 <바람난 가족>의 바람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일전에 싸이더스 대표 차승재 선배를 만난 적이 있다. <살인의 추억>이 성공하기까지 24편의 영화를 제작했고, 앞으로 이런 영화를 만나기 위해 또다시 24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힘들고 두렵다고 했다. 제작자 모두의 자기성취에는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나는 아직 한참 뒤에 있지만, 한국 영화계에서 앞선 이런 선배들이 있어서 자랑스럽다. 그리고 꿈과 비전을 가질 수 있어서 행복하다. 한편의 영화에 흥행과 생존을 무릅쓰야 하는 작금의 현실이 못내 싫지만, ‘명필름’과 같은 명가(名家)의 제작사가 옆에 있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큰 힘이고 보람이라는 것을 꼭 말하고 싶다.이승재/ LJ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