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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금물!엉뚱한 로맨틱 코미디,<세크리터리>
■ Story

자해하는 습관 때문에 요양원에 들어갔던 20대 초반의 여성 리 할로웨이(매기 질렌홀). 요양원을 나온 그녀는 변함없이 우울한 가족의 모습을 보며 다시 자기 다리에 상처를 내기 시작한다. 타자학원을 졸업한 뒤 일자리를 찾던 리는 마침 구인광고를 낸 에드워드 그레이(제임스 스페이더)라는 변호사의 사무실을 찾아간다. 에드워드의 사무실에서 비서로 일하게 된 리, 그러나 둘의 관계는 차츰 묘한 것으로 발전한다. 에드워드는 리가 오타를 낸 글자에 빨간펜으로 표시를 해놓고 리의 엉덩이를 때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리는 에드워드에게 맞으면서 쾌감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한다.

■ Review

사랑은, 미친 짓이다. <세크리터리>가 보여주는 사도마조히즘은 사랑의 본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쉽게 수긍할 수 없다면, 이 영화를 봐야 한다. <세크리터리>의 주인공들이 행복해지길 기원하는 동안 사랑이 일종의 병(치유가 필요없거나 치유 불가능한)이라는 걸 인정하게 될 것이다. <세크리터리>는 매를 맞으면서 흥분하는 여자와 그녀가 짓밟히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남자가 만나는 이야기다. 포르노적 상상력이 고개를 들겠지만 이 영화에선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남자 상사와 여자 비서의 관계에 대해 정치적 비판을 하고 싶겠지만 그것도 잠시 접어두는 편이 낫다. 줄거리로 성급히 연상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소를 비껴가면서 영화는 엉뚱한 로맨틱코미디로 발전한다.

<세크리터리>는 일종의 신데렐라 이야기다. 계모와 의붓언니들에게 구박받던 신데렐라처럼 이 영화의 여주인공 리는 가족이라는 굴레로부터 탈출하고 싶다. 불행한 것은 그녀에게 호박을 마차로 둔갑시켜줄 요정이 없다는 사실. 알코올중독인 아버지와 허영기 많은 어머니의 품에서 벗어날 수 없는 리는 어린 시절부터 이상한 습관을 키우게 된다. 그건 바로 자기 몸에 상처를 내는 것이고 육신의 아픔은 마음의 고통을 덜어줬다. 이런 마조히스트에게 어느 날 왕자님이 나타난다. 한눈에 비밀이 많아 보이는 변호사 에드워드, 그의 사무실은 편집증 환자의 방처럼 일관된 톤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곳에 컴퓨터가 없다는 점은 수상하다. 에드워드는 비서에게 타자기로 문서를 작성하라고 요구하고 그의 책상에는 오타를 지적하기 위해 마련한 빨간펜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영화는 이 대목에서 서두르지 않는다. 사도마조히즘은 직접적인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완전한 신뢰감이다. 리가 에드워드의 요구를 충실히 따르고 에드워드가 리의 다리에 난 상처에 관심을 갖는 과정은 관객의 선정적인 관심사인 맞고 때리는 장면 이전에 배치된다. 그러므로 에드워드가 처음 리의 엉덩이를 때렸을 때, 에드워드의 행동은 ‘폭력’이기 전에 ‘사랑’이다. 내 모든 것을 당신에게 맡겨도 좋다는 믿음이 이 기묘한 관계가 성립될 전제인 것이다. 그것은 비밀을 공유하는 관계이며 영화 제목이 ‘secret’을 포함하는 단어 <세크리터리>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얼핏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을 연상할 수도 있지만 <세크리터리>는 <거짓말>처럼 사회에 대한 비판에 관심을 두지는 않는다. <거짓말>이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싶어하는 남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반면에 <세크리터리>의 남녀는, 사도마조히즘은, 사회로부터 인정받고자 한다. 물론 여기에도 시련은 있다. 에드워드가 리가 낸 오타에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자 리는 안절부절한다. 결국 에드워드는 “하루 24시간 동안 이럴 수는 없다”며 리를 해고해버린다. 리 역시 처음엔 에드워드와의 부적절한(?) 관계 대신 평범한 남자친구였던 피터와 잘 지낼 수 있는지 모색한다. 그러나 피터의 조심스럽고 신사적인 성행위는 그녀에게 어떤 즐거움도 주지 못한다. 리가 차츰 자기 욕망에 충실한 여자로 변해갈 때, 관객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녀에게 가해지는 매질과 처벌을 응원하게 된다. 부조리한 상황이 만들어내는 웃음은 후반부로 가면서 농도가 짙어진다. 그리하여 <귀여운 여인>의 남녀가 맺어지길 바라듯 <세크리터리>의 남녀가 해피엔딩에 도달하길 기원하게 되는 것이다.

<세크리터리>는 지난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작품이다. <LA타임스>의 마놀라 다지스는 “마음속에 은밀한 판타지를 품고 있는 두명의 외로운 사람이 기적적인 에로틱한 조화를 발견하는 별난 뉴웨이브 로맨틱코미디”로 평했고,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S/M(사도마조히즘)은 참여자는 몰입시키지만 방관자에겐 우스꽝스런 짓으로 보여서 우리에게 엉뚱한 타이밍에 킬킬거리게 만들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며 호평했다. 감독 스티븐 셰인버그는 제니퍼 제이슨 리가 주연을 맡은 단편영화 <THE PROM>으로 두각을 나타낸 뒤 1998년 <히트 미>(Hit Me)라는 영화로 데뷔했으며 <세크리터리>가 두 번째 연출작이다.

:: 매기 질렌홀

은밀한 욕망의 여신

<세크리터리>는 주연을 맡은 남녀, 제임스 스페이더와 매기 질렌홀의 조화가 인상적인 영화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나 <크래쉬>로 널리 알려진 제임스 스페이더는 마음 한켠에 사막을 품고 있는 남자로 썩 어울리지만 <세크리터리>에서 그보다 돋보이는 건 신인배우 매기 질렌홀이다. 자신의 은밀한 욕망을 떳떳한 것으로 만들면서 차츰 아름다워지는 그녀의 모습은 신비할 정도로, 매기 질렌홀은 <세크리터리>로 올해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매기 질렌홀은 1977년 LA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스티븐 질렌홀은 <위험한 여인> <워터랜드> 등을 연출한 영화감독이고, 어머니 나오미 포너는 작가 겸 프로듀서. 남동생 제이크 질렌홀 역시 영화배우로 <문라이트 마일> <옥토버 스카이> <도니 다코> 등에 출연해 누나보다 일찍 유명해졌다. 매기는 컬럼비아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세크리터리> 이전까지 크게 눈에 띄는 배역을 맡지 못했다. 그녀는 <세크리터리>의 대본을 3/4 정도 읽고 역을 따내기 위해 동분서주했으나 나중엔 나머지 1/4을 읽고 주저했다고 한다. 누드장면, 단식농성하는 장면 등이 마음에 걸렸던 탓이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감독을 만나고나서 비로소 안심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 매기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 경험한 혹평은 날 거의 파괴시켰다. 난 울고 울고 또 울었다. 그래도 연기를 해야 했고 그런 일이 몇주간 계속됐다. 나는 더 많이 울 수밖에 없었다. 거의 연기를 그만두려던 무렵에 난 깨달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집중해서 더 잘하는 것이고 비평을 읽는 일을 그만두는 것뿐이라는 걸.” 매기의 다음 영화는 줄리아 로버츠, 커스틴 던스트와 함께 출연한 마이크 뉴웰 감독의 신작 <모나리자의 미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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