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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ies But Goodies

세월이 죽이지 못하는 여자들이 있다. 팝싱어 셰어는 58살에도 팽팽한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를 자랑하고, 마돈나는 46살에도 팝의 ‘여신’으로서 아름다움과 위용을 잃지 않고 있다. 저 멀리 1980년대의 에너지 넘치는 할머니, 티나 터너도 잊을 수 없다. 우리에게는 춤추는 디바, 인순이가 있다. 47살의 인순이가 조 피디(PD)와 함께 부른 <친구여>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이 노래로 가요순위 프로그램 1위도 했다. 80년대 <밤이면 밤마다> 이후 20여년 만이라고 한다. <빌리브>(Believe)라는 셰어의 히트곡 제목처럼, 나는 그녀들의 영생불멸을 믿는다.

인순이는 언젠가부터 나이가 들지만 늙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그녀의 구릿빛 피부는 광채를 더해왔다. 요즘 인순이는 더 젊어졌다. <생방송 SBS 인기가요>의 인순이는 <열린 음악회>의 인순이보다 더 젊고, 더 활기가 넘쳤다. 탱크톱을 걸친 몸에서는 리듬이 넘쳤고, 얼굴에서는 광채가 빛났다. 그녀의 노래는 ‘나 여기 살아 있다’는 아름다운 선언이 되고, 몸짓은 ‘나 여전히 아름답다’는 존재 증명이 된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느끼하지 않은 ‘필’이 흐르고, 그녀의 몸에는 자연스러운 ‘그루브’가 흐른다. <친구여>의 무대가 달아오를수록 주객은 전도된다. 객원가수 인순이가 주인공 조 피디를 압도하고, 누가 피처링(featuring)을 하는지 헷갈린다. 그녀가 “세월이 지나서 다 변해도 변치 않는 것 하나∼”라고 노래하면, 그것은 마치 자신에게 보내는 찬가로 들린다. 그리고 “렛츠 파티”(Let’s party)!. 마흔일곱, 인순이의 잔치는 이제 시작이다.

그녀는 여성이면서 혼혈인이다. 이중의 장애를 가진 그녀가 브라운관에서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다. 탤런트 이유진의 경우처럼 아직도 한국은 혼혈인이라는 커밍아웃조차 힘든 나라 아니던가. ‘인순이’라는 이름에 묻어 있는 기지촌의 냄새는 데뷔 시절, 한국 연예산업이 그녀를 어떻게 상품화해왔는지를 드러낸다. 그녀는 오직 실력으로 그녀의 이름에 밴 편견을 극복해왔다.

늙은 여자가수라는 형용모순은 그녀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남다른 피부색은 남다른 매력이 된다. 그녀의 신산한 과거를 모르지 않기에 그녀의 무대를 볼 때면 숙연함마저 느끼게 된다. “힘들어도 트라이(Try), 포기하지 말아.” <친구여>의 한 소절은 그녀 스스로의 다짐처럼 들린다.

히트곡은 없지만 인기는 있다. 인순이의 어제를 설명하는 문장이다. 인순이는 아까운 재능을 남의 노래 부르느라 소진해왔다. 그녀가 <무인도>를 아무리 잘 불러도, 팝송을 기가 막히게 소화해도 갈증은 채워지지 않는다. 물론 그녀의 꾸준함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녀는 끊임없이 무대에 서면서 스스로 반짝하는 연예인이 아니라 가수를 천직으로 여기는 직업인으로 살고 있음을 증명했다. 10대 위주의 척박한 대중음악 토양이 그녀의 발목을 잡아왔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래도 ‘노래 잘하는 가수’로만 남겨두기에는 그녀의 재능이 너무나 아깝다. 그녀에게 단 한 가지 부족한 것은 ‘히트곡’이다. 78년 데뷔한 그녀는 희자매 시절 8장의 앨범을 냈고, 15장의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무수한 앨범이 탁월한 재능을 살리지 못한 이유는 그녀를 둘러싼 음악 환경 혹은 매니지먼트 환경이 시대 흐름을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 그렇다고 후배들의 음반에 ‘객원가수’나 하면서 썩히기에는 그녀의 몸과 목소리가 너무 젊고 아름답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감각있는 프로듀서와 재기 넘치는 작곡가다. <친구여>는 그녀가 여전히 ‘히트곡’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저력이 있음을 증명했다. 그녀가 <열린 음악회>의 무대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도 <생방송 SBS 인기가요>의 1위 트로피를 욕심내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더디기는 하지만, 나이 들어서도 현역이고, 원숙해질수록 매력이 넘치는 여성 연예인이 자리잡는 시대가 이 땅에서도 서서히 열리고 있다.

한국사회는 지금 여성의 원숙미를 발견하고 있다. 영화배우 이미숙과 탤런트 황신혜는 아직도 ‘정상’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마침내 한국사회도 나이들수록 더 예뻐지고, 연기도 더 잘하는 여배우들을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들은 철저한 자기 관리로 세월을 거슬러온 첫 번째 세대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국사회의 성숙미의 발견이 한국 자본주의의 성숙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선 연예산업의 역사가 쌓이면서 성숙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연예인들이 생기고 있다. 그 연예인들을 품어안을 취향의 민주주의 혹은 문화다양성도 자라고 있다. 그 열매의 단맛을 인순이를 비롯한 멋진 ‘언니’들이 마음껏 누리시길.

신윤동욱/ <한겨레21> 기자 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