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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욕망의 원죄, <주홍글씨>

<인터뷰>에 이어 변혁 감독이 기록하는 인간관계 탐구서 제2장. 사람들은 죄를 짓고 욕망은 끝이 없다.

두방의 총탄은 트렁크 바깥에서 안으로 뚫고 들어온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바깥으로 뚫고 나간 것이다. 첫 장면은 그렇게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사전정보를 갖지 못한, 혹은 후반부를 목격하지 않은 어느 누가 이 순간 총탄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까. 이 첫 장면은 <주홍글씨>가 다룰 내용에 대한 요약이다. 김영하의 단편소설 <사진관 살인 사건> <거울에 대한 명상>을 원작으로 한 변혁의 두 번째 장편영화 <주홍글씨>는 바로 그 보이는 사실과 숨겨진 진실의 경합에 대해 진술하고 있으며, 엇갈린 애정의 총탄이 어디로 날아가 어떻게 박히는지 그 탄착지를 추적해가고 있다.

살인 사건 현장에 도착한 강력반 반장 기훈(한석규)은 사진관 여주인 경희(성현아)를 만난다. 그녀는 유력한 살인 용의자다. 기훈은 보험금을 노린 사진관 여주인 경희가 그녀의 정부와 짜고 남편을 죽였다고 짐작하지만, 증거를 잡지 못한다. 게다가 점차 그녀는 묘한 성적 매력까지 풍기며 기훈의 판단을 흐린다. 쉽게 풀릴 듯했던 사건이 점점 미궁에 빠질 무렵, 기훈의 사생활이 등장한다. 외양만으로는 임신한 아내 수현(엄지원)과 행복한 신혼 살림을 살고 있는 기훈, 그러나 그에게는 다른 연인 가희(이은주)가 있다. 그리고 가희와 수현은 대학 동창이다. 아내와 연인 사이를 오가는 기훈의 사생활과 치정이 일으킨 듯한 사진관의 살인 사건, 그 두축이 기훈을 중심으로 서로 얽혀간다. 영화의 후반부, 가희의 생일날 인적 드문 교외에 차를 세워놓고 로맨스를 즐기던 기훈과 가희는 얼떨결에 트렁크에 갇히게 된다. 결국 그 속에서 진실은 튀어나온다.

관습적인 제약을 벗어나서 이해할 경우, <주홍글씨>는 전작 <인터뷰>가 취했던 후던잇(whodunit) 구조의 확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구조는 단순히 상업적인 유연성을 발휘하기 위해서 채택된 것이 아니다. 동시에 장르의 체질에 기대서기 위해 있는 것도 아니다. 장르의 근친성 안에서 스릴과 반전에 헌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던진 질문의 망과 인물들의 관계 자체가 그 구조를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인터뷰>는 실상 영희라는 미지의 인물에 관한 한 영화감독의 심리적 애정 추리극이었고, 그녀의 정확하지 않은 진술들의 연쇄가 지어내는 모호한 이야기 집의 건축 과정이었다. <인터뷰>에서 영희는 곧 사건이었고, 대상이었고, 해법이었다. 변혁은 <주홍글씨>에서 그 방식을 버리지 않고 재가동한다. <인터뷰>에서 그 많은 ‘진술’들이 카메라를 들이댄 감독에 의해 해석되는 것이었다면, <주홍글씨>에서는 범인을 쫓고 사생활을 돌보는 형사의 위치에서 해석되고 있을 뿐이다. 변혁은 그것을 전작과 마찬가지인 두개의 이야기 구조로 만든다. 기훈의 불륜이라는 화자의 내부문제를 다룸과 동시에 그가 마주친 타인의 유사한 사건에도 동시에 관심을 쏟는다. ‘개인 사례의 일반화’, ‘객관과 주관의 넘나듦’이 바로 영화 <인터뷰>가 담고 있는 중심이다. 결국엔 그 영화의 화자인 영화감독도 수많은 일반인들의 사랑 경험 중 하나로 선례를 남긴다. 그 점에서 <주홍글씨>의 기훈이 도전하는 미제 사건의 본질은 스스로가 겪고 있는 불륜의 치정에 같은 뿌리를 두고 있는 셈이다. <주홍글씨>의 주인공 기훈은 진의 모를 진술을 거듭하는 경희(마치 <인터뷰>의 영희 같은)를 상대해야만 하고, 한편으론 스스로가 처한 곤란한 사랑을 관객에게 관찰당하는 위치에 처하게 되는 셈이다. 그 동일한 과정을 거쳐 <인터뷰>는 선함에 대한 결말에 이르고, <주홍글씨>는 악함에 대한 결말에 이르는 차이를 보인다.

중반까지 과소의 힘으로 버티던 영화는 기훈과 가희가 자동차 트렁크 안에 갇혀 지내는 순간부터 과잉의 힘을 발산한다. 한석규, 이은주 두 배우들은 극한의 에너지를 요구받고 견뎌냈음이 분명하고, 한석규는 ‘파멸하는 남자’의 오열을 충분히 토해낸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인물들의 관계는 지나치게 치우쳐 있다. 기훈을 제외한 인물들이 자아를 갖지 못하고 서성이는 쪽에 가까운 건 치명적인 결함이다. 예컨대 성현아가 맡은 경희는 <인터뷰>의 영희보다 훨씬 덜 미스터리하게 보이고(더불어 그녀의 내러티브는 첨언처럼 보이고), 수현은 눈여겨보아야만 존재를 알 수 있다. 혹은 기훈을 둘러싼 안과 밖의 이중구조가 메시지를 확장하고 있지만, 그것이 너무나 명확한 동심원을 가지면서 죄악의 미스터리는 힘있게 팽창하질 못하고, 엇갈린 애정관계 속에 들어 있어야 할 인물들의 더럽고, 구차하고, 치사한 감정들은 양식적으로 느껴지는 죄악과 대가의 드라마로 마무리된다. 그 미시적인 드라마가 인류 일반의 원죄(영화 도입부에 인용된 창세기)라는 거대한 선악의 본질에 거꾸로 닿으면서, 오히려 추악한 욕망의 날카로운 표면들은 뭉툭해져버린다. 인물들은 진흙탕에 빠져 있는데, 그들의 감정은 하늘에 닿아 있다. <주홍글씨>는 보기 드문 통찰의 힘을 갖고 있는 영화이다. 그러나 당연히 있어야 할 더럽고 거친 정서의 울림이 부재하는 영화이다.

:: 변혁 감독 인터뷰

“<주홍글씨>는 <죄와 벌> 같은 이야기다”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또 표현하고 싶었나.

욕망과 그 대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대표적으로 그걸 나타내는 방식이 사랑이다. 불륜에 대한 이야기지만, 좀더 중요한 건 그 근저에 깔려 있는 욕망이다. <주홍글씨>라는 제목을 달았지만, 넓게 보면 <죄와 벌> 같은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김영하의 <사진관 살인사건> <바람이 분다> <거울에 대한 명상>에서 캐릭터와 내러티브 설정을 가져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유는.

끝내는 영화 속에 두편을 썼다. 세편 다 넣기에는 버거웠다. 세편 모두 정상적인 애인관계가 아니고 어긋난 사랑을 다루고, 엇갈린 관계가 나온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 구조적인 비슷함을 끌어다가 쓴 것이다. 김영하 소설에는 현대적인 싸늘함이 있다. 그 주제나 세계관에 대해서는 다르게 생각하지만, 느낌상으로는 공감한다. 그래서 그 분위기와 플롯을 따온 것이다.

왜 <주홍글씨>라는 제목을 붙였나.

<주홍글씨>라고 했을 때의 어떤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지 않나. 사회적인 금기, 불륜 같은. 그 제목 자체가 갖는 주제적인 유사성, 또는 코드가 있는 것 같았다.

트렁크에 갇히는 상황이 어떤 느낌을 주었기에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선택하게 된 것인가.

소설에서는 그 설정이 크게 발전되지 않는다. 옛날이야기를 회상하는 정도다. 사실 트렁크라는 공간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둘만의 공간이다. 하지만, 조금만 지나가면 못 견디게 힘든 공간이 되고, 차라리 이 꼴을 보이느니 안 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 곳이다. 그러니까 처음 가졌던 욕망의 시작, 환상 같은 것들이 계속 이어질 경우, 그 끝이 굉장히 끔찍한 것이라는 점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일을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주인공 이기훈이 사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는 것 아닌가. 굉장히 예뻐 보이는 뒷면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서 선택한 공간이다.

두개의 이야기 구조가 있다. 그중 사진관 살인 사건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기훈이 담당한 그 사건은 사적인 이야기하고 겹치면서 거울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사진관에서의 사건은 후반부의 사건과 다르지만 같은 이야기라는 것이다. 어떤 특수한 한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탐욕, 죄에 관한 이야기인 셈이다. 내가 원래 이중구조에 천착하기도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 주제를 드러내는 데에는 그 두 가지 이야기 모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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